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장동민·유세윤·유상무)의 심각한 여성혐오 발언이 수면 위로 떠올랐던 2015년과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페미사이드'(여성혐오 살해) 문제가 본격 대두된 2016년을 거치면서, 한국사회에서는 '페미니즘'이 더욱 더 많이 '말해지고' 있다. 10일, 성균관대 CORE사업단이 주최하고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INAKOS)와 성균관대 비교문화연구소가 주관한 워크숍 '반동의 시대와 성전쟁'이 열렸다. 이 중 2개의 발표 내용을 게재한다. [편집자주]글 싣는 순서
① 페미니즘 책 열풍, 여성단체 성장 만든 건 '입금의 연대'② '로리콤' 논란, 성적대상화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실시한 2016 올해의 책과 올해의 이슈 투표 결과, 올해의 책 TOP10에는 페미니즘 도서 2권이 이름을 올렸고 올해의 이슈 1위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었다. (사진=알라딘 홈페이지 캡처)
총 23만 1104명이 참여한 2016 알라딘 올해의 이슈 1위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12.01%)이었다. 올해의 책 투표에서는 10위권 내에 페미니즘 도서 2권이 이름을 올렸다. 각각 5, 6위를 차지한 '나쁜 페미니스트'(5.73%)와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5.33%)이 그 주인공이다. 교보문고와 중앙일보가 선정한 올해의 좋은 책 10에도 '나쁜 페미니스트'가 꼽혔다. 출판 시장에서 페미니즘은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흐름이 됐다.
정고은 성균관대 국어국문학 연구자는 '2010년대 페미니즘 출판·독서의 양상과 의미'에서 이같은 현상을 "여성혐오 이슈에 대한 저항과 운동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 진단했다.
그는 특히 적지 않은 페미니즘 도서가 후원과 기부를 통해 출판되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대한민국 넷페미史',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외롭지 않은 페미니즘' 등 단행본에서부터 페미니즘 시각예술 매거진 '소문자 에프' 등이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출간됐다.
정 연구자는 "20~3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이 '돈이 된다'는 것, 소비자로서 '여성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페미니즘 운동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처럼 보인다"고 밝혔다.
20~30대 여성들이 주축이 된 '입금의 연대'는 단지 책 구매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여성민우회·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의 회원과 기부금이 늘고, 리벤지 포르노와 몰카의 온상으로 지적돼 온 '소라넷' 폐쇄를 추진 중인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 후원자들이 증가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사례다. 정 연구자는 이를 '대중페미니즘의 한 단면'으로 바라봤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된 페미니즘 도서들
정 연구자는 "메갈리아 티셔츠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펀딩에 참여해 성공한 반면, (페미니즘과 대치되는) '이퀄리즘'을 표방한 티셔츠는 다 팔리지 못해 실패한 사례가 있었다. (여성들이 주축이 된 페미니즘 지원) 구매 행위가 나의 구매 행위를 성공시키고, 내 구매 행위를 비난하는 세력들을 실패시키는 방향으로도 작동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다만 정 연구자는 페미니즘 도서에 대한 지원이 곧바로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지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 연구자는 "(페미니즘 도서 판매량 증가와 페미니즘적 실천의 상관관계를) 1:1로 설명하기 쉽지 않고, 이 점을 의식하다 보니 소극적인 의미화가 된 것 같다. 누군가 가부장제 도서를 읽는다고 해서 그게 곧 가부장제 타파하겠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 여성혐오 이슈 논쟁이 첨예하고 출판시장에서 그런 책을 많이 선보이고 있다. 지식에 대한 독자의 욕망과 출판자본이 맞춰가면서 함께 작동하는 점이 있다"며 "(소비자들은) 구매하는 행위를 통해 '주변에 이렇게 페미니스트(이거나 이를 지향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연구자는 또한 이처럼 표면화된 '대중 결집력'과 '연대'를 넘어, 페미니즘 도서를 읽은 '이후',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