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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빈곤, 여성 장애인에겐 가혹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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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장애, 남몰래 흘린 그녀들의 눈물 ③]

'여성'이란 성(性)차별에 장애가 더해진 여성장애인은 '약자 중의 약자'다. 여성장애인에게 사춘기 소녀 시절의 고민은 '금지된 비밀'이고, 임신과 육아에 뛰어든 어머니의 고충은 제도 밖에 있다. 일생을 제도 밖에서 편견에 묻혀 살아온 이들의 말로는 비참하다. CBS노컷뉴스는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장애인의 생애주기별 과정을 조명해 그들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환기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넌 생리하면 안 될 텐데" 차별로 얼룩진 장애소녀의 사춘기
② "중절수술 하시죠" 눈물겨운 장애여성의 임신과 육아
③ 노년빈곤, 여성 장애인에겐 가혹한 미래
전라남도 목포시의 한 주공아파트에 사는 정명자 씨. (사진=김구연 기자)

 

◇ 여성 장애인에겐 '너무나 빈곤한' 노년

전북 지역의 한 주공아파트에 홀로 사는 지체장애인(4급) 정명자(65) 씨는 지난해 말 주민센터로부터 지원받은 난방비 8만 3000원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

그녀는 "꽃샘추위를 대비해 아껴뒀다"면서 찬 방바닥을 종종걸음으로 걸어 침대 위로 올라가 전기장판을 틀었다.

매월 기초생활수급비 49만 원을 받는 게 명자 씨의 수입 전부다. 식당과 술집 주방에서 10년 가까이 일해 모은 650만 원은 세 번의 디스크 수술로 1년 만에 탕진했다.

그녀는 "집안일만 해도 허리와 다리가 아파 10년째 쉬고 있다"면서 "돈이 없으니까 사람도 안 만나게 되더라. 난 이렇게 독거노인이 됐다"고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이길자(오른쪽) 씨가 수어통역사(가운데)와 함께 CBS노컷뉴스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청각·언어 장애 2급인 이길자(77) 씨도 사정이 비슷하다. 남편과 사별해 홀로 사는 길자 씨는 장애인연금 14만 원과 20만 원을 받아 생활한다.

턱없이 모자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가끔 김장을 대신 해주고 품삯을 받는다. 10~20만 원 수준이다.

"벙어리"라고 천대받던 길자 씨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배운 것이라고는 바느질뿐이다.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친척이 운영하는 여관에서 바느질하는 게 전부였다.

수어(수화)를 통해 길자 씨는 "평생 일했는데도 돈 한 푼 남은 게 없다"면서 "이웃들과 소통도 안 되니, 답답하고 가난한 일상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인순 씨가 '전남 여성장애인연대'가 운영하는 쉼터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다. (사진=전남 여성장애인연대 제공)

 

◇ "병신아, 나가 죽어라"…생계는 오롯이 여성 몫

최인순(56) 씨는 아직도 남편의 배신과 폭력만 생각하면 치를 떤다.

바지런히 장사해 돈깨나 벌던 인순 씨가 17년 전 고혈압으로 쓰러진 뒤 뇌병변 1급 장애인이 되자 남편은 '악마'로 변했다.

오른쪽 근육이 모두 마비돼 누워만 있었던 인순 씨가 남편의 외도 등을 질타할 때면 남편은 "병신 주제에 나가 죽어라" 등의 막말을 내뱉으며 주먹을 휘둘렀다. 인순 씨는 바닥을 기어 다니며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절규했다.

양육권까지 뺏기고 버려진 인순 씨. 친척들의 지원과 부단한 재활치료로 다시 걷게 되면서 6년 만에 '전남 여성장애인연대'가 운영하는 쉼터의 취사장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 삶을 시작한 인순 씨는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다가올 노년기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인순 씨는 "남편도 없이 이제는 정말 홀로 모든 생계와 노후를 책임져야 하지만 매달 받는 임금은 거의 최저생계비 수준"이라며 "나도 쓸쓸한 독거노인으로 살다가 죽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 女장애인 임금, 男장애인 절반 수준

이처럼 노년기에 찾아오는 극심한 빈곤은 사실 여성 장애인에게 당연한 미래다.

청년 시절부터 임금·고용 차별 등을 겪는 이들에게 노후를 준비할 경제적 기반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이 발표한 '2016년 장애인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장애인 경제활동참가율은 22.4%에 불과했다. 남성장애인의 경제활동참가율보다 27.9% 포인트 낮은 결과다.

경제활동참가율은 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와 취업준비자를 합한 경제활동인구의 비율을 뜻한다.

고용의 질이나 임금 측면에서도 여성 장애인의 처지는 열악하다.

여성 장애인 임금 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은 72.2%로 남성장애인보다 14.8% 포인트나 높다. 월평균 임금 역시 102만 2000원으로 남성장애인 임금(190만 8000원)의 절반 수준이다.

이같은 사회적 차별에 시달리는 여성장애인은 가정 내에서도 경제적 지원은 커녕 폭력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2006년 (사)한국여성장애인연합회(한국여장연)가 여성장애인 500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44명(68.8%)이 가정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장애인은 혼자가 되고, 그렇게 다시 빈곤 수준이 높아지는 식이다.

한국여장연 이희정 사무처장은 "여성장애인의 빈곤 문제는 사회적 차별과 가정 폭력 등이 합작한 비극"이라면서 "사회와 가정에서 절대적 약자인 여성장애인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지원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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