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국정농단과 관련해 가장 많은 구속자를 낸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감사원이 재판을 앞두고 감사를 벌여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향후 재판과정에서 중요한 증언을 할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에 대한 감사가 자칫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해선 감사를 하지 않겠다던 황찬현 감사원장의 소신과도 배치돼 다른 의도가 있는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도 있다.
◇ "특검 전에는 뭘하고"…뒤늦은 블랙리스트 감사
6일 법조계와 문체부 등에 따르면 감사원은 올 초부터 미르·K스포츠 재단 승인과정, 문체부의 K스포츠클럽 및 K재단 등에 대한 지원, 문화창조벤처단지 사업 등을 대상으로 감사를 벌여 최근 마무리했다.
이는 국회에서 지난해 9월과 10월 순차적으로 감사원에 감사를 의뢰한 내용들이다.
하지만 감사원은 국회에서 의뢰하지 않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서도 감사를 벌였다. 감사원은 자체적으로 대상을 정해 감사를 할 수 있다.
문제는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장관, 김종덕 전 장관 등이 피의자로 구속된 상태이고 6일 첫 재판이 시작됐다는 데 있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가장 많은 피의자와 구속자를 배출한 게 바로 블랙리스트 의혹이다. 블랙리스트는 그만큼 민감한 사건인데 감사원의 감사는 바로 재판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블랙리스트는 작성·관리 등 실무를 맡은 문체부 하급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자료를 내주고 증언을 해줘 특검이 성과를 냈는데 이들을 상대로 감사를 벌이면 향후 재판과정에서 입장을 바꿀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자칫 블랙리스트 작성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을 수도 있어서다.
감사를 받은 한 문체부 공무원은 "지금 상황에선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특검은 감사원 감사가 공소유지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애초 의혹이 제기됐을 때는 감사를 하지 않고 재판을 앞두고 감사를 하는 것은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 관계자는 "국회가 의뢰하지 않아도 감사를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감사를 한다고 해서 꼭 재판에 영향을 준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진=감사원 제공)
◇ 감사원장, 재판중일 때는 감사 안한다더니…이런 미묘한 시기에 이뤄진 감사는 황찬현 감사원장 소신과도 어긋난다. 황 감사원장은 지난 2013년 11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감사원으로서는 재판에 계류된 사안에 대해 직무감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당시 민주당 김기식 의원이 댓글 사건에 개입한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감사를 요구하자, 원세훈 전 원장 등의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한 것이다.
당시 황 감사원장의 논리대로라면 이번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서도 감사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
이 사건은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 뿐아니라 박 전 대통령까지도 피의자로 지목돼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재판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 대상이 된 문체부 공무원들은 이들의 혐의를 입증해 줄 핵심 증인인데 징계를 전제로 한 감사원의 조사를 받은 셈이다.
블랙리스트는 작성·관리 등 실무를 맡은 문체부 하급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자료를 내주고 증언을 해줘 특검이 성과를 냈다.
하지만, 이들을 상대로 감사를 벌이면 향후 재판과정에서 입장을 바꾸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황 감사원장이 자신의 말까지 뒤집으면서 감사에 나선 다른 배경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김 전 실장과 황 감사원장 간의 '특수 관계'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지낸 황 감사원장은 인사 청문회 과정에서 김 전 실장과 마산중학교 동문인데다가 내정도 김 전 실장으로부터 통보받은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김 전 실장은 특검에서 받은 83명의 진술조서를 부동의해 이들은 대거 다시 재판장에서 증언을 해야할 상황이다. 여기엔 문체부 공무원들도 포함됐다.
한 현직 판사는 "감사원의 블랙리스트 감사는 필요하지만 시기적으로 정치적으로 해석을 낳을 소지가 다분하다"며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감사원 감사가 김 전 실장 등이 주도로 블랙리스트가 작성됐다는 기존 특검 수사와 다른 방향으로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