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김연수 진료부원장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고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 로 변경한 것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자리를 뜨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사망진단서 수정은 어렵다"던 서울대병원이 '물대포 사건' 피해자 故백남기 씨 진단서를 사망 9개월 만에 '질병사'에서 '외인사'로 고치고 나섰다.
다만 사망진단서를 작성한 주치의 백선하 신경외과 교수가 외압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일축했다.
◇ 정권 바뀌니 사망원인도 바뀌어?서울대병원은 1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언론설명회를 열고 백 씨의 사망진단서상 사망의 종류를 '외인사'로 수정했다고 밝혔다.
병원 측은 "백 씨는 외상에 의한 경막하출혈 이후 수술 등 치료 과정에서 패혈증이 생겼고 이로 인해 급성 신부전이 발생해 사망했다"고 입장을 고쳐 내놨다.
당초 지난해 9월 백 교수가 작성한 사망진단서에는 "급성 경막하출혈로 급성 신부전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심폐정지'로 병사했다"고 돼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 외압 논란이 일자 병원 측은 특별조사위원회까지 열어 "작성된 진단서가 대한의사협회 지침과 맞지 않다"면서도 진단서 수정은 어렵다고 밝혔다. "판단은 주치의 재량"이라며 책임을 피하려 할 뿐이었다.
그러나 올 1월 유족 측에서 진단서 수정 및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하자 병원은 그제야 '병원윤리위원회'를 열어 재논의를 시작했다.
세간의 숱한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백 교수를 보직 해임하고 진단서에 함께 이름을 올렸던 전공의가 새로 결정하도록 한 것.
정권이 바뀐 뒤 '뒷북'으로 결정한 게 아니냐는 지적에 병원 측은 "병원 내 구성원과 원로들을 만나 의견을 듣고 과장회의·간부회의 등을 거쳐 피드백을 받느라 시간이 걸렸다"며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 그랬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해당 전공의가 백 교수에게 지도를 받는 동안은 논의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4월 말로 지도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다시 진행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서울대병원 김연수 진료부원장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고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 로 변경한 것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이날 김연수 진료부원장은 "오랜 기간 상심이 크셨을 유족분들께 진심으로 깊은 위로의 말씀과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며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하여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다만 최근 감사원 감사를 앞둔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에는 "감사와 연결되는 건 놀랍다. 질문에 당황스럽다. 원래부터 받기로 한 정기감사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6개월이 길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교수님들이 합의해주시고 결정해주셨다고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 "신뢰 회복하겠다"면서 20분 만에 끝내려
병원 측은 이와 함께 최근 의사 개인의 결정을 전문가집단의 판단으로 다시 논의할 수 있도록 하는 '의사직업윤리위원회'를 병원윤리위와는 별도로 구성했다고 강조했다. "서울대병원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설명회를 시작한지 20여 분 만에 황급히 빠져나가려 하다 장내 거센 반발을 받고 재개했다. 병원장이 자리에 직접 나오지 않은 이유로는 "기자회견이 아니고 간담회 형식으로 설명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이숭덕 교수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고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 로 변경한 것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병원 측은 또 백 교수를 징계위에 넘길지는 논의한 바 없다고 밝혔다. 이숭덕 법의학교실 주임교수는 "진단서를 수정하는 일을 저는 자주 보는데 이 경우는 사회적으로 커졌다"면서 "제가 아는 백선하 선생님은 외압에 흔들릴 사람이 아니다. 동기로서 그렇게 본다"라고 말했다.
이날 서울대병원노조 조합원들은 설명회 이후 밖으로 나가는 부원장 등을 향해 "서창석 병원장과 백선하 교수를 파면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세게 항의했다.
유가족을 돕던 시민사회단체연합 '백남기투쟁본부'는 "이제라도 사망원인을 왜 병사로 기재했는지 규명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최소한의 양심도 저버리고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서울대병원의 오욕을 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농민 백남기 씨는 지난 2015년 11월 14일 제1차 민중총궐기 집회중이던 서울 종로구 종로구청 앞 사거리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 이후 서울대병원에서 연명치료를 받다 지난해 9월 25일 317일 만에 결국 숨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