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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태양' 수양대군과 김종서, 진짜 역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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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상' 포스터(사진=쇼박스 제공)

 

1453년 10월 10일 늦은 밤, 당대 권력자 수양대군이 또 다른 권력자 김종서의 집을 찾는다. 수양대군은 김종서에게 편지 한 통을 건네고, 달빛에 비춰 편지를 보던 김종서의 머리 위로 철퇴가 내리쳐진다. 역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맞이한 죽음이었다.

역모의 내용은 김종서 일파가 단종을 끌어내리고 안평대군을 왕으로 세우려했다는 것이었다. 수양대군은 역모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칼 끝을 수많은 피로 물들였다. 실록은 이날의 사건을 계유년의 난리를 평정했다는 뜻의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기록했다.

27일(일) 밤 9시 40분 방송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수양대군 VS 김종서, 누가 역적인가'를 주제로 계유정난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를 들여다본다.

세종의 뜻에 따라 6진을 개척한 대호(大虎) 김종서. 그는 태종 때 관직에 진출해 세종·문종·단종까지 4대 왕의 신임을 받았던 문신이다. 죽음을 앞둔 문종이 자신의 어린 아들을 믿고 맡겼던 대신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종서는 문종의 기대와 다른 행보를 보인다.

"김종서가 권력을 마음대로 하였으니, 자기 집의 별실을 지으면서 목재와 기와, 철재와 석재를 모두 조정의 공사를 관장하는 관리에게서 취하였다." - 단종 즉위년 12월 11일

"김종서가 충청도 공주에 가서 성묘하고자 대궐에 나아가 하직하니, 그를 전별하는 사람들로 도성이 가득 찼고, 군현에서도 뇌물이 잇달아서 끊이지가 않았다." - 단종 즉위년 12월 15일

어린 왕을 보좌하는 대가로 얻은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던 김종서. 실록에는 안평대군에게 시를 보내 모반을 일으킬 것을 권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김종서는 정말 역적이었을까.

"(문종 형님은) 나더러 정대하고 충성하고 지식이 다른 사람보다 다르다 하여 항상 더불어 일을 논하였다. 일찍이 진법을 만들었는데 말씀하기를, '이정·제갈량인들 어찌 수양보다 나을까?'하였다. 또 일찍이 내궁에서 칭찬하기를 '수양은 비상한 사람이야.'" - 단종 즉위년 5월 18일

대신들의 중심에 김종서가 있었다면 종친들의 중심에는 수양대군이 있었다. 형 문종이 승하하고 어린 조카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수양대군은 자신의 실력을 뽐내며 남다른 존재감을 내보인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난 이후 '영의정부사 영경연 서운관사 겸판이병조사'라는 어마어마한 자리에 오르며 실권을 장악하더니, 결국 조카 단종의 양위를 받아 조선의 7대 왕 세조로 등극한다. 계유정난의 승자가 기록한 김종서의 역모는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어린 단종을 사이에 두고 맞섰던 두 개의 태양, 수양대군과 김종서. 하룻밤 사이 김종서는 철퇴에 사라지고 수양대군은 조선을 비추는 왕이 됐다. 두 사람의 운명을 가른 계유정난, 그날 밤에 가려진 이야기들이 이번주 '역사저널 그날'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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