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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 시집 '여수' … 공간 속 시간의 체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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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의 세번째 시집 '여수'가 출간되었다. 시인은 '역사의 공간화'를 시도한다. 하나의 공간을 두고 과거와 현재가, 사적인 기억과 공적인 역사가 겹쳐지면서, 서효인이 스쳐간 어딘가는 객관적 '공간'이기를 멈추고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여 유일무이한 '장소'가 된다.
서효인의 시에서 공간은 시간의 체취가 담겨 있는 곳이다. '여수' 속 63편의 시들 가운데 50편의 제목이 공간과 관련된 것인데, 크게는 서울, 목포, 여수처럼 지역의 이름이거나 연희동, 이태원, 금남로 같은 도시 안의 구역, 자유로와 올림픽고속도로처럼 지역들을 잇는 길들, 작게는 학교 연못이나 주차장까지를 포함한다.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서효인의 세번째 시집 속에서 만나게 되는 장소들이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고 사적 기억에 공적 역사가 중첩되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곳들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자유로 위 출근길 만원 버스에서의 나와 1968년의 무장공비 김신조가 오버랩되고(「자유로」), 체육관에서는 1970년대의 프로레슬링과 1980년대의 체육관 선거, 최근의 외국 뮤지션 공연이 동시에 펼쳐진다(「장충체육관」). 성장과 가족사, 조문, 짧은 여행, 출퇴근과 일상의 범위를 넘지 않는 여정들이다. “비동시적인 것들이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특이한 장소들, 역사가 공간화된 장소들”, 사적 기억과 공적 기억 들이 누적·교차된 서효인의 장소들은 그러므로 여기 아닌 어딘가로 도망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곳을 겹쳐 밟았을 언젠가의 누구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된 치밀한 기록, 지리지로 읽히곤 한다. 시간과 공간이 세로축과 가로축이 되어 만날 때, 장소는 생명을 얻는다. 그 교차 지점에 서효인의 시가 위치한다.

나는 앉는 일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그는 대통령의 목을 따버리기 위해 빠른 속도로 능선을 타고 넘었다. 생각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 누군가 어젯밤의 뒤숭숭한 결과를 빈자리에 토해놓았다. 누군가 그를 목격했지만, 그는 겨울 짐승처럼 보였다. 나는 비칠거리는 몸뚱이를 손잡이 하나에 기댄 채, 토사물을 오래 노려보아야 했다. 그는 남쪽과 서쪽의 중간 즈음, 목표지를 정확하게 가늠했다. 예측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 버스 기사가 라디오 볼륨을 높인다. 뉴스는 중요한 소식을 아무도 모른다는 듯이 호들갑이다. 그는 주파수를 맞춰 동료들의 죽음을 확인한다. 오른편에는 얼어버린 한강이, 왼편에는 지저분한 도로가 누워 있다. 나는 부러웠다. 왼쪽 가슴팍엔 붉은 심장이, 오른손에는 날카로운 단도가 날을 세웠다. 그는 무서웠다. 결과는 중력처럼 정해져 있는 것이다. 서울로 진입하는 모든 도로가 정체라고 라디오는 전한다. 야전 지도는 서울의 서쪽 어딘가로 그를 이끈다. 우린 늦었고 그는 목사가 되었다.

자유로는 광명과 자유를 주고, 자유로는 출근과 퇴근을 주며……
―「자유로」 부분

사람이 죽는 일은 거대한 일은 아니다. 우리는 잠자코 앉거나 서서, 각자의 도착지를 생각할 것이다. [……] 사방이 어두운 역, 전철은 대체 여기서 왜 멈추는 것일까. 지축역 지난다. 상주의 표정은 전철에서 빈자리를 찾는 것처럼 조급하면서 평온했다. 사람이 죽었지만 거대한 일은 아니다. 지축역을 묵묵히 지나는 우리에게는 다발로 묶인 시신도 그다지 큰일은 아닐 것이다. [……] 지축역에서 모두가 작은 흔들림에 몸을 맡기고 각자의 휴대폰을 본다. 날마다 죽는 사람은 분명히 있고, 이유를 물을 경황 없이 다음 역이 온다. [……] 슬픔을 자랑하지 않으려 흔들리는 지축을 붙잡은 노인과 내가 노약자석 앞에서 잠시 겹쳐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제 갈 길을 간다. 지축역 지난다. 별일 없었다.
―「지축역」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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