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을 하루 앞둔 10일 서울시 양재천에서 열린 서초구 주최 대보름 행사에서 시민들이 달집 태우기를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어루 액이야. 어루 액이야. 어기영차 액이로구나."박근혜 대통령 즉각 탄핵을 촉구하는 열다섯 번째 주말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린 11일 낮 서울 광화문 광장. 이곳 세종대왕상 앞에서 신명나는 풍물 가락과 함께 시민들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해의 안녕을 비는 민요 '액맥이타령'이었다.
"박근혜 때문에 드는 액은 광화문 촛불로 막고/ 최순실 문고리 3인방도 광화문 촛불로 다 막아낸다"치배(풍물패에서 악기 치는 사람)의 선창이 끝날 때마다, 가사가 적힌 종이를 미리 받아든 시민들은 "어루 액이야/ 어루 액이야/ 어기영차 액이로구나"라는 후렴구를 합창했다.
"세월호에 드는 액은 광화문 촛불로 막고/ 김기춘 우병우 부역자도 광화문 촛불로 다 막아낸다// 언론에 드는 액도 광화문 촛불로 막고/ 재벌 탓에 드는 액도 광화문 촛불로 다 막아낸다"
정월대보름인 이날 '가락 헷갈리는 풍물패'라 적힌 깃발 아래 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를 들고 모여든 10여 명의 치배는 둥근 원, 달팽이 모양 등을 만들고 서로 마주보기도 하면서 다양한 빠르기의 가락을 뽑아냈다.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은 "잘한다" 좋다"는 추임새로 화답했다.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락 헷갈리는 풍물패'가 정월대보름을 맞아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이진욱 기자)
치배들은 몸이나 악기에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 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공연이 치러지는 마당 한켠에 자리잡은, '병신년이 가고 정유년 새벽 닭이 운다. 잡귀를 몰아내고 진실을 인양하자' '대한민국 주인인 국민의 명령이다. 그마해라~ 쫌! 박근혜 탄핵!!'이라 적힌 노란 현수막도 눈길을 끌었다.
잠시 가락이 멈춘 사이, 한 치배가 "여기 귀신 잡아온 것 보입니까?"라며 수많은 풍선이 든 커다란 투명 비닐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이어 "밟아라 밟아라 팍팍 밟아라"라는 치배의 외침에 딱 들어맞는 운율의 풍물가락이 흐르기 시작했고, 공연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앞으로 나서 풍선을 모조리 터뜨렸다.
풍물패 공연을 지켜보던 시민 김기관(65·서울 도봉동) 씨는 "여기 모인 사람 모두 마찬가지일 텐데, 박근혜가 너무 엉망으로 해서 탄핵하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 나왔다"고 전했다.
이어 "오늘이 정월대보름인데, 어릴 적 고향에 있을 때 정월대보름이면 풍물패가 집집마다 돌면서 복을 빌어줬다"며 "우리가 오늘 박근혜 탄핵 때문에 모이지 않았나. 무거운 마음으로 왔는데, (풍물패 공연) 덕분에 눈도 귀도 즐겁다"고 말했다.
'가락 헷갈리는 풍물패' 치배 오병길(41) 씨는 "우리 옛 선조들은 정월대보름마다 한 해의 풍요와 안정을 기원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풍물 가락과 함께 대동 판을 벌였다"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탓에 우리 사회가 몹시 혼란스러운 만큼, 그 액운을 몰아내고 다가올 풍요와 안정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시민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판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