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씨는 반드시 어떤 특정한 나라에 살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나는 어디서든 배고플 수 있어." K씨가 한 말이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의 적이 점령한 도시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때 적국의 장교가 K씨를 보고 보도에서 내려오라고 강요했다. K씨는 보도에서 내려서며 이 장교에게 분노를 느끼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 장교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나라에도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K씨는 장교의 나라가 지상에서 사라지기를 염원했다. "어쩌다 내가 이 순간 민족주의자가 된 것이지?" K씨는 자문했다. "그건 내가 장교라는 민족주의자와 마주쳤기 때문이야. 어리석음과 만나면 바로 이렇게 어리석어지기 때문에 어리석음 자체를 근절시켜야만 해." - 베르톨트 브레히트 저서 '생각이 실종된 어느 날'(펴낸곳 이후) 중에서영화 '군함도'를 휘감은 역사왜곡·작품성 논란을 두고, 노숙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인문학을 전파해 오면서 '거리의 인문학자'로 불리우는 작가 최준영이 "역사계는 영화로 비롯된 대중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추수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준영은 1일 CBS노컷뉴스에 "류승완 감독이 (영화 소재로) 군함도를 선택한 것 자체가 고맙다"며 "자칫 잊힐 뻔했던 역사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으니까"라고 전했다.
이어 "영화적 완성도는 별개의 문제이니 그걸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며 "(군함도를 다룬) 한수산의 소설이 먼저 나왔지만 그닥 주목받지 못했으니 영화가 더 반갑다. 어젠다 세팅에 성공했달까"라고 부연했다.
그는 "이후의 논의와 논쟁 등은 영화 외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며 "특히 역사계는 영화에 시비하기보다 영화로 비롯된 대중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추수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최준영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류승완은 류승완이다'라는 제목의 영화 '군함도' 감상평에서 아래와 같이 운을 뗐다.
"중화권 영화나 발리우드 영화에는 빠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중화권 영화는 어떤 소재의 영화든 일단 무협 혹은 격투의 분위기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일본제국주의에 맞서는 저항영화에서도, 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도, 코미디 영화에서도 반드시 두 번 이상 무술로 대결하는 장면을 만들어 낸다. 발리우드 코드는 몽환적 분위기의 춤과 음악이다. 진지한 스토리가 이어지다가 난데없이 춤추는 무희가 등장하면 아연 발리우드라는 걸 상기하게 된다."
(사진=작가 최준영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그는 "우리나라 감독 중에도 자신의 코드를 일관되게 풀어내는 감독이 있다. 류승완 감독의 액션 코드다"라며 글을 이었다.
"얼핏 다양한 소재의 영화를 만드는 것 같지만 류승완 영화의 기본 코드는 액션이다. 첩보물에선 물론이거니와 사회의 부조리를 까발리는 영화에서도, 역사적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도 그의 액션코드 혹은 폭력미학은 변치 않는다."
특히 "(영화) '군함도' 논란이 뜨거운데 그중 유독 눈에 띄는 건 역사 실화를 고작(?) 액션영화로 풀어냈다는 비판이다. 내 생각에 그런 비판은 어이없다"며 "'영화는 영화다'를 패러디하자면 류승완은 류승완일 뿐이다. 류승완에게서 이준익이나 봉준호를 기대하는 건 난센스"라고 꼬집었다.
"류승완이 '군함도'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제일감은 '고마움'이었다. 어떤 영화를 만들지는 차치하고 일단 그가 우리의 아픈 역사를 소재로 삼았다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기분 좋았다. 전작 '베테랑'으로 한껏 주가를 끌어올린 류승완의 차기작이 '군함도'라니…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고, 즐겁게 봤다."
최준영은 "새삼 (영화 '군함도'에서 류승완의 장점이 보인다. 그는 제작비가 얼마든 그에 걸맞는 '괜찮은 영화'를 만든다. 그는 늘 새로운 소재와 주제를 찾고, 그걸 자신의 스타일로 풀어낸다"며 "결과적으로 그 두 가지가 새로운 장점을 이끌어내는데, 작가영화를 고집하기보다 제작자와 관객을 동시에 즐겁게 해주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라고 평했다.
"그가 쉼없이 메가폰을 잡는 이유는 응당 그런 장점들 덕분일 것이다. 언제나 기본은 하는, 성실한 감독이면서, 동시에 흥행감각까지 갖춘 감독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해 왔던 것이다. 류승완은 1억이 있으면 1억짜리 괜찮은 영화를 만들고, 20억이 모이면 20억짜리 괜찮은 영화를 만들며, 120억이든 220억이든 그 규모에 맞는 괜찮은 영화를 만든다. 더 많은 걸 바라는 건 과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