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감하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6일 체육회 기자단과 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진천=노컷뉴스)
대한체육회 출입기자단 간담회가 열린 6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오는 9월 선수촌 완공을 앞두고 시설을 점검하고 관련 사항을 브리핑하는 자리였다.
더불어 선수촌이 태릉에서 진천으로 이동하면서 생기는 문제점들에 관한 논의도 이뤄졌다. 기자회견에 나선 이기흥 체육회장과 이재근 선수촌장은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과 병원, 편의점 등 부족한 시설 등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고 해결 계획을 밝혔다.
다만 이날 회견에서는 사실 선수촌과는 관련이 없는 민감한 주제들에 대한 질문이 적잖게 나왔다. 일단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서 촉발된 내년 평창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과 관련해 기자들이 궁금증을 드러냈다.
지난달 24일 전북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회식 축사에서 문 대통령은 "최초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한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대회의 영광을 내년 평창올림픽에서 다시 보고 싶다"며 사실상 남북 단일팀을 제안한 바 있다. 이에 방한했던 장웅 북한 IOC 위원은 "정치적으로 엄혹한 현실이라 어렵다"면서 "두 나라 NOC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NOC는 국가올림픽위원회로 한국은 대한체육회가 그 역할을 수행한다. 남북 단일팀과 관련한 실무 부서가 체육회와 북한 NOC다.
일단 이 회장은 NOC 위원장으로서 남북 단일팀 관련 질문에 대해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면서 "하고 싶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협의) 상대가 국내에 있는 것도 아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다만 북한의 올림픽 참가는 남북 스포츠 교류와 화해, 또 동질성 회복에 굉장히 필요하다"는 긍정적인 답을 내놨다.
추후 북한 NOC와도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회장은 "북한이 올림픽에 오면 평화 무드가 조성되고 다른 국가들도 마음 편하게 안전하게 출전할 수 있다. 또 안보 문제로 우려되는 외국인 관광객 부분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때문에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협력을 구할 필요가 있고, 남북 NOC도 얘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오후 전북 무주 태권도원에서 열린 '2017 태권도세계선수권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자료사진=황진환 기자)
하지만 이 회장은 이어지는 질문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단일팀이 되면 열심히 훈련해온 국내 선수들이 올림픽에 나서지 못해 피해를 주는 경우도 생기는데 문 대통령이 이 부분을 체육회와 먼저 협의를 했느냐"는 질문이었다.
일단 이 회장은 "어느 정도 (정부와) 의견이 교환됐고, 공감대가 있었을 것"이라면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선수들이 피해를 받지 않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했다"는 답을 내놨다. 이에 "단일팀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냐"는 질문이 나왔다. 체육회 수장이 직접 이 문제를 논의했다면 나오지 않았을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에 이 회장은 "(단일팀과 관련해 청와대 측과) 직접적 얘기는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문 대통령이 축사에서 기본적인 것들만 함께 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얘기는 했지만 단일팀에 대한 구체적 얘기는 없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취재진이 문 대통령의 구체적인 표현을 얘기하자 이 회장과 이 촌장은 "상징적인 취지에서 예를 든 것이지 단일팀을 하자는 얘기는 아니었다"고 정리했다.
당초 문 대통령의 당시 발언은 공식적인 자리인 만큼 사실상 남북 단일팀 제안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여자 아이스하키 등 현실적으로 단일팀 가능성이 높은 종목에서는 "몇 년 동안 피땀을 흘리며 노력했는데 북한과 팀을 이루면 꿈의 무대에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충분한 협의 없이 대통령이 너무 이상적인 발언을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동계 종목이 약한 북한이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기도 쉽지 않다. 피겨스케이팅 페어 정도가 자력 출전이 가능한 종목으로 꼽힌다. 대회를 주관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토마스 바흐 위원장이 지난 3일 문 대통령을 만나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히긴 했다.
하지만 정치적 난관이 더 크다. 장웅 북한 IOC 위원은 "스포츠로 남북 관계를 해결하는 어렵다"면서 "정치는 스포츠보다 위에 있다"며 단일팀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북한은 연일 미사일 실험을 하면서 남북 관계를 긴장시키는 상황. 사드 문제를 둘러싼 중국과 미국 등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입장도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이 회장은 "새 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 안 됐고, 우리도 더 잘 하려다 보니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이제 얘기가 다 정리가 돼가고 있다"며 서둘러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의욕이 앞선 정부의 행보에 체육회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