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김성완 (시사평론가)
◇ 김현정> 김성완의 행간, 시사평론가 김성완 씨입니다. 오늘 뒤집어볼 뉴스의 행간, 뭘 들고오셨습니까?
◆ 김성완> 대선주자들이 후보로 결정된 직후 가장 먼저 찾는 곳, 현충원이죠. 그런데 후보들이 여기에 가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뭔지 아세요? 바로 방명록에 친필로 추모글을 적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상징하는 바가 아주 많습니다. "대선주자들의 참배 정치, 방명록 정치" 이 뉴스의 행간을 짚어보려고 합니다.
◇ 김현정> ‘방명록 정치’라…그 꾹꾹 눌러쓴 한 줄 문장에도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겠죠?
◆ 김성완> 맞습니다. 아마 후보들이 현충원 방문할 때, 가장 먼저 신경 쓰는 게 바로 추모글 문장일 겁니다. 얼마나 고심하고 쓰길래 방명록 정치란 말까지 나오겠습니까.
◇ 김현정> 각 대선주자들, 그렇게 고심해서 어떤 글을 남겼습니까?
◆ 김성완> 쭉 읽어드리면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나뉘어진 대한민국을 희망과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겠습니다”였고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필사즉생” 딱 네 글자만 적었습니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유지를 받들어 조국을 수호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의당 심상정 후보! “대한민국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수많은 무명의 영웅들을 기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고 글을 남겼습니다. 방명록 글귀도 5인 5색이죠!
◇ 김현정> "대선주자들의 참배 정치, 방명록 정치”… 어떤 행간이 있을까요?
◆ 김성완> “하이쿠 같은 문구에 우주가 담겨 있다”입니다. ‘하이쿠’라면 흔히 ‘단가라’로 불리는 일본 짧은 전통시죠. 17글자 정도 되는 글자에 시인의 철학, 세계관, 감성 등등 모든 세계관을 압축해서 쓴 시입니다. 예를 들면 “홍시여. 젊었을 때는 너도 무척 떫었지”… 이 얼마나 인생을 함축하고 함축한 시입니까?
◇ 김현정> 정말 그렇네요. 짧은 몇 글자 속에 메시지가 진하게 농축되어 있네요.
◆ 김성완> 대선후보들의 방명록도 하이쿠랑 같습니다. 문재인 후보 추모글을 보면요?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대통령!’ 정의로우면서도 국민화합의 메시지를 강조하는 모습이 눈길을 끕니다.
안철수 후보도 보세요. "나뉘어진 대한민국을 하나 되게 하겠습니다" 분열의 대통령이 되지 않겠다는 거고요. 역시 국민통합의 메시지를 강조하는 모습입니다.
반면 홍준표 후보가 짧게 적은 네 글자 “필사즉생”을 보면요. 말 그대로 ‘죽고자 하면 산다’는 건데… 보수정당 지금 얼마나 위기입니까. 그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 의지의 표현으로 읽힙니다.
유승민 후보의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란 표현을 보면요, 여기 이 ‘정의’란 말 어디에서 많이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유승민 후보가 새누리당 원내대표 당시 박대통령에 반기를 들었을 때부터 쭉 사용해왔던 표현입니다. 독자노선을 걸어가겠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심상정 후보의 메시지는 어떤가요? “무명의 영웅들을 기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다른 후보들과 달리 유독 무명의 영웅을 강조하고 있죠.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들, 바로 평범한 노동자와 서민에 주목하는 거고요. 또 스스로가 노동자와 서민의 후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 김현정> "대선주자들의 방명록 정치”, 또 어떤 행간이 있을까요?
◆ 김성완> “몇 글자 안 되는 글, 그러나 외우고 연습해서 쓰는 것이다”
◇ 김현정> 아니, 현충원 방명록을 쓰려고 문구를 미리 외우고 연습을 해요? 도착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떠오른 생각을 적는 거 아니었나요?
◆ 김성완> 절대 아닙니다. 전날부터 뭘 쓸까? 미리 궁리해보고, 직접 써 보고, 참모들한테 이 문장 어떠냐? 검증받고요, 쓰기 직전엔 오늘이 며칠인가 물어보고…그렇게 연습해 가서 쓰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는데요. 대표적인 게 맞춤법을 틀리는 겁니다. 지난 2007년 대선 때, 당시 대선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추모글도 논란이 됐었죠. “당신들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읍니다. 번영된 조국, 평화통일을 이루는 데 모든 것을 받치겠읍니다” 일단 문장 종결어미 ‘습니다’를 예전 맞춤법인 ‘읍니다’로 적었고요. 또 ‘바치겠습니다’라고 쓸 것을 'ㄷ'(디귿) 받침을 붙여서 ‘받치겠읍니다’라고 적어서 오래오래 회자가 됏었죠.
반기문 전 유엔총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을 때 유명한 문구인 “사람 사는 세상”을 “사람사는 사회” 라고 방명록에 잘못 적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었죠. 또 그에 앞서 현충원을 찾아서 방명록을 적었을 때는 미리 메모해 들고온 걸 보고 베껴서 논란이 일기도 했었고요.
몇 글자 안되는 방명록이지만, 맞춤법을 틀리거나 잘못된 표현을 남기면 평생 동안 조롱 받을 거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래서 대선 후보들은 현충원 방명록에 적을 추모글을 사전에 외우고 연습해서 적는다고 합니다.
◇ 김현정> 대선주자들의 참배정치. 또 어떤 행간이 있을까요?
◆ 김성완> "참배가 곧 정치철학이다”입니다. 옛날에 진보진영이 이승만 전 대통령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면 지지층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독재자에게 어떻게 참배를 할 수 있느냐, 이거였죠. 반대로 보수진영 후보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에 참배를 가면 봉변당하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대선 후보들의 참배 모습을 보면서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요. 문재인 후보가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이 어딘 줄 아세요? 바로 이승만, 박정희 두 전 대통령 묘소였습니다. 5년 전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에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만 참배했었던 것과는 분명히 대비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만큼 정당의 테두리를 뛰어넘는 국민통합 메시지 절실하다는 의미겠죠.
반면 안철수 대표는 무명용사 봉안실과 일반 사병 묘역을 먼저 참배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루 먼저 다녀간 문재인 후보와의 차별화를 노린 행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누가 어딜 먼저 가느냐, 뭘 방명록에 적느냐 같이 참배순서와 방명록에 쓴 몇 글자의 문구에도 정치적 행간이 숨어있다는 겁니다.
◇ 김현정> 김성완의 행간,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시사평론가 김성완 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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