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나누기와 유연근무제 확대를 대선과정에서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시범 운영 중인 은행에서는 벌써부터 내부 잡음이 불거지고 있다.
신규 채용 등 보완책 없이 섣불리 유연근무제가 도입되면서, 한정된 인력과 업무량으로 인해 유연근무제를 신청한 직원들이 초과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특히 KB국민은행의 경우, 초과근무 문제가 사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상태다.
유연근무제가 시행 중인 서울의 한 KB국민은행 지점 직원은 "12시부터 7시까지 근무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반 직원 마감이 4시라면 유연근무 하는 직원 마감은 7시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결국 8-9시 퇴근하게 되고, 출근은 11시, 일 많을 때는 10시인 경우도 허다하다"고 상황을 전했다.
업무량이 많으니 초과 근무는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다는 그에게 '회사가 인원을 더 보충해주는 게 본래 유연근무제 취지에 맞지 않냐'고 하자, "회사가 (신규채용을) 하려 하겠냐"는 반문도 돌아왔다.
KB국민은행이 지난해 12월부터 도입한 유연근무제 파일럿(시범) 점포는 강남역 지점, 목동서로 지점, 양재역 종합금융센터 등 모두 3곳이다.
유연근무제는 직원들이 탄력적으로 근무하고 고객들도 보통 은행 마감인 오후 4시를 넘겨 방문할 수 있다는 장점에 따라 도입됐다. 시차 출퇴근제, 2교대 근무제, 애프터뱅크, 아웃바운드라운지 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당초 KB국민은행은 희망 영업점을 상대로 유연근무제를 확대할 계획이었으나, 노조가 초과근무 문제를 제기하면서 확대 시행이 어려워졌다.
양측은 이달 초 1/4분기 노사협의에서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려 직원 의견을 수렴해 문제점을 개선해 가기로 합의했다. 이때 유연근무 신청 직원들의 업무용 컴퓨터(PC) ON-OFF(피씨온오프)제도를 도입하는 내용도 적어넣었다.
업무용 컴퓨터(PC)-OFF 시간을 오후 7시 30분으로 하는 내용, 추가 근무가 발생할 경우 4시간당 0.5일의 보상휴가를 지급하는 내용 등도 포함됐다. 현장에서 초과근무가 계속 문제되자 아예 강제조치를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다만, KB국민은행이 '전산장비 구축이 완료된 후 시행'이라는 취지의 단서조항을 달면서 실제 시행 여부와 시점은 불투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KB국민은행 노조 관계자는 "유연근무 본래 취지는 직원 시간을 탄력적으로 쓰자는 건데, 실상은 일을 더 많이 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전산장비 구축 문구가 시점 등을 명확히 하지 않아 불안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KB국민은행의 유연근무제 취지는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공약, 일과 가정의 양립 방침과 맞닿았을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불협화음을 내는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업무량이 많아진다면, 일과 가정의 양립은커녕 직원 간 불신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한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좋은 취지에서 유연근무제가 도입됐는데 일찍 출근하거나 늦게 퇴근하게 되는 유연근무 직원들을 중심으로 불만이 나올 수는 있다"며 "시행착오 과정인데, 개선책을 만들어가려고 회사 차원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은행의 디지털화를 추진하는 업계 실정상 신규 인력 채용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가능성에 대해서는 "비용절감 차원에서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앞서 KB국민은행 노조가 유연근무제 실시 지점 근무자 47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근무시간을 준수하냐는 질문에는 72%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고 76.1%는 유연근무제 희망자 선택의 자율성도 보장되지 않는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