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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이상국 '달은 아직 그달이다'ㅣ이병초 '까치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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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 '달은 아직 그 달이다'가 출간되었다. 부드러운 서정과 정갈한 언어가 어우러진 담백한 시편들이 담겼다.

나 어렸을 적 보름이나 되어 시뻘건 달이 앞산 등성이 어디쯤에 둥실 떠올라 허공 중천에 걸리면 어머니는 야아 야 달이 째지게 걸렸구나 하시고는 했는데, 달이 너무 무거워 하늘의 어딘가가 찢어질 것 같다는 것인지 혹은 당신의 가슴이 미어터지도록 그립게 걸렸다는 말인지 나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어쨌든 나는 이 말을 시로 만들기 위하여 거의 사십여년이나 애를 썼는데 여기까지밖에 못 왔다. 달은 아직 그 달이다.(「달은 아직 그 달이다」 전문)

소소한 일상에서 크고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의 시는 간결하지만 웅숭깊다.

무슨 이런 나라가 다 있냐며/이런 나라 사람 아닌 것처럼 겨울 팽목항에 갔더니//울음은 모래처럼 목이 쉬어 가라앉고/울기 좋은 자리만 남아서//바다는 시퍼렇고 시퍼렇게 언 바다에서/갈매기들이 애들처럼 울고 있었네//울다 지친 슬픔은 그만 돌아가자고/집에 가 밥 먹자고 제 이름을 부르다가//죽음도 죽음에 대하여 영문을 모르는데/바다가 뭘 알겠냐며 치맛자락에 코를 풀고//다시는 오지 말자고 어디 울 데가 없어/이 추운 팽목까지 왔겠냐며//찢어진 만장들은 실밥만 남아 서로 몸을 묶고는/파도에 뼈를 씻네//그래도 남은 슬픔은 나라도 의자도 없이/종일 서서 바다만 바라보네(「슬픔을 찾아서」 전문)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미안하지만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문 좀 두드려달라던 작가는 스스로를 버렸다/식은 밥이나 이웃에게도 그랬겠지만/자기가 쓴 시나리오에게도 떳떳하고 싶었을 것이다//(…)//송파 어디선가 월세 살던 세 모녀가/공과금과 마지막 집세를 계산해놓고/한날한시에 세상을 버린 것도/다시는 볼 일이 없더라도/국가와 집주인에게 당당하고자 했던 것이다(「존엄에 대하여」 부분)

노랑부리저어새는 저 먼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날아가 여름을 나고 개똥지빠귀는 손바닥만 한 날개에 몸뚱이를 달고 시베리아를 떠나 겨울 주남저수지에 온다고 한다//나는 철 따라 옷만 갈아입고 태어난 곳에서 일생을 산다//벽돌로 된 집이 있고 어쩌다 다리가 부러져도 붙여주는 데가 있고 사는 게 힘들다고 나라가 주는 연금도 받는다//그래도 나는 날아가고 싶다(「그래도 날고 싶다」 전문)

이상국 시인은 1946년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났다. 시집으로 '동해별곡', '집은 아직 따뜻하다', 시선집 '국수가 먹고 싶다' 등이 있다.

이상국 지음/창비/112쪽/8,000원

 

이병초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까치독사'는 정감어린 토속어로 삶을 노래한다.

산과 산 사이 작은 마을 위쪽/칡넝쿨 걷어낸 둬뙈기를 둘러보는데/밭의 경계 삼은 왕돌 그늘에 배 깔고/입을 쩍쩍 벌리는 까치독사 한마리/더 가까이 오면 독 묻은 이빨로/숨통을 물어뜯어버리겠다는 듯이/뒤로 물러설 줄도 모르고 내 낌새를 살핀다/누군가에게 되알지게 얻어터져/창자가 밖으로 쏟아질 것만 같은데/꺼낸 무기라는 게 기껏 제 목숨뿐인 저것이/네 일만은 아닌 것 같은 저것이/저만치 물러난 산그늘처럼 무겁다(「까치독사」 전문)

저 초록색 갈피를 뒤적거리다보면 그 속엔 알 품는 까투리가 친정집 주소 적으려다 솔가지 못 빠져나간 반달을 베낄 것 같고//축축한 겨드랑이 말리며 열차 바퀴 소리를 가만가만 재우던 채송화는 어디에 피었나 깜짝 마실 나왔다가 연둣빛 부리를 내민 옥수수알을 반갑게 쪼아댈 것도 같고(「봄산」 전문)

올여름은 일 없이 이곳 과수원집에 와서 꽁짜로 복송도 얻어먹고 물외순이나 집어주고 지낸다/아궁이 재를 퍼서 잿간에 갈 때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잿간 구석에 처박힌 이 빠진 써레에 눈길이 가곤 했다 듬성듬성 시연찮은 요 이빨들 가지고 논바닥을 평평하게 고르긴 골랐었나 뭉텅뭉텅 빠져나간 게 더 많지 않았겠나 이랴 자라! 막써레질로 그래도 이골이 났었겠지/창틀에 뒤엉킨 박 넝쿨들 따로따로 떼어 뒤틀린 서까래에 매어두고 나도 이 빠진 한뎃잠이나 더 자야겠다(「써레」 전문)

즈아부지 즈아부지/아덜떨이랑 시렁배미 눈곱배미/억척겉이 지어낼 팅게/눈 펜안히 감으시소잉/몸땡이는 캄캄허게 식었드래도/귀는 열어둔다는디 즈아부지/시방 내 소리 듣고 있지라/입때껏 뼈 빠졌어도/요게 머냐고/술에 곤죽이 되어가꼬/대문간에 고꾸라질 적마다/차라리 디지라고/칵 디저불먼 부좃돈이라도 벌제/무신 년의 복이 요로코롬 휘어졌디야/막 쏘아붙인 거 참말로 미난허요/그거 내 분에/내 숨넘어간 소리였응게/고깝게 생각허덜 말고/후제 거그서 만날 때까장/펜안허소잉/(…)/거그 가먼/징글징글헌 농사 안 짓는당게로/지게바작 우그 거름찜/암디나 부려불고 가소잉/새벽일에 골병든 즈아부지/고생 많었소잉(「입관(入棺)」 부분)

바닷속으로 터널도 뚫는 시절에/어떻게 304 명이 바닷물에 갇혀 떼죽음당할 수 있느냐고/파도는 제 몸 이랑 이랑에 번뜩이는 촉기를/비수처럼 꺼내어 들고/저 뒤에서부터 몸을 날려/산산이 박살난다//이게 나라입니까? 우리가 먹잇감입니까! 팻말에 적힌 고교생의 글씨가 바위를 내리찍으며 박살날 때마다 세월호 참사가 아니라 ‘세월호 참살’이라고 피 마르는 팽목항(「참살(慘殺)」 부분)

으런 야그허는디 워떤 시러베아덜놈이 흔 삼베바지 불알 삐지디끼 요렇게 삐드러짐서 걸레방구 뀌고 지랄이냐잉 가래침으로 마빡을 뚫어버릴 팅게 허고 자픈 말이 새벽 좆겉이 불퉁불퉁허드라도 쪼매 참어라잉//머라고라? 쑤꾸 들어간 것까장 삼만원이 걸린 윷판인디 시방 우아래 따지게 생겼어라? 옛날얘기 꺼내는 놈치고 제 집구석 부잣집 아닌 놈 ?고, 미나리 새순 겉은 첫사랑에, 니롱내롱 외입질에, 지까짓 거시 열일곱명허고 맞짱 깠다는 칫수 아닌 놈 ?다더니 워너니 아재도 그 칫수라닝게 단박에 다섯 모 걸은 따논 당상일 것잉만, 내 참 드러서 똥 쌀 자리가 ?당게(「윷놀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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