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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죽음…'ㅇㅇ때문에 내 세계가 무너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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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지워내는 '직장 괴롭힘'은 시한폭탄

(일러스트=강인경 디자이너)

 

#1. 청년 공무원의 죽음
너에게는 꿈이 있었어. 가족 중 공무원이 많았지. 자연스레 공무원 되는 게 꿈이었다. 쉽지는 않았어. 1년을 노량진 공시생으로 지내봤지만 그곳의 풍토가 맞지 않았는지 너는 그곳을 떠났어.

그러고 나서 집 근처 독서실을 다녔어. 너는 절실한 마음으로 독학을 시작했지. 하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너에게 쉽게 기회를 주지 않았어. 너처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던 거야.

1년, 2년 그리고 3년이 지나서야 너는 꿈에도 그리던 9급 공무원이 되었다. 꿈을 이룬 너의 자부심은 대단했어. 서울의 한 구청으로 첫 출근을 했지. 2016년이었어. 한껏 갖춰 입고 부푼 가슴으로 발걸음을 내디뎠을 너의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예상보다 업무가 많았어. 30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기다린다는 불금에도 너는 보고서와 씨름을 했다. 주말에도 나와 잔업을 했어. 평일 야근은 일상이었지. 올해 초 외부 관할 센터로 발령받은 이후로 맡은 일은 늘어만 갔어. 친구에게 힘들다고 털어놔도 위로받는 건 잠시뿐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어.

숨진 9급 공무원 A씨의 업무수첩(사진=A씨 유족 제공)

 

꽃 피는 4월의 어느 날, 너는 출근하는 대신 양화대교로 갔다. 4월의 꽃보다 더 찬란하고 눈부신 서른 살 청춘의 너는 세상에 작별 인사를 건넸어. 너에게 목소리가 닿을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말해주고 싶어. "얼마나 힘들었을까?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라고.

#2. 청년 검사의 죽음
바늘구멍 같은 사법시험을 통과한 너는 대한민국 검사가 되었다. 형사부는 유독 사건이 많은 곳이었지만, 너는 맡은 일을 묵묵히 잘 해냈어. 그 상사를 만나기 전까지는.

부장검사의 폭언과 폭행, 인격모독을 너는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을 거야. 부장검사는 장기미제 사건을 미리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너를 힐난했지. 술자리에서 너의 등을 치기도 했다.

지옥 같았던 4개월의 시간, 너는 수화기를 붙잡고 목놓아 울었어. 아들의 통곡을 생전 처음 접한 부모는 까무러치듯 놀라 너의 마음을 어루만졌으나 너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 너는 유서에 이렇게 적었어. '힘들다, 자고 싶다, 쉬고 싶다, 보고 싶다'라고.

고 김홍영 검사의 어머니 이기남 씨

 


#3. 청년 피디의 죽음
청년 세대를 깊이 위로했던 드라마 혼술남녀가 종영한 이튿날 너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너는 이 드라마를 촬영하는 55일 동안 단 이틀을 쉬었고, 하루에만 90번 넘게 전화통을 붙잡았지.

네가 세상을 등진 건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어. 너는 노동자가 노동자를 짜내도록 강요하는 조직 문화를 특히 환멸했다. 너의 유서를 그대로 옮긴다.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사회생활이란 그렇게 즉각적인 승리감을 주는 곳이 아니었고, 지금 그만두면 패배자이자 중도 포기자 낙인이 찍힌다는 두려움에 밖으로 한걸음 내딛지 못했다는 너의 마지막 말은 숱한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눈물을 떨구게 했다.

※위 기사는 유족의 증언과 언론 보도 내용 등을 토대로 2인칭 시점에서 재구성했습니다.

고 이한빛 피디의 어머니 김혜영 씨

 

스스로 목숨을 끊은 9급 공무원 A씨(지난 4월 사망 당시 30세), 서울 남부지검 고 김홍영 검사(지난해 5월 사망 당시 33세), tvN '혼술남녀' 조연출 고 이한빛 피디(지난해 10월 사망 당시 28세)의 얘기다.

청년들이 죽어가고 있다. 어려운 관문을 뚫고 정규직에 취직한 청년 노동자들은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우선, 청년층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캥거루족', '엄친아', '헬리콥터맘'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현재의 청년 세대는 부모의 높은 관심과 애정 속에서 자라왔다. 그만큼 자아 정체성과 자존감이 강한 세대다.

직업 선택의 기준도 복합적이다. 과거에는 고용 안정성과 급여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풍조가 강했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층은 직장이 제공하는 물질의 안락함만을 좇지는 않는다. 안정성과 급여 못지않게 성취감도 직업 선택의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지난 2월 1년 내 퇴사 경험이 있는 남녀 직장인과 구직자 153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1위(36.7%)가 '나의 미래 비전이 낮아 보였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이런 답변은 20대(38.3%)와 30대(35.3%) 순으로 높았다.

정연순 생애진로개발센터 센터장의 보고서에는 자율성이 떨어지고 장시간 근무하는 노동환경 때문에 퇴사를 결심한 한 정규직 근로자의 고충이 담겨 있다.

"실장님 때문에 디자인팀이 퇴근을 못하는데 시도 때도 없고 밤낮도 없고 점심도 없어요. 햄버거 먹다가 'OO야!' 부르면 뛰어가야 해요. 저는 제 삶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울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

 

자아 성취감이 높은 청년 세대에게 상사의 폭언이나 과중한 업무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서유정 부연구위원은 "반듯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힘든 과정을 통해 얻은 직장에서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받거나, 상사의 폭언이 겹치게 되면 그동안 살아왔던 세계가 흔들리는 느낌일 것"이라고 말했다. 삶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직장의 '꼰대'들은 적지 않은 형편이다. 지난해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15개 산업 분야 노동자 200명씩 모두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노동자의 21.4%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 19대와 20대 국회에서 잇따라 발의됐지만, 기한을 넘겨 폐기됐거나 계류된 상태다. 해당 법안들은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을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에게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프랑스와 캐나다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지표를 개발하고 이를 관리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서 부연구위원은 "무엇이 직장 괴롭힘 행위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문제는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권위주의적인 조직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라며 "기득권자는 옛날 방식을 고집하지 말고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고문헌
- 정연순, 초점집단면담을 통해 본 청년 니트 유형과 특성(2013년)
- 이기종·곽수란, 가정배경과 청년기 진로발달 특성이 직업만족도에 미치는 영향(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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