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주최로 열린 '제12차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탄핵 기각과 특검 해체 등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사상 최악의 국정농단 세력들은 처음부터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법은 평등하지 않고 상식은 원래부터 없었다. 편법과 비리, 부정으로 무장한 그들에게 합리성과 원칙으로 맞서는 것은 과분하다. 그들의 사과와 책임은 영혼이 없고 기계적이고 가식적이다. 그들의 창끝은 무디지만 꼼수에는 숙련가로서의 면모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반격 전략은 궁색하지만 끈질기다. 그들은 규모를 좋아한다. '규모의 경제'를 좋아하고 '규모의 정치'를 좋아한다. 수백만이 촛불을 들면 잠시 움츠렸다가 숫자가 줄어들면 반격한다."촛불항쟁을 잠재우려는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정치학자 배성인 한신대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15일 서울 서대문에 있는 전교조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국교수연구자 비상시국회의 긴급정세 토론회 '박근혜 즉시 탄핵과 촛불항쟁의 방향'에서 발제자로 나섰다.
이날 배 교수는 발제문 '퇴진행동과 민중운동의 인식과 과제'를 통해 "박근혜 세력은 노골적인 선고 지연 행보와 공공연히 '대통령 사수'를 외치며 조직적으로 '탄핵 기각설'을 유포하면서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며 "SNS상에는 이들이 만든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선에 무게중심을 옮긴 채 광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한 야당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야당의 무능함과 대통령 놀이가 박근혜 세력에게 반격의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11일) 촛불 광장에 야당의원들과 그 지지자들 그리고 수많은 야당 깃발이 나부꼈다. 신나게 대통령 놀이를 하다가 '탄핵 기각설'에 '깜놀' 했나 보다. 이들이 광장에 나오는 건 별로 중요치 않다. 오히려 불편하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탄핵 국면인 현재까지 야당은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박근혜 정권 내내 선거부정에서 세월호, 국정 역사교과서, '위안부' 합의, 사드 배치, 백남기 농민 사망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탄핵 국면에서도 아무런 개혁입법을 하지 않고 촛불을 등에 업고 권력 놀음에 취해 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15차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 대통령의 탄핵과 특검 연장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배 교수는 특히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야당의 합의가 박근혜 세력에게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다. 물론 그 배경에 헌재의 상식적인 판단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해도, 그러한 정치적 발언은 촛불을 무시하는 처사에 불과하다"며 "이렇게 촛불 민심을 부정하고 기만하는 야당을 박근혜 세력은 좋아라 하면서 반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어 "하지만 촛불의 응전은 변함이 없이 담대하다. 지난 주말 촛불의 숫자가 증가한 것은 단순한 야당의 참여 때문이 아니"라며 "설 명절과 추위 때문에 원기를 회복하고 에너지를 다시 충전하기 위해서 쉬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야당의 몰상식과 기회주의적 행태가 다시 촛불을 분노케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근혜의 탄핵에 찬성하는 70~80%의 대중은 야당에게 탄핵의 결정을 위임한 적이 없다. 촛불이 원하는 것은 구체제의 청산을 통한 새로운 국가와 사회 건설이다. 그런데 야당은 이를 수용할 만한 의지와 능력이 없다. 이번 촛불은 과거의 촛불과 다르며 단순한 시민혁명이 아니다. 어떠한 정치적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촛불에 의해 휩쓸려 갈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는 "촛불민심이 우려하는 바는 헌법재판소가 '제대로' 판단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법은 절대이성이 아니다. 그럼에도 촛불민심은 헌재의 상식적인 판단을 기대하고 있다"며 "가장 큰 우려는 자유한국당을 위시한 박근혜 세력의 2월 총력전이다. 또 어떠한 꼼수를 부릴지 알 수는 없지만 촛불항쟁은 반동의 도전에 맞서 끈기있게 응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 교수는, 촛불항쟁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광장에 갇혀 있는 의제와 공간을 지역, 공동체 등으로 확대·심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단기적 성과를 거둠과 동시에 중장기적 전망 속에서 사회운동의 대안으로서 지역운동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촛불항쟁이 열어 놓은 광장을 확장해서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채우는 것이 필요하다. 그곳은 거리, 지역, 공동체 등 상관없다.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이 광장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토론하고 결정된 것을 함께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바로 광장을 정치적으로 '조직화' 하는 것이다. 촛불항쟁은 일상의 삶과 현실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으면 커다란 의미가 없다. 광장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일상에서 만들어져야 하며, 광장 안과 밖이 동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