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훈의 여덟 번째 시집 <몸의 중심="">은 뚜렷한 노동시집이다. 시인의 노동 체험에서 직접 길어올린 시편들은 아니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가 강요한 노동자의 처지와 노동의 가치에 대한 치열한 사유와 실천을 수행하고 있다. 직접 체험에서 길어 올린 시편이 아니라고 해서 체험이 결여됐다는 뜻은 아니다. 노동자의 처지와 노동의 가치에 대한 시적 해석은 시인이 이미 청소년 시절부터 몸에 밴 노동자적 감성형식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즉 제3자적 관찰을 통해 노동의 현실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겪은 노동 체험이 여전히 그의 시에 꿈틀대고 있다는 말이다. 그 가장 강력한 예는 표제작인 「몸의 중심」이다.
시인에게 “몸의 중심”은 바로 “아픈 곳”인데, 시인 자신이 고된 노동을 통해 얻은 병마를 지나왔기 때문에 이런 통렬한 인식은 가능했다. 이번 시집에는 투쟁 현장에서 낭송한 시편들이 적지 않지만, 단순한 행사시를 뛰어넘는 울림의 정체는 시인 자신이 겪은 노동과 그 노동으로 몸이 크게 휘청댔던 경험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상처난 곳”은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되는”이라고 말한다. “상처난 곳”을 어루만져 주는 일이 바로 이번 시집의 주제이며, 정세훈 시인이 노동자의 처지와 노동의 가치를 위해 싸우는 실천의 동력이기도 하다.
죽음이 삶보다 가까운 현실
부평4공단 드넓은 벌판에
삶이 죽음보다 가까운, 순풍인 듯
불던 산업화 바람 멈추고
사각형의 공장들이 하나둘 떠난 자리
원격조정 중앙시스템 장비가 갖추어진
화려한 빌딩들이 어지럽게 들어서고
떠난 공장에 버림받은 소년 소녀들
속절없이 불던 산업화 바람처럼
어느 사이 훌쩍 나이만 들어
기웃거리네 배회하네
죽음이 삶보다 가까운
부평4공단 드넓은 벌판을
_「부평4공단」 부분
시인에게 우리가 사는 삶은 차라리 죽음보다 못하다. 「부평4공단」이라는 시에는 ‘부평4공단’의 서사를 통해 노동자들이 근대문명에 소모되고 버려진 존재들이라는 문명사적 통찰이 담겨져 있다. 자본주의체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사각형의 공장들이 하나둘 떠난 자리/ 원격조정 중앙시스템 장비가 갖추어진/ 화려한 빌딩들이 어지럽게 들어서”는 현실을 ‘시장의 자기조정’ 같은 수식어로 현실을 은폐하지만 정세훈 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은 단지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뒤바꿔놓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삶을 지속시킬 권리를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싸운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서로가 믿는 것이고
서로가 소망하는 것이고
서로가 사랑하는 것이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이라고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삶이라고
단언하지만,
종탑에 아득한 둥지를 틀어야 하는 삶
보듬지 못하는 이들로 가득한 날
_「종탑 위의 둥지」 부분
“종탑 위의 둥지”란 표현은 삶을 위해 극단적인 공간에 투쟁하는 삶을 꾸린 일에 대한 가장 리얼한 표현이기도 하면서 “종탑” 위에서도 “둥지” 같은 삶은 지속되고 있다는 역설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아니면 “공장을 허물어버린 자본”이 “울타리를 친” “허허벌판”에서 “목적 같은 시를 낭송하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허허벌판 울타리」) 자본이 버리고 간 공간에서 공장을 돌리려는 이 무모한 행동은 왜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일까. 그것은 “죽음이 삶보다 가까운”(「부평4공단」) 현실을 다시 되돌려 놓기 위해서이다. 이 시집에서 숨 막히는 현실에 대한 묘사가 반복되는 것은 바로 지금-여기의 삶이 그것을 계속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시는 무엇인가?
이런 현실에 대한 해법을 시에서 찾는 것은 물론 어리석다. 시는 오로지 이런 현실에 대해 우리가 어떤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주문을 노래로 표현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더 아파야 한다」는 주목을 요한다. “죽음이 삶보다 가까운” 노동자의 현실 속에서 시인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더 아파야 한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작품의 마지막 연에서 정세훈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더 아파야 한다
그 아픔 속으로
투신하여
내 목을 매어야 한다
정세훈의 이번 시집에서 일반적으로 회자되는 ‘문학성’은 할 말을 잃는다. 시인부터가 “있는 그대로만 써내도/ 아프고 눈물겨운/ 시가 되는 노동 이야기”(「노동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게나」)가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도리어 현실이 시인에게 과연 시를 계속 쓸 것이냐고 묻는다.(「시를 쓰지 말아야겠다」) 시가 현실의 이런 물음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인 걸까. 정세훈은 이번 시집에서 시인들에게 그것을 묻고 있는 것이다.
CBS노컷뉴스 김영태 기자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