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노동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앞다투어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던 공공기관들이 새 정부의 성과연봉제 폐기 결정에는 '시간 끌기', '눈치 보기'에 들어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산업인력공단 노조는 지난 21일 열린 노사협의회에서 박영범 이사장이 성과연봉제 폐지를 미루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 산업인력공단 현상훈 위원장은 "당시 박 이사장은 '당장 (성과연봉제 도입을) 환원할 것은 아니다. 소송을 계속 진행할 것이다. 다만 소송을 진행하면서 노사 협의는 계속 하겠다'고 발언했다"고 밝혔다.
현 위원장은 "이날 협의회는 성과연봉제에 대한 후속조치를 논의한 자리"였다며 "공식적인 기록은 협의점을 찾자는 결론으로 남겨졌지만, 실제 이사장의 발언은 노사 간 소송을 끝까지 가겠다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산업인력공단은 노조 동의 없이 이사회 의결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던 48개 공공기관 중 한 곳이다. 이에 불복한 노조가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인데, 공단 측이 당장 성과연봉제를 철회할 수 없고, 오히려 소송을 계속 진행하겠다며 나섰다는 얘기다.
현 위원장은 "공단 측이 박근혜 정부 시절 추진했던 사항에 책임감을 갖고 잘못을 시인해야 할 일"이라며 "박 이사장의 발언은 (성과연봉제 철회에 대한) 거부 의사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공단 측은 노사 협의를 계속하자는 취지일 뿐이며, 법정 공방은 소를 제기했던 노조가 마무리할 문제라고 해명했다.
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여러 맥락 속에 나온 얘기 중 일부를 부각한 것"이라며 "성과연봉제 관련 논의에 소극적이거나, 고의적으로 늦추려는 의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조가 지적한 소송을 계속 진행하겠다는 등의 이사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노조가 제기한 소송인데 노조가 취하할 일 아니냐"며 "현재 공단도 노사합의로 임금체계 개편TF를 구성해해 논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노동계는 비단 산업인력공단 외에도 대다수 공공기관들이 성과연봉제 폐기에는 눈치보기에만 급급하다고 비판한다.
현 위원장은 "산업인력공단이 있는 울산의 주변 공공기관을 봐도 대부분 성과연봉제 폐기에 미온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실무적 어려움도 있겠지만, 공공기관 임원들 특유의 '굳이 내가 먼저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물론 대다수 공공기관들이 사실상 성과연봉제 철회로 돌아선 정부 방침에 정면으로 반발하며 성과연봉제를 장기간 고집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또 새 정부가 성과연봉제 확대를 위해 마련한 '당근'과 '채찍'만 제거했을 뿐, 직무급제 등 구체적인 대안과 관련 가이드라인은 아직 제시하지 않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목됐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정확한 정부 지침은 '성과연봉제 즉각 폐기'가 아니다. 노사 합의를 통해 각 기관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했다"며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정부의 후속 지침이 있을 수도 있고, 아직 어느 기관도 결론이 나온 곳이 없어 신중히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노동계의 격렬한 반발을 무릅쓰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120개 공공기관이 성과연봉제를 전격 도입하고, 심지어 48개 기관은 노조 동의조차 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통과시켰던 모습과 지금의 '눈치보기'는 사뭇 대조적이다.
더구나 일각에서는 임기가 보장된 공공기관 임원 중 아직 남아있는 박근혜 정부 코드의 인사들의 경우 성과연봉제 버티기에 나설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공동대책위원회 김철운 간사는 "사실상 7월까지 이사회를 열어 성과연봉제를 철회하라는 것이 정부 방침"이라며 "6월 말~7월 초 사이에 이사회 일정을 준비하는지, 혹은 성과연봉제 폐기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드러내는 임원은 없는지 확인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성과연봉제 폐기가 늦어지면 오히려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관련 인센티브를 욕심내는 철밥통이라는 오해까지 부를 수 있다"고 토로하며 "성과연봉제 폐기 방침에 불복하는 기관장 명단을 작성해 공대위 차원에서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