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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文, 보면 눈시울 붉어져…상식에 굶주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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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실상 알린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전면 개정판 출간

- 자신은 피해자라는 전두환.. 사법의 내란죄 판결과 국민저항권 무시하는 것
- 국토방위 하던 정규사단까지 광주로 투입.. 북에 대한 염려 없었다는 반증
- "현재 민주주의 체제는 5. 18에서 출발해 6.10항쟁에서 완료된 것"
- 헌법에 넣을 518정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열어둔 정신!
- 5.16 때 19살, 이제 일흔다섯.. 독재 잔재가 청산되는데 한평생이 걸려
- 朴 정부 하에서의 블랙리스트.. 은행계좌까지 수사용이라며 뒤져 봐
- 세월호는 교통사고 중에서도 정부의 뺑소니범죄.. 무능 무책임을 비판에 협박까지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7년 5월 23일 (화)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황석영 작가

◇ 정관용>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5. 18의 실상을 엄혹한 시절에 처음으로 정확하게 알린 책이죠. 이번에 전면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황석영 선생 스튜디오에 특별히 초대했습니다. 선생님, 어서 오십시오.

◆ 황석영> 안녕하세요.

◇ 정관용> 책이 한 2배쯤 두꺼워졌어요, 처음 나왔던 때에 비해서.

◆ 황석영> 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또 겪은 사람들로 인터뷰를 하려고 보니까. 부족한 부분도 많고. 극우 쪽에서 또 이상하게, 이를 테면 북한군 특수군이 와서 했다든가 또는 가혹행위는 오히려 시민군이 했다든가 이런 지적들이 있어서 그 부분을 아주 확실하게 하느라고 분량이 아무래도 늘어났죠. 목격자의 회고담도 더 이제 정확한. 여러 가지로 크로스체크를 해서 같은 장소에 있었던 사람도 사람마다 다를 수가 있으니까. 그렇게 해서 이게 한. 개정판을 하자, 이렇게 한 것이 2013년에 기획을 했거든요.

◇ 정관용> 4년이나 걸리셨네요.

◆ 황석영> 4년이나 걸렸습니다.

 

◇ 정관용> 이제는 뭐 누구도 광주에 대해서 이상한 소리 못하게끔 완결판을 내셨다, 이런 생각이 드네요. 처음 나온 게 몇 년도였습니까?

◆ 황석영> 85년 5월 초에, 그전에부터 준비를 했다가. 그때 지하에서 편집위원회를 만들었어요. 죽은 고 김근태 의원. 그때 이제 민주청년협의회를 하고 있었고. 그다음에 최광석이라고 민통련에 나가 있던 문학평론가 역시 고인이 됐습니다. 그리고 정상용, 도청에 마지막까지 있었던 외교부장 노릇을 했죠. 그리고 신동수라고 문화운동 쪽에 이제 이렇게 뒤에 뒷바라지를 하던. 그리고 저 그리고 당시 풀빛출판사 사장 나병식 사장 또 고인이 됐습니다. 그래서 그때 이제 모든 책임은 나병식 사장과 내가 지기로 하고 그다음에 각 개별로 민통련은 종교를 담당하든가 민총련은 학원가를 담당한다든가 해서 이 책을 배포하는 방법 이런 것까지 다 정해서 초판 2만 부를 찍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알고서 이제 덮쳐서 뺏었죠. 뺏었는데 다행히 우리가 다른 또 제2의 인쇄소를 예약해 두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손을 못 뻗쳤어요. 그래서 거기에서 한 1만여 권이 시중에 풀리면서 그게 복사본으로, 그때 당시에 복사기가 많았거든. 그러니까 출판사로서는 손해였지만 우리가 보급하려는 의도는 이제 성공을 한 셈이에요.

◇ 정관용> 아직까지도 북한군 침투설이니 그다음 얼마 전 전두환 회고록 나왔잖아요. 물론 안 보셨겠죠.

◆ 황석영> 안 봤습니다.

◇ 정관용> 볼 이유도 없고요. 자기는 희생자라고 주장하고 어떻게 생각하세요.

◆ 황석영> 글쎄 말이죠. 큰 얼개는 이건데 북한군이 내려와서 양민학살하고 그랬다는 거 하고 또 하나는 이게 폭동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광주항쟁이라고 하는 건 광주 사람들이 스스로 부르는 명칭이고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이렇게 정식명칭화됐는데 이건 어떻게든지 폄훼하고 왜곡하기 위해서 그 두 가지 큰 주장을 하는데요.

첫 번째 폭동이라고 그런 건 어불성설인게 뭐냐 하면 당시에 전두환 신군부가 집권하기 위해서 12. 12 쿠데타를 일으키고 그리고 광주에서 민주화 회복 요구가 커지니까 거기에 특수부대인 공수특전단을 내려보내서 마구잡이로 살상을 했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 군대는 나중에 전두환 신군부의 쿠데타 내지는 내란죄로 법정에서 결판이 났던 일이에요.

◇ 정관용> 단죄가 됐죠.

◆ 황석영> 단죄가 됐죠. 1차적으로 국군이 해야 될 일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있는 거죠. 그런데.

◇ 정관용> 보호하기는커녕.

5·18 광주민주화운동 자료사진. (5.18 기념재단 제공)

 


◆ 황석영> 광주로 내려간 군대는 신군부라는 그런 어떤 파당의 집권을 위한 사병에 지나지 않았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걸 정통의 국군으로 우리가 볼 수 있느냐 하는 문제하고 또 하나는 그리고 내려와서 살상하고 그랬을 때에 자기 생존권을 위해서.

◇ 정관용> 저항한 거죠, 저항.

◆ 황석영> 일어난 건 국민저항권이라는 게 헌법에 명시돼 있는 권리거든요. 그게 국민저항권이니까 이건 폭동으로 얘기하면 가당치 않다 하는 것하고. 그다음에 북한 문제는 북한에서 내려왔다 어쩌고 그러는데 지금 그때 당시에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 국내외 기자들.

특히 외신 기자들까지도 그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얘기하는 거고 또 최근에는 미국 측의 정보보고서에도 분명히 지적하고 있고요.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당시에 국토방위를 하던 정규 사단을 빼서 이렇게 내려보냈단 말이죠. 그리고 미국이 그걸 묵인했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반미정서에 시달렸죠. 그러니까 이건 신군부 자신과 미군 측이 전방에 사단을 빼서 광주에 투입할 정도로 북에 대한 염려가 없었단 얘기죠.

◇ 정관용> 역설적으로.

◆ 황석영> 역설적으로. 그러니까 이건 뭐 북한 특수군이 내려와서 저지른 일이라고 하는 게 이건 뭐 왜곡도 보통 왜곡이 아니죠.

◇ 정관용> 그렇죠. 이번에 전면개정판에는 그 미국의 보고서 이런 것들도 다 인용이 되어 있는 이런 거죠.

◆ 황석영> 그럼요.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 정관용>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헬기의 조준 기총사격.

◆ 황석영> 그것도 여러 가지로 짚어봤습니다마는 당시에 광주에 있었던 외국인 선교사 부부가 자기 집 위에 기총소사 하는 장면을 사진 찍어놓는 게 있고 그리고 외신 기자들도 그때 기총소사하는 헬기를 목격을 했어요. 목격자가 너무 많고 탄흔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헬기에 부착돼 있는 M60기관포로 쌌느냐 아니면 거기에 탑승한 군인이 소총을 발사했느냐 하는 건 이제 가려야 될 문제지만 헬기에서 사격을 했다는 사실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는 거죠. 헬기에서 사격을 할 정도로 말하자면 광주지역을 준작전구역 내지는 적으로 본 거죠, 적으로, 양민을. 뿐만 아니라 도청 근방이나 도청 근방의 전일빌딩이니 관광호텔이니 이런 옥상에서 저격수가 배치돼서 조준사격을 했어요. 그러니까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정말 참.

문재인 대통령(왼쪽 다섯 번째), 정세균 국회의장,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등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 정관용> 문재인 대통령 되고 나서 5. 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겠다. 어떻게 보세요?

◆ 황석영> 저는 당연하다고 봅니다. 왜 그러냐 하면 4. 19 이후에 1차 박정희 군사 독재 그다음에 2차 전두환 군사 독재 그렇게 해서 그 기간 동안에 우리가 아주 어려운 시절을 보냈는데요. 그리고 6. 29 선언을 통해서 이제 현재의 형식적 민주주의의 틀이 생기죠. 그래서 광주에서 출발해서 6. 10 항쟁에서 완료한 거예요. 현재의 헌정질서나 형식적 민주주의가 그때부터 시작이 된. 그러니까 당연히 현재 민주주의 체제는 5. 18부터 출발했다, 이렇게 봐야 하는 것이 아주 당연한 이치거든요. 그러니까 5. 18 정신은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남북이 평화로운 체제로 가는. 그러면서 상생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미래를 열어둔. 그런 정신이 5. 18 정신이라고 저는 보거든요.

◇ 정관용> 며칠 전 5. 18 기념식 때 임을 위한 행진곡 제대로 한번 제창이 됐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이 노래도 우리 황 선생님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잖아요.

◆ 황석영> 제가 제작했으니까.

◇ 정관용> 제작.

◆ 황석영> 당시에 광주도청에서 죽은 윤상원이 제가 만든 광대라고 하는 극단의 회장을 했고 그러다가 그 친구는 광천동의 들불야학으로 가서 그걸 운영하고 맡아서 있었는데 그전에 노동자로 들어가 있던 전남대생 박기순 양이 있었고요. 이 분이 과로로 죽었거든요. 그때만 해도 광주항쟁이 진압된 다음에는 유족들이 모일 수가 없었어요. 심지어는 망월동에 묻힌 공동묘지를 다 봉쇄해서 5. 18 부근만 되면 무슨 집회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좀 우리가 뚫어보자 그래서 박기순, 윤상원 두 사람의 영혼결혼식을 한다 하는 공연을 핑계로 대고 유족이 처음 모이게 됩니다. 그게 이제 82년인데. 그래서 그걸 하자마자 이걸 전국에 좀 알려야 되겠다 그래서 넋풀이라는 공연 대본을 내가 썼어요. 그리고 그 넋풀이라는 노래 대본을 가지고 우리 집에 모여서 리허설을 몇 번 하고.

◇ 정관용> 연습도 하고.

◆ 황석영> 연습도 하고 그리고 녹음을 3개를 떴죠, 녹음테이프를. 그런데 그중에서 제일 잘 된 게 좀 괜찮은데 노래도 잘 됐고 뭐 이렇게 호흡도 잘 맞았고 그런데 다만 녹음기 안에 우리 집 개가 짖는 소리가. 그리고 멀리 광주역을 떠나는 기차소리. 그래서 이거 어떻게 하냐 그러다가 기술적으로 이건 괜찮다. 왜냐하면 이런 급박함, 숨어서 하는 급박함이 이게 또 알려지니까 더 좋겠다 해서 그걸 선택을 했어요. 그래서 이걸 당시에 EYC 기독교청년협의회, 종로5가에 있는 거기에다가 제작을 맡겠죠. 그게 한 500개의 테이프가 만들어져서 전국으로 쫙 퍼지고 외국에까지 퍼졌습니다. 한 10여 년 지난 다음에 보니까 이게 이를테면 무슨 동아시아인터네셔널이야. 필리핀, 태국, 대만, 중국, 인도네시아, 일본 이런 데 노동운동단체나 시민사회단체가 다 자기네 버전으로 만들어서 다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 유튜브 들어가보면 각 나라별로 다 그게 나오는데.

◇ 정관용> 맞습니다.

◆ 황석영> 그렇게 돼 있죠. 그런데 그게 1982년이었는데 이게 이제 보훈처장하던 사람이나 일부 정치인들이 자꾸 의의를 훼손하고 그래서 수모를 줬죠. 이 노래를 못하게 하자. 그래서 하여튼 저는 해마다 5월만 되면 시달렸어요. 그래서 방북한 황석영이 김일성 지령을 만들어서 이걸 만들었다는. 이게 물리적으로 시간이 82년에 이 노래가 만들어졌고 내가 89년에 문익환 목사하고 방북을 했는데 시간상으로 지령을 받을 수 없잖아요. 말이 안 되는 얘기고.

◇ 정관용> 오래전부터 암약하던 고정간첩으로 보는 거죠.

황석영 작가(사진=사시자키 제작진)

 


◆ 황석영> 그런 거죠, 그런 거죠. 그렇게 주장하고 있고. 뭐 하여튼 그래서 제가 토리노 도서전에 이탈리아 책이 나와서 거기 있었습니다.

◇ 정관용> 최근 갔다 오셨죠?

◆ 황석영> 그래서 5. 18날 나를 수행해갔던 친구가 노래가 불려지는 장면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유복자 5. 18에 태어난 유복자 김소영씨가 대통령 품에 안겨서 우는데 우리가 그냥 그걸 스마트폰으로 그냥 화면을 들여다보면서도 저절로 눈물이 나더라고요. 아까도 우리가 얘기했지만 너무 상식적이고 당연한 장면인데 이렇게 감동을 받는 게 그동안 하도 우리가 비상식적 세계에 살았기 때문에 그런 장면만 봐도 눈물이 나는 거예요.

◇ 정관용> 전두환 전 대통령 회고록에서 뻔뻔하게 자기도 희생자다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한테 한마디. 또 박근혜 전 대통령, 오늘 첫 재판 받았습니다. 좀 해 주시죠.

◆ 황석영> 전두환 씨의 논리는 사람이 맞고서 쓰러졌는데 때리고 나서 때린 내 마음도 아프다 이런 식의 참 경강부회 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 저는 그래요.전두환 씨의 예를 봐서라도 이제 단죄할 건 단죄하고 끝까지 책임을 물어서, 역사에 대한 책임을 실제 우리가 보여주는 이런 게 돼야 되는데 대충 형식만 갖췄다 사면해 버리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거죠.

◇ 정관용> 사면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 황석영> 그렇죠. 그리고 개인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저 모습을 이렇게 나 지금 뉴스를 보고 왔는데 참 안타까워요. 나는 사실 선거에서 뽑혔으니까 어쨌든 간에. 그러면 아버지가 지은 근대사의 업보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공이 있고 과가 있다는데 나는 공은 그 사람들의 공으로 돌리고 싶지 않아요. 당시에 우리 민초들이 참 저임금에 시달리면서 그러면서.

◇ 정관용> 노동자 농민의 공이죠.

◆ 황석영> 노동자 농민이 피땀을 흘려서 근대화를 한 거예요. 그걸 끌고 나와서 내가 했다, 누가 했다.. 이건 어떤 집단이 하는 게 아니야. 정말 민초들이 한 건데 어쨌든 간에 유신도 일으키고 또 종신 대통령하려고 억압을 하고 그랬던 아버지의 그 업보를 딸이 좀 짊어지고 그걸 풀어나가면서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5. 16 때 제가 고등학교 3학년 19살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내가 어느덧 일흔다섯 살이 되었어. 그러니까 대장부 한 평생이 지나간 거야. 그래서 근대 개발 독재의 그런 잔재 내지는 그런 우리 사회 속에 스며들어 있는 그런 잔재들을 청산하는 데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구나. 그런 새삼스러운 회환을 느꼈습니다.

◇ 정관용> 블랙리스트 때문에 선생님도 호대게 당하셨죠?

◆ 황석영> 귀찮죠. 말하자면 옛날에 군사독재 시절 이럴 때에는 글 좀 써서 걸리면 잡혀가고 안기부 가서 조사받고 귀싸대기도 맞고 이렇게 하니까.

◇ 정관용> 해외로 추방도 되고.

◆ 황석영> 추방도 당하고 별 하여튼 일을 다 겪었는데 그때에 비하면 이건 슬쩍 이렇게 송곳 같은 걸로 슬쩍 교묘하게 이렇게 해서 심리적으로 굉장히 괴롭히는. 이를 테면 회유와 협박을. 회유는 네가 이러이러한 관변단체의 이런 걸 맡으면 어떠냐?

◇ 정관용> 박근혜 정부에서 영입 정책이 있었습니까?

◆ 황석영> 민간 그런 게 있잖아요. 또 한 가지는 만약 계속 이렇게 비판적으로 이렇게 하시면 망신을 당하거나.

◇ 정관용> 가만 안 둔다?

◆ 황석영> 이런식으로 할 겁니다. 그러니까 조심을 해야 될 겁니다 이런 얘기와 동시에...사실 그 블랙리스트가 본격화된 건 세월호 이후입니다. 그게 계기가 된 건데. 좀 그렇잖아요. 거의 한쪽에서는 세월호를 교통사고라고 해안사고라고 우기는데 교통사고도 교통사고 나름이지 교통사고 그 자체는 과실이에요, 과실범이지만 뺑소니는 범죄라는 말이에요.

그런데 이 뺑소니는 누가 했느냐. 정부가 자기의 책임을 방지하고 뺑소니를 쳐 버린 거와 똑같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말하자면 이 정부의 무능 그리고 무책임 이걸 비판을 했더니 그다음에 이제 내 기억에 의하면 아마 그 뒤부터 본격화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일례를 들면 은행계좌를 뒤진다든가. 나는 꼭 동대문지점에서 뒤져보더라고요. 그리고 또 검찰이 됐다가 국정원도 됐다가 그래. 그래서 통보가 와요, 또. 통보해 줘요.

◇ 정관용> 몇 달 지난 후에 통보가.

◆ 황석영> 네, 몇 달 지난 다음에. 당시 계좌가 우리 수사상 필요해서. 내가 무슨 돈 거래를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니고 뻔한데. 하여튼 그런 식으로 이렇게 쭉. 그리고 국제적으로 뭐가 이렇게 돼서 영화 영진이나 또는 문예진흥위나 이런 데서 지원도 받고 또 협조도 바라고 이런 건수들이 있잖아요. 영화라든가 뮤지컬 그리고 드라마, 애니메이션 이렇게 한 네 가지가 있었는데 그게 다 계약 단계 가서 흐지부지 돼 버리고 그쪽에서 선생님께 곤란해서 우리가 못 하겠습니다, 이런 식의 얘기만 들어온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나중에 블랙리스트 얘기가 나왔는데 이게 이거로구나, 알게 됐죠. 그런데 내가 원로이고 나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고 책도 많이 썼잖아요. 말하자면 문단 원로인데 나한테 이럴 때에는 젊은 사람들한테 어떻게 했겠냐. 오죽 했겠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 정관용> 문재인 대통령 되고 며칠 안 됐습니다마는 요즘 그래도 마음이 편안하세요?

◆ 황석영> 아니, 뭘 아무것도 아닌 정말 그냥 상식적으로 저렇게 해야 돼 이런 행동만 해도 눈시울이 퀭해진다고. 이게 하도 그동안 굶주려서 그런 모습을 못 봐서. 그래서 지금 개표하던 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술 얻어먹어가지고 그래서 지금도 정신을 가다듬어서 냉정을 되찾으려고 그럽니다.

◇ 정관용> 조금 있으면 자전이 나온다고요?

◆ 황석영> 네. 그건 말 시켜줘서 참 고맙네요. 지난 연말에 그게 책이 나왔어야 되는데 촛불집회에 그걸 못 참고 이 늙은이가 매일 나갔다 독감이 걸리고 폐렴까지 앓아서. 3개월 온 겨울을 봄이 올 때까지 앓다가 일어나서 그래서 지금 늦어서 늦게 6개월이나 늦게 6월 8일날 나옵니다.

◇ 정관용> 몇 매나 됩니까?

◆ 황석영> 그게 아마 한 4000매 가까이 돼요. 그러니까 책 두 권으로 나오는데.

◇ 정관용> 선생님 인생이 4000매에 들어갑니까? 제가 볼 때는 한 4만 매는 써야 될 것 같은데.

◆ 황석영> 사실 그게 한 3분의 1 쳐낸 거예요,하도 두꺼워서. 하도 사연이 많아서. 그래서 내가 써도 써도 안 끝난다. 맨날 이렇게 에피소드가 너무 많아서 그랬더니 주변에서 제 친구들이 과거에 저지른 일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고.

◇ 정관용> 정확합니다, 그 말이. 제목이 뭡니까?

◆ 황석영> 수인이에요.

◇ 정관용> 수인? 죄수 수인?

◆ 황석영> 갇힌 사람 수인. 그러니까 마지막 문장에서 따온 건데. 마지막 문장이 뭐냐 하면 시간의 감옥. 그다음에 언어의 감옥 그리고 냉전의 박물관으로 남은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내가 갈망하던 자유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이었던가. 이런 마지막 문장이 있어서 그래서 제목을 수인으로 했죠.

◇ 정관용> 선생님 보니까 평생을 수인으로 살아왔다. 6월 8일 책이 나온다고요. 나오자마자 이 프로에 다시 오셔야죠?

◆ 황석영> 그럼 좋죠. 재미있는 얘기가 많으니까.

◇ 정관용> 예약해 두고요. 오늘은 여기서.

◆ 황석영> 반가웠습니다.

◇ 정관용> 황석영 선생님 만나봤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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