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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어보' 특별전…문화재청, 원품 아닌데 '생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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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보' 진위보다 '환수' 성과나 홍보에 방점 찍은 전시회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다시 찾은 조선 왕실의 어보' 특별전에서 재제작된 모조품으로 확인된 ‘덕종어보’. 문화재청이 지난 2015년 미국에서 환수받았다고 대서특필한 ‘덕종어보’ 는 1471년 제작된 진품이 아닌 1924년 일제강점기 재제작된 모조품임으로 확인됐다.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지난 7월 방미했던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 문정왕후어보와 현종어보를 국민에게 공개한다며, 문화재청과 국립고궁박물관(관장 김연수)이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다시 찾은 조선 왕실의 어보' 특별전.

하지만, 함께 전시하는 '덕종어보'가 원품이 아닌 재제작품으로 확인되면서, 특별전의 의미는 빛을 바랬다.

재제작품 사실을 숨겼다는 지적이 일자, 박물관 측은 '일제강점기에 재제작된 덕종어보가 비록 문화재는 아니지만, 반출됐던 것을 환수했다는 데 의의를 두는 전시회다'고 해명했다.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나 의미보다, 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환수'했다는 것을 홍보하고 싶다는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는 지점이라 비판이 일 것으로 보인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오는 19일부터 10월 29일까지 '다시 찾은 조선 왕실의 어보' 특별전을 서울시 종로구 효자로 국립고궁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Ⅱ에서 진행한다.

이 전시는 한·미 정상회담 때 한미공조수사를 통해 반환받은 문정왕후어보(文定王后御寶)와 현종어보(顯宗御寶)를 국민에게 처음으로 공개하는 뜻깊은 자리이다.

두 어보 외에도 2014년 해외에서 환수한 유서지보, 준명지보, 황제지보 같은 조선.대한제국 국새와 고종 어보 등 조선 왕실 인장 9점, 2015년에 반환된 덕종어보 등을 같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날 CBS노컷뉴스가 보도([단독] 덕종어보, 알고보니 친일파가 제작한 짝퉁)했듯이, 덕종어보는 원품이 아닌 재제작품이다.

그것도 400여 년이나 뒤에 만들어졌다. 원품은 1471년 제작됐으나, 일제강점기인 1924년 분실됐다.

◇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성과 홍보'에만 급급

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장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재제작된 모조품으로 확인된 덕종어보에 대한 해명을 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문화재청은 환수 당시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2015년 덕종어보 반환 때 '미국 시애틀 박물관으로부터 덕종어보 진품을 환수받았다'고 홍보하기에 급급했다.

김 관장은 1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당시 진행한 외형분석만으로는 진품이라고 믿을 수밖에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당시 나선화 전 문화재청장은 한 언론에 기고문까지 실어가며 "2014년 11월 시애틀 미술관 이사회가 반환을 승인하면서 성숙한 협상의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었다"고 발표했다.

'덕종어보'가 재제작품이라는 사실은 환수한 이후에도 한동안 파악하지 못했다.

김 관장은 "덕종어보가 원품이 아닐 수도 있다며 조사를 해야겠다고 한 것은, 1924년 신문기사를 몇몇 전문가들이 알려주어서다"고 했다.

이후 비파괴분석·3D스캔 등을 한 결과 15세기 제작된 어보에 비해 덕종어보가 '구리, 아연 함량이 높고, 금 함량이 낮으므로, 15세기 어보가 아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사실을 알게된 것이 지난해 12월이었다. 하지만, 문화재청과 국립고궁박물관은 국민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김 관장은 "숨기려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재제작품임을 확인하고 올해 1월 문화재청에 정식 보고했다. 이어 2월 문화재청 지정조사위원회에 정식으로 보고했고, 문화재 지정에서 제외돼 박물관 홈페이지에도 관련 내용을 정정 게재했다"고 밝혔다.

또 "문정왕후어보와 현종어보가 곧 환수되면 열릴 특별전시회에서 알릴 계획이었다"고 했다.

◇ 예종어보 등 3과도 원품 아니지만, 그렇다고 재제작품이 '짝퉁'이라 못해

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장.(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덕종어보뿐만 아니라 예종어보(상시호어보), 예종비장순왕후어보, 예종비안순왕후어보도 1924년 재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관장은 "일제강점기 덕종·예종시대 어보 5과를 분실했고, 일제강점기 조선 왕실에 의해 5과를 재제작했으나 이 중 일부를 한국전쟁 등 혼란기를 거치며 또다시 분실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 재제작된 어보는 덕종어보, 예종어보, 예종비어보, 장순왕후어보, 예종계비어보 등 총 5과다. 이 중 소재를 파악하지 못한 장순왕후어보를 제외한 4과를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예종어보 등 3과도 비파괴 성분분석을 해 본 결과, 덕종어보처럼 아연 함량이 15세기 만들어진 어보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박물관 측은 "재제작품이라 해도 1924년 5월 종묘에서 제를 올리는 등 왕실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어보라며,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았기에 ‘짝퉁’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조선왕조 때에도 어보가 훼손 또는 분실되었을 경우 공식적으로 재제작하는 관행이 있었다"며, "<명종실록>에 따르면, 문정왕후어보는 1553년 화재로 소실되어 이듬해인 1554년 다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년 뒤 재제작된 '문정왕후어보'와 400여 년 뒤에 재제작된 것을 동일선상에 놓고 볼 수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덕종어보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것들은 현재 문화재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결국 문화재청이나 박물관 측의 해명은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문화재 관리자로서 안일한 자세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공적이나 성과는 홍보하기에 급급했고, 비난받을 치부는 숨기려 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대표는 "문화재제자리찾기에서 어보 도난 기록을 꾸준히 찾아내면서 어보가 반환되기 시작했음에도 문화재청이 그 과정을 무시한 채 홀로 공적을 드러내려다보니 이런 결과가 난 것"이라며 "무리하게 서둘러 적절한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은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에 김 관장은 "진작 확인 하지 못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번 덕종어보 사태를 계기로 교훈을 얻었다"며 "문정왕후어보는 환수하자마자 성분분석부터 들어갔다. 이제부터는 진위 여부를 서둘러서 확인하겠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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