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에 관여한 혐의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27일 오후 석방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인 지원 배제 명단(블랙리스트)을 만들고 실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의 1심 선고를 두고, 참여연대가 "헌법과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중대한 훼손과 직권남용 및 실제적 강요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양형이다" "국민들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28일 논평을 통해 블랙리스트 1심 판결에 대한 깊은 유감을 나타냈다.
"어제(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30부(부장판사 황병헌)는 정치적 반대 문화예술인들을 국가 지원 사업에서 배제하기 위해 이른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등을 주도한 핵심인물인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징역3년을 선고했고, 김기춘 전 실장과 함께 협의, 실천했던 김종률 전 교문수석,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등 관련자들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조윤선 전 장관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위증한 것만 유죄로 인정되고 블랙리스트 관련은 무죄가 선고됐다."
참여연대는 "블랙리스트는 헌법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와 국가의 중립성 의무를 심대하게 훼손해 민주주의의 기본을 흔든 사건"이라며 "국민에 의해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중대 범죄혐의 중 하나"라고 규정했다.
이어 "이번 판결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며 "그러나 재판부가 관련자 전원에게 유죄를 선고하였다고는 하지만 국민의 눈높이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 판결이라 깊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정치권력의 기호에 따라 국가의 자원 지급을 차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헌법과 문화기본법이 보장하고 있는 문화표현활동에서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인정했다. 이로써 법치주의와 국가의 예술지원의 공정성에 대한 문화예술계와 국민의 신뢰가 훼손됐고 그로 인한 피해 정도를 쉽사리 가늠하기조차 어렵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김기춘 전 실장에 예술위 책임심의위 선정, 문예기금 등 지원배제, 영화 관련 지원 배제 도서관련 지원배제 등에서 단순한 공모자에 그치지 않고 가장 정점에서 지시, 실행 계획을 승인한 범죄의 본질적 기여자로 인정하면서도 3년을 선고한 것은, 범죄의 중대성과 사회적 파장에 비해 국민 눈높이에 훨씬 미치지 못한 양형이란 비판을 받을 만하다."
◇ "이 사건은 국가권력 사유화해 사적 이익 취한 국정농단 사건과 한덩어리"
특히 참여연대는 "조윤선 전 장관에게는 '청와대 정무수석 재임 당시 비서관 등에게 블랙리스트 보고를 받거나 승인했다고 보기 어려워 관여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부분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꼬집었다.
"조윤전 전 장관이 정무수석으로 재임할 때 정무수석실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 조 전 장관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관련자 한두 명이 그에 부합하는 진술을 했다고 해서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블랙리스트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전 실장이 대통령 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지시를 내리고, 청와대 각 수석들이 문체부에 이를 하달하면 문체부 공무원들 등 관련 기관에서 집행하는 구조였다."
참여연대는 "청와대 내에서 조직적으로 진행된 작업에 대해서 조 전 장관이 배제됐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고 몰랐다는 변명을 수긍하기 어렵다"며 "최소한 조 전 장관은 관련 부서의 책임자로서 블랙리스트에 대해 알고 있었거나 적어도 암묵적 승인 내지 동조한 것으로 보는 것이 국민 일반의 상식"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부당하게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의 사직서 제출을 지시한 부분을 직권남용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블랙리스트 사건의 핵심 쟁점인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행위에 대해선 책임을 물을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라며 비판을 이어갔다.
"그러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사적 이익을 공고히 하고 정치적 비판 입장을 억누르기 위해 국가공무원을 동원해 비판세력을 국가의 자원배분에서 철저하게 배제시켰다는 것이 본질이다. 대통령이 가지는 상징적·실체적 권한이 막중한 만큼 책임 또한 크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일일이 배제명단을 거론하거나 구체적으로 지명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이 사건의 정점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끝으로 참여연대는 "특검이 항소하겠다고 밝힌 만큼 관련 증거를 보강하고 공소유지 활동에 최선을 다해 관련자들이 엄정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2심 재판부가 국민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부분을 제대로 판단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적어도 이번 사건은 일반적인 직권남용 사건과 다르다는 것이 국민 여론이다. 국가권력을 사유화해 사적 이익을 취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한덩어리인 이번 사건은 정치적 반대 세력을 배제하기 위해 국가공무원제도와 국가의 자원 배분 권한을 남용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만으로도 중한 처벌이 필요한데, 이 블랙리스트는 장시간 계획되고 실행됐고 그로 인해 문화예술계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다시는 누구도 이런 헌법파괴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분명한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다. 사법부의 역할은 범죄에 대한 적정한 처벌을 판단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장차의 범죄에 대한 예방의 역할도 있다. 이번 1심 판결이 유감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