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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의 풍속화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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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 일기]

독서의 계절이 따로 있는 게 아닌 건 맞지만, 무더운 여름이 책읽기에 좋지 않은 계절인 건 분명하다.

그래서 집어 든 책이 최석조의 ''단원의 그림책(아트북스, 2008)''. 제목에 쓰여진 그대로, 이 책은 우리나라 보물 제 527호로 등록된 ''단원풍속화첩''에 대한 전작 해설집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단원풍속화첩''은 단원 김홍도가 그린 25점의 풍속화를 모아서 엮어놓은 1인 화집이다.

그런데 보물로까지 지정된 이 귀중한 화첩에 대한 해설은 ''무동''이나 ''씨름''과 같은 대표작에만 집중되어 있고 나머지 23점에 대한 해설은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그것이 아쉬웠던 지은이가 ''단원풍속화첩''을 전작 해설한 작업이 바로 이 책이다.

단원이 궁중화가로 날렸던 시대에 혜원 신윤복도 단원과 똑같이 풍속화를 모은 ''혜원전신화첩''을 남겼다.

당대의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혜원의 풍속화첩이 단원의 그림책 보다 여러 끗발이 높은 보물 135호로 지정된 것으로 가늠된다.

그러나 대중들은 노골적인 풍속화로 화단에서 쫒겨난 채 일생을 불행하게 살았던 신윤복보다 궁중화가로 승승장구했던 김홍도를 더 치는 모양이다.

노래방의 인기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인 ''한국을 빛낸 1백명의 위인들''의 4절이 증거다. "번쩍번쩍 홍길동, 의적 임꺽정, 대쪽같은 삼학사, 어사 박문수, 삼 년 공부 한석봉, 단원 풍속도".

가사에도 나온 것처럼 김홍도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풍속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그는 인물화와 산수화 등 온갖 다양한 장르에서 명작을 남겼다.

풍속화는 단원이 그린 다양한 그림의 아주 적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그가 풍속화가로 자리매김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그의 풍속화가 걸출하기 때문이다.

궁중화가로 바빴을 단원이 서민들을 주인공으로 풍속화를 그리게 된 사정은 이 책의 말미에 나와 있다. 지은이의 문장이 풍속화를 설명하는 일에 걸맞게 구술투를 닮은 것은 이 책의 흥미를 돋우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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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스스로 ''경박''한 문장이라고 말했지만, 조선시대의 풍속을 잡아내는 지은이의 날카롭고 따뜻한 시선이 의도적으로 동원된 은어와 불필요한 외국어의 남용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지은이가 이런 글쓰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미술과는 아무 연관 없는 미술 세계의 이방인이라서, 학술적인 관행이나 권위를 위식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미술의 난해함에 질리고 또 조선 문인화의 귀족적이고 사념적인 자폐 취미가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소설가 장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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