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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부터 '도가니법'까지…세상을 뒤바꾼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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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영화들은 당대 사회에 영향을 받고, 그 현실을 담아낸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몰입과 공감대를 잡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영화는 허구이되 현실보다 더 현실과 닮아 있다. 심지어 국정농단 사건에서 보았듯이 각종 권력 비리형 영화 속에 등장한 이야기들이 현실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때때로 이 관계의 방향을 뒤바꾸는 영화들이 존재한다. 이미 일어난 사건을 재조명한 영화들이 현실에 변화를 가져오는 경우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택시운전사'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진상조사에 박차를 가하는 촉매제가 됐다. 영화는 80년 5월 광주로 간 택시운전사와 독일 기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다른 영화들과 달리, 광주 시민이 아닌 목격자의 시점을 선택해 사건을 바라 본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국가가 자행한 국민 학살이라는 점에서 객관적 사실만으로 이미 역사적 비극성을 내포하고 있다. '택시운전사'는 사건과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확보하면서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 같은 효과를 거둔다. 이 덕분에 별다른 영화적 '양념' 없이도 관객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국내에서 '천만 관객 돌파'라는 성적은 평균 5명 중 1명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전 세대적으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는 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 앞에서의 첫 발포 장면과 병원 위를 날아가는 헬기 장면 등이 실감나게 담겼다. 결과적으로 '택시운전사'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기억을 환기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사건에 여전히 수많은 의혹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진상규명을 열망하고 요구하는 여론이 생겨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결국 청와대는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이뤄진 군의 전투기 출격 대기 및 헬기 기총사격 등과 관련해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특별 조사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3개월 전부터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재조사를 예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18일 광주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공개적으로 5.18 진상규명을 위한 재조사를 약속했었다. 아직 헬기 사격 의혹, 최초 발포 명령자 등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택시운전사'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기 전, 직접 시민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면서 또 한 번 상징적인 행보를 보여줬다. 문 대통령이 남긴 자취를 따라가 보면 '택시운전사'를 통해 형성된 공감대에 힘입어 이 같은 특별 조사 지시를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2011년 개봉한 영화 '도가니'는 영화가 현실을 뒤바꾼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황동혁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광주인화학교에서 5년 간 벌어진 성폭행 사건을 다뤘다.

광주인화학교 사건은 이미 공지영 작가가 동명의 소설을 통해 고발한 적이 있었다. 가해자들은 오래 전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석방된 상황이었다. 소설만으로는 여론을 움직이기 힘들었지만 영화가 제작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도가니'는 약 460만 명의 관객을 모았고, 경찰은 광주인화학교 사건을 전면 재수사하기 시작했다.

2000년 벌어진 사건인만큼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다. 가해자들은 죽거나, 또 다시 집행유예를 받았고, 성폭행 혐의가 있었던 행정실장 김모 씨만 징역 8년형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도가니'가 남긴 가장 큰 성과는 가해자 처벌보다는 '도가니법' 발의 및 시행이었다. 이 법안에는 장애인 아동에 대한 성폭행 범죄 처벌 수위를 높이고, 공소시효를 없애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법안은 일사천리로 국회를 통과해 곧바로 시행됐다. '도가니'라는 영화가 성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장애인 아동 인권 보호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소설, 드라마 등의 콘텐츠보다 영화가 이 같은 힘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극장이라는 공간 자체가 집단적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1980~1990년대에는 연극이 이러한 역할을 주도적으로 해왔지만 영화 관람이 대중적 문화 생활로 자리잡으면서 영화가 그 역할을 대체하게 됐다. 특히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발달은 이런 현상을 더욱 확대시켰다.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는 "소설은 개인적으로 이뤄지는 행위인데, 영화는 동시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비슷한 파장을 일으킨다. 다수가 함께 경험을 나누게 되면 그 아우라가 굉장히 크게 만들어지고 여론 형성까지 이어지기 쉽다"며 "SNS가 활발해지면서
더 많은 정보가 공유되고, 그러면 각 분야에서 실천이 가능한 이들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 실천하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천만이 보면 당연히 움직이는 폭 자체가 달라지지만, 100만 밖에 보지 않아도 엄청난 사회적 각성이 일어나는 영화들이 있다. 그건 그 영화가 우리의 시대정신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잘 담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이번 '택시운전사'의 경우는 어떨까. 김 시사평론가는 변화의 불씨가 된 '도가니'보다는 그 영향이 적었다고 판단했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식 발언으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재조사하자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김 시사평론가는 "'택시운전사'는 문 대통령의 정책에 힘을 실어준 영화다. '도가니'처럼 그게 계기가 돼서 진상을 규명하고 재조사를 하는 흐름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꾼 영화인 것은 맞다. 만약 이 영화가 없었더라면 대통령의 진상규명 조사는 적나라한 시비에 휩싸였을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을 불식시키고, 여론을 하나로 모으는데 '택시운전사'가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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