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어제 외출을 하려고 거울을 보는데, 옷에 밥풀과 고춧가루가 붙어 있더군요. 그래서 그것을 떼고 나갔죠. 글쓰기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결국 나를 바라보는 행위니까요."시인 원재훈(57)은 26일 CBS노컷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글쓰기를 두고 "나를 찾는 여정"이라고 말했다.
"글쓰기는 자신이 지금 어떠한 상태이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적는 행위잖아요. 적어 두지 않으면 잊으니까요. '나'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은 결국 '너'에게로 가는 길입니다. '나'라는 정체성이 확실해야 '너'도 보이는 법이죠. 시쳇말로 '내가 돈이 있어야 너랑 밥도 먹는 것' 아니겠습니까. (웃음)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글로 적으면서 찾아가는 셈이죠."
지난 30여 년 동안 쉬지 않고 글쓰기에 매진해 온 그가, 최근 책 '다시 시작하는 글쓰기'(동녘)를 펴낸 데도 일상의 글쓰기를 강조하려는 뜻이 컸다. '글포자(글쓰기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는 출판사의 홍보 문구도 이와 같은 맥락이리라.
"5년 전부터 친구들이 제게 '글쓰기 책을 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해 왔죠. 아시다시피 이쪽(글쓰기 책)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입니다. '내가 책 한 권 더 낸다고 뭐가 달라질까'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던 차였죠. 종종 미당 서정주의 시를 보는데, 어느 날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구절이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등잔불 벌써 켜지는데… 오랫동안 나는 잘못 살았구나'라는 '수대동시'(水帶洞詩)의 한 구절이었죠."
"이 일을 계기로 오롯이 '나'로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책, '나'를 생각하고 표현하는 글쓰기 책을 염두에 두게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책에서 에세이, 그러니까 일반적인 산문을 잘 쓰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려 애쓴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 책의 콘셉트는, 원재훈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나'로부터 시작하는 산문적 글쓰기"다.
◇ "간결한 '문장'을 쓰되 꼼꼼히 '조사'를 살펴라…'교언영색'은 금물"
시인 원재훈(왼쪽)과 그의 저서 '다시 시작하는 글쓰기' 표지(사진=원재훈·동녘 제공)
원재훈은 글쓰기 비결로 "세상에 예외가 없을 것"이라며 '간결하게 쓰기'를 첫손에 꼽았다.
"문장을 간단하게 쓰는 것은 모든 글쓰기의 출발점입니다. 소위 '간결체'죠. '만연체'(한 문장을 길고 자세하게 늘어놓은 문체)의 대가들도 있지만, 그 시작은 어김없이 자신만의 간결체 스타일을 완성한 뒤 얻어지는 것이에요. 아무리 복잡한 생각도 간단한 글로 표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이어 그는 "글쓰기의 두 번째 비결은 '조사'를 잘 쓰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는 결국 문장을 꼼꼼하게 보라는 말과 다름없어요. 문장을 가장 정확하고 꼼꼼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이 조사를 살펴보는 것이죠. 조사 하나만 바꿔도 완전히 다른 문장을 쓸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링컨의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문을 번역한 것인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에서 조사의 변화에 따라 완전히 다른 뉘앙스를 전달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바늘로 우물을 파듯이' '문장에도 온도가 있다' '마음대로 말고, 마음으로' '마음의 허를 찔러라' '정직하게 쓰라' 등 글쓰는 사람의 진심을 강조하는 소제목들이 유독 눈길을 끈다. 이는 "글쓰기의 핵심은 진정성에 있다"는 원재훈의 지론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일 좋은 문장을 한마디로 말하면 '정직한 문장'입니다. 문학도 마찬가지예요. 문장은 정직하지 않은데 미사여구만 쓰다 보면 공자가 말한 '교언영색'(남에게 잘 보이려고 그럴듯하게 꾸며 대는 말과 알랑거리는 태도) 밖에는 안 됩니다. 정직한 마음으로 간단하게 글을 쓰면, 대가까지는 안 되더라도 보고서, 이력서, 산문을 쓰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여기에 감각과 감성을 살리면 문장에 온도가 생깁니다. 비로소 '나'의 진심이 '너'에게 전달되는 거죠."
원재훈은 끝으로 "글쓰기를 특별한 일로 여기지 말고 세수하듯이, 거울 보듯이 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단한 메모부터 시작해 글쓰기를 습관으로 만들면, 거창하게 작품까지는 안 가더라도, 적어도 자기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은 갖게 될 거예요. '글을 잘 쓰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는 분들에게 이 책이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일기, 편지, 메모와 같은 일상의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어요. 이러한 일상적인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면, 그것이 결국 읽기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삶은 보다 풍요로워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