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군 당국이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사드) 발사대 2기를 지난 6일 밤 기습적으로 반입한데 이어 X-밴드 레이더 등 나머지 장비도 속속 들여온다고 한다.
사드부지를 주한미군에 제공하기 위한 협의가 이제 막 시작한 상황에서 사드배치는
기정사실이 돼 버렸다. 이른바 '사드 대못박기'다.
중국이 반발하든 차기 정권을 누가 잡든 되돌릴 수 없게 하려는 계산이다. 야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이미 들여온 장비를 미국에게 다시 가져가라고 하기에는 사실상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사드문제는 한·중간 갈등 차원을 넘어 미국과 중국이 정면 충돌하는 등 한반도에서 가장 큰 군사적 긴장고조 요인으로 떠올랐다.
중국은 7일 "모든 뒷감당은 한국과 미국이 부담해야 한다"고 반발한데 이어 8일에도 왕이 외교부장이 "한국의 안보를 더욱 위험하게 하는 행위"라고 맹비판했다.
심지어 중국 관영 매체들은 한국의 사드 배치를 계기로 중국이 핵전력을 전면적으로 강화하고 사드기지를 겨냥한 전략무기 배치나 군사훈련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국이 실제 군사적 위협 수단까지 동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드장비의 전격적인 반입은 외견상 북한이 6일 오전 미사일을 쏜 직후 추진한 것으로 보이지만 상당히 시간을 두고 치밀하게 기획한 흔적도 보인다.
1월 중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미국 방문에서 "중국이 반대하더라도 사드배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이어 2월 초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대선전 사드 조기배치가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번 대못박기로 사드배치 논란이 일단락되길 기대하겠지만, 문제는 사실 지금부터다. 미·중간 확전의 한복판에서 한국은 외교적 지렛대를 상실한 채 새우등만 터지게 될 공산이 크다. 더욱이 미국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선제타격 등 '새로운 조치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사드 자체의 군사적 효용성도 숱한 논란거리다. 북한 미사일로부터 영토를 방어하기 위한 만능 무기처럼 호도되지만 수도권이 보호망에서 제외된다는 점은 군 당국도 인정한지 오래다. 사드가 주한미군 방어용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북한 핵미사일 방어용이라기보다는 중국 내륙의 미사일 기지를 감시하기 위한 탐지용이라는 의혹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이 강력히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다.
이해할 수 없는 건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상황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은 과도정부가 왜 사드배치를 통해 한반도의 위기를 한껏 끌어올리는 결정을 했느냐 하는 점이다.
특히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사드 대못박기에 나선 데에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선고 이후에는 사드배치를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예상되는 조기 대선국면에서 안보 위기가 고조되면 궤멸국면에 놓인 보수층에 운신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것까지도 염두에 뒀을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탄핵 심판중인 과도내각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사드장비 반입을 국민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전격적으로 앞당겨 결정한 것은 중대한 권한남용이다. 국익과 관련된 중대 현안을 결정할 경우 사전에 여야 정당 지도부에 알려온 지금까지의 관행도 철저히 무시했다.
더욱이 현 내각은 박근혜 정부의 전방위적인 외교 참사에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들이다.
중국의 경제보복에 대한 대처에서도 봤듯이 국민 안전이나 경제적 피해 등을 감당할 능력도 없는 처지이기에 무책임한 결정이기도 하다.
과도 정부는 얼마 남지 않은 기간 사드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손을 대지 말고 차기 정부에 맡기는게 맞다.
미중 갈등 속에서 꼬일대로 꼬인 북핵 위협과 사드 문제를 복합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해선 외교적 해법이 절실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