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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이 아니었다면 공정위·금융위 공무원들 무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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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공소장은 '삼성 로비의 교과서'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탄핵이 아니었다면 공정위와 금융위 공무원들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

특검에서 뇌물죄가 추가된 최순실씨의 공소장을 보면서 공연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특검 공소장을 보면 글로벌기업 삼성그룹의 로비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 시절인 1996년에 터진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 이후 삼성그룹의 로비 백태가 이렇게 백일하에 드러난 사례는 없었다.

김상조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최씨 공소장을 본 뒤 첫마디가 "삼성은 다른 그룹과 달리 모든 업무에 대해 로비 하는게 일상적 업무가 된 조직"이라 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회·경제학도나 교수, 언론인들, 또 '정의'에 관심있는 분들은 최씨 공소장을 구해서 꼭 일독해 보기를 권한다.

특검 공소장 내용을 모두 확정적인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앞으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재판에서 특검은 삼성측 변호인들과 피말리는 변론전쟁을 할것이다. 그러나 검찰에 이어 특별검사팀이 70일간의 수사 내용을 요약했다는 점에서 어느 조직이나 단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신뢰성'을 지닌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 윗선 압력에 시달린 공정위 직원…생존 위해 '업무일지' 기록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다수 언론들이 이재용 부회장 구속은 '안종범 수첩'이 결정적이었다고 전한다. 맞는 말이다. 박 대통령의 지시내용을 꼼꼼하게 적지 않았다면 검찰과 특검 모두 중요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수첩'은 아니지만 이 부회장의 구속에 지대한 영향을 준 또하나의 '업무일지'가 있다. 공정위 사무관이 당시 공정위 김학현 부위원장과 정재찬 위원장, 최상목 청와대 경제비서관(현 기재부차관),삼성 임직원 등 관계자들의 말과 행동을 상세하게 '일지 정리'라는 제목으로 정리한 것이다.

안 전 수석의 수첩이 지시사항 이행을 위해 충실하게 받아쓰기 한 것이라면, 공정위 사무관의 업무일지는 나중에 큰 일이 터졌을때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방어기제'로 작성한 것이다.

윗선과 삼성의 압력에 얼마나 괴로웠으면 이 사무관은 일지를 정리했을까, 틀림없이 그는 나중에 일이 터질것이 확실하고 감방이나 청문회에 간다고 직감했기때문에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업무일지는 "삼성SDI의 삼성물산 보유주식 처분은 우리가 결정한게 아니고 위의 지시로 어쩔 수 없이 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김상조 교수는 "공정위 직원은 김학현(공정위 부위원장)이 안종범의 지시와 김종중 삼성 사장의 로비를 받고 와서 우리가 주식 처분수를 1천만주에서 5백만주로 줄여줄 수 밖에 없었다는 '고백'"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어떤 때는 김 부위원장, 부위, 김학 위, 김학현 부위원장으로 날짜마다 표현은 다르지만 '우리가 1천만주 보고했더니 부위가 안수석과 얘기해서 바꾸라 했다'. (다음 날도)'야단 맞고 또 바꾸라 했다'"며 "이런 글들이 토막토막 키워드 형태로 모아져 약 50일간 기록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코미디'같은 신규 순환출자 고리 해소 문제

지난 2015년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이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자료사진)

 

박 대통령이 국민연금을 동원시켜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을 성사시켰지만 합병으로 인한 순환출자 해소 문제가 삼성그룹에서 대두된다. 이재용 부회장은 자신의 경영승계에 지장을 줄 이 문제에 대해 청와대와 공정위를 상대로 집중적인 로비를 했다.

공정위는 맨 처음 두 회사간 합병으로 "삼성 SDI와 삼성전기에서 각각 5백만주씩 1천만주를 처분해야 한다"고 유권해석을 했다. 삼성은 유권해석을 받은 직후 수용의사를 밝혔지만 돌연 5백만주로 깍아달다고 입장을 바꾸고 집요하게 요구했다.

청와대 경제수석실과 삼성으로부터 동시에 외압과 로비를 받은 공정위 경쟁정책국은 맨 처음 결정 기준을 무시하고 9백만주로 1백만주를 줄여줬지만 여전히 삼성 압력은 집요했고 결국 삼성전기 주식을 뺀 삼성SDI의 5백만주로 처분 주식수를 삭감해줬다.

김상조 교수는 "1천만주에서 9백만주로 줄였다가 삼성에서 안된다 하니까 또 5백만주만 팔라고 결정한 것을 보고 '코미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는 공무원 재량권내 범위에 있더라도 자율적 판단이 아니고 '외부의 압력'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뇌물죄가 성립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공정위 실무진들은 향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당시 정재찬 위원장에게 "실무자 의견이 기록으로 남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이 마저 여의치 않자 해당 과장의 지시를 받은 사무관이 '업무일지'를 남기게 된 것이다.

◇ '탄핵사태' 덕분에 살아난 금융위 공무원들

삼성물산 합병으로 인한 공정위의 순환출자 고리해소 문제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승계에 지장을 줄 문제였지만 '결정적 장애물'은 아니었다.

단연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승계 완성의 가장 큰 걸림돌은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문제다. 삼성물산을 정점으로 하는 이재용 부회장의 현재 지배구조는 매우 불안정하다. 이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앞으로 5년내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이 다시 한번 도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보험업과 관련된 새로운 국제적인 감독회계 기준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자료사진)

 

이런 연유로 이 부회장은 2016년 1월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에 목숨을 걸었다. 삼성은 언론 보도를 부인하면서 금융위원회에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계획을 타진했고 이 부회장은 박 대통령과의 3차 독대에서 '담판'에 가까운 승부를 건다.

이 부회장은 대통령에게 먼저 공정위 순환출자 고리 해소에 대해 감사를 표시한 뒤 "글로벌 삼성그룹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금융위에서 사전 검토중인 삼성생명 금융지주사 전환계획 승인을 지원해 달라"고 청탁한다.

하지만 금융위는 보험사인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을 절대 해줄 수 없는 환경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보험사를 금융지주사로 전환할 경우 보험 계약자 돈을 이용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승계를 완성해준다는 비난을 제일 감당하기 어려웠다.

특히 당시 금융위 공무원들은 청와대 서별관회의 문건이 공개되면서 대우조선해양 부실문제로 국회 청문회까지 서야 하는 등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잔뜩 복지부동해야할 상황인데 삼성에게 그런 '특혜'를 제공할 수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정치적인 상황 또한 급변했다. 삼성은 원래 작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열리는 2월 국회에서 금융지주사 전환을 완료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여건마저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들었다.

작년 2월까지만해도 여당인 새누리당 4월총선에서 압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갑자기 김무성 당시 당대표가 옥새를 가지고 달아나면서 3월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총선에서 새누리당 몰락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정보의 삼성도 이런 상황을 당연히 알아차렸는지 총선 3일전에 금융지주사 전환문제를 잠정 중단시켰다.

하지만 삼성이 금융지주사 전환을 완전히 포기했을까? 아마도 최순실 사태가 없었으면 삼성은 금융지주사전환작업을 한번 시도해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상조 교수는 이렇게 강조한다.

"정말로 대통령이 살아 있으면 (삼성이) 금융위 공무원들을 무슨 수로 비틀어서라도 했을거라 생각한다.그래서 공정위 공무원들은 썩어빠졌고 금융위 공무원은 잘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금융지주사로 전환이 안되면 이재용 부회장 승계가 진전이 안되고 완성이 안되는 거다.포기할 수 없는 거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탄핵국면으로 상황이 오지 않았다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삼성은 금융위 팔을 비틀었을 것이다."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최고위급→고위급→중간 실무급…중층적·다층적 로비 구조

공소장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6월 이건희 회장이 갑자기 쓰러진 이후 삼성그룹 경영승계 문제를 면밀하게 모니터링 할 것을 지시했고 최씨도 국정운영을 상의하는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문제가 '현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박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간 첫 거래의 시작은 '1차 독대'가 이뤄진 2014년 9월 15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때였다. 이때부터 박 대통령은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지원을 요구했고 이 부회장은 자신의 경영계 승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2차독대(2015년 7월 25일)와 3차독대(2016년 2월 15일)를 가졌고 뒷 수습은 안종범 경제수석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사장을 통해 해결해 나갔다. 대통령과 부회장이 합의하면 두 사람은 실무자들을 굴렸다.

그러나 항상 일이 '톱다운 방식'으로만 진행된 건 아니었다. 미래전략실 사장인 김종중(전략팀장)은 공정위 부위원장이었던 김학현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고, 금융지주회사 전환이라는 중대사안이 걸린 금융위는 미래전략실 전무인 이승재와 삼성생명 부사장 방영민 등을 동원했다.

삼성의 맞춤형 로비구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감사원과 보건복지부가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메르스사태 제재방안을 논의할때 장충기는 동향 파악과 제재완화를 위해 감사원 임원 출신 고문들을 총동원시켰다. 청와대부터 정부부처 실무단위까지 삼성의 빼곡한 로비구조는 빈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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