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가정폭력 의심사건으로 여성이 다쳤다는 119 구급대의 신고를 받고 피해자가 입원한 병원에 출동하고도 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는 남편의 말에 그대로 발길을 돌린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10일 경기 분당경찰서와 광주경찰서,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오후 11시 25분께 광주시 오포읍의 한 빌라에서 A(39·여)씨가 화장실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다는 남편 B(37)씨의 신고가 접수됐다.
출동한 구급대는 가슴과 배 부위에 2도 화상을 입은 채 화장실 바닥에 누워 있는 A씨를 발견, 성남 분당의 한 대형 병원으로 옮겼다.
A씨는 호흡과 맥박은 있었으나 의식이 저하돼 의사소통이 불가능했고, 화상을 입은 후 한동안 방치돼 염증까지 생긴 상태였다.
체중은 40㎏ 정도로 야위었고, 다리에 멍 자국도 발견됐다.
구급대는 B씨로부터 "사흘 전 부부싸움 중 (내가) 뜨거운 물을 뿌려 아내가 다쳤다"라는 말을 듣고 가정폭력 및 방임이 의심된다며 자정께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병원으로 출동한 분당서 모 파출소 소속 경찰관들은 A씨가 대화를 하지 못하는 상태인 데다, B씨가 "폭력을 행사한 사실이 없다"라고 하자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 철수했다.
구급대에 신고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했더라면 남편 B씨의 말이 거짓이라는 점을 충분히 간파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A씨 가정은 가정폭력 전례가 수차례 있어, 지난해까지 관할 경찰서인 광주서에 '가정폭력 재발 우려 가정'으로 지정됐으나, 출동 경찰관들은 이 같은 사실도 파악하지 않았다.
실제 A씨 가정은 2015년 7월 2번, 지난해 8월 1번 등 총 3번에 걸쳐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된 바 있다.
이로 인해 지난해 8월 29일 B급 재발 우려 가정(최근 3년간 가정폭력 입건 1회 이상·최근 1년간 신고출동 이력 2회 이상)으로 지정됐다가 이후 재발하지 않아 지난해 말 해제됐다.
파출소 경찰관들은 당시 사건 접수도 하지 않고 오전 1시 30분께 현장에서 철수했다.
이후 A씨 친정 가족들은 지난 7일 오후 가정폭력, 상해, 유기 등으로 B씨를 고소했다.
수사는 주거지 관할인 경기 광주경찰서가 진행하고 있다.
A씨 측은 고소장에서 B씨가 지난달 23일 밤부터 24일 새벽 사이 A씨의 몸에 뜨거운 물을 뿌려 화상을 입게 한 뒤 방치했으며, 이전에도 상습적인 폭행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광주서 관계자는 "A씨는 가슴과 배 부위 2도 화상 등 전치 5주의 진단을 받고, 지방의 화상전문병원에서 치료받는 중이라 진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구급대와 병원 등으로부터 'B씨가 A씨에게 뜨거운 물을 뿌렸다는 말을 들었다'는 진술과 '시간이 (다소) 경과돼 병원을 찾은 것 같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초동조치를 미흡하게 했다는 지적에 대해 분당경찰서 관계자는 "가정폭력 신고 이력을 확인하지 않고, 구급대에 사실관계를 물어보지 않은 점 등 경찰 대응이 미숙했던 것을 인정한다"라며 "A씨에게 부부갈등 여부 등을 수차례 물었으나 일절 답변을 하지 않았고, B씨는 폭행 등 어떠한 물리력 행사도 없었다고 진술해 1시간가량 조사를 마치고 철수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