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설한이라는 말이 실감날 만큼 칼바람이 불던 7일 오후, 언론단체들이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앞에 모였다. 율촌빌딩은 MBC 대주주이자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고영주, 이하 방문진)이 위치한 곳이다.
30여 명이 넘는 이들이 한목소리로 "무자격 방문진은 MBC의 새 사장을 뽑을 자격이 없다"고 외쳤다. 왜 방문진은 '무자격'이라 비판받는 것일까.
◇ 김재철-안광한으로 이어지는 체제 만들고 강화한 방문진
MBC의 대주주이자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 (사진=김수정 기자)
방문진은 방송문화진흥회법(이하 방문진법)으로 보장되는 단체로, '최다출자자인 방송사업자의 방송의 공적 책임을 실현하고 민주적이며 공정하고 건전한 방송문화의 진흥과 공공복지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서 방문진이 '최다출자자인 방송사업자'는 공영방송인 MBC다. 즉, 방문진은 MBC가 공영방송으로서 '민주적이며 공정하고 건전한' 방송을 할 수 있게 장려하고, 이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한 방문진은 MBC 사장과 임원 등 지배구조를 결정하는 중요한 권한을 가진다. MBC의 운명은 방문진 손에 달려있다고 하는 것은 결코 과장된 비유가 아니다.
한때 '마봉춘'이라는 애칭으로 사랑받아 온 MBC는 2010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의 낙하산이라 불렸던 김재철 사장이 부임하면서 확 바뀌었다. '공정방송'을 외치는 목소리는, 내부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독단적인 사장과 그가 뽑은 경영진 앞에 점차 무력화됐다.
게다가 당시 방문진 김우룡 이사장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김재철 사장이 '큰집'(청와대)에서 쪼인트 맞고 내려온 '좌파 청소부' 역할을 했다고 밝혀, '낙하산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바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대규모 파업을 여러 차례 벌였고 2012년에는 무려 170일이나 되는 파업을 감행했음에도, 공정방송을 저해하는 사장은 건재했고 그러는 새 MBC는 과거의 '마봉춘'과는 체질부터 다른 방송사가 되어갔다.
2013년 3월, 김재철 사장은 방문진에 의해 해임됐으나, 방문진은 망가진 MBC를 돌려놓을 수 있는 후보를 뽑기는커녕 그와 별 다를 바 없거나, 소위 '김재철 키즈'로 길러진 이들을 사장에 선임했다. 보궐 사장이었던 김종국 사장도, 2014년 선임된 안광한 사장도, 신뢰도와 영향력 면에서 탁월했던 예전 MBC로의 '회복'을 시도하지 않았다.
방문진은 2010년부터 현재까지 언론 안팎에서 '부적격'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을 MBC 사장에 앉히고, 그 사장과 경영진이 주도하는 공정방송 저해 행위 및 노조 탄압을 방조하기를 반복해 왔다. 여기에는 정부여당 추천 이사가 압도적 다수(9명 중 6명)인 방문진의 '구성'이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다.
더구나 방문진은 2015년 5월 개정된 방송법에 따라 이사회의 회의가 원칙적으로 '공개'로 바뀌었음에도, 회의를 공개하기 꺼려했다. 여당 추천 이사들의 주도로 '속기록 작성'도 방문진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으며, 간단히 작성되는 회의록에도 이사들의 실명이 들어가지 않는다. 회의 주제조차 표결에 부치자며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운영 행태에 방문진에서는 곧잘 언쟁이 일어난다.
MBC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게 힘을 보태야 할 방문진이, 도리어 MBC를 국민의 품에서 멀어지게 하는 데 앞장서 온 셈이다. 방문진이 '무자격'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 "언론장악 방지법 통과된 후 새 사장 뽑아도 늦지 않아"현재 국회에는 공영방송 사장·이사 지배구조를 정치적으로 보다 중립적인 방향으로 완화하고자 하는 방송법 개정안(방문진법도 포함돼 있으며, '언론장악 방지법'으로 불린다)이 계류돼 있다.
야3당과 무소속 국회의원들까지 포함해 162명이 지난해 7월 공동발의한 '언론장악 방지법'은 △공영방송 이사회 여야 비율 7:6 완화 △중립적인 사장추천위원회 마련 △사장 선임 시 특별다수제(전체의 2/3 이사들의 찬성이 있을 때 가결하도록 하는 제도) 도입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 구성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방문진법 개정안 부칙 제3조 1항은 '이 법에 따른 진흥회 이사 및 진흥회가 최다출자자인 방송사업자(MBC)의 사장은 이 법 시행 후 3개월 이내에 이 법에 따라 임명되어야 한다'고, 2항은 '이 법 시행 당시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 및 진흥회가 최다출자자인 방송사업자의 사장은 이 법에 따른 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 그 직무를 수행한다'고 밝히고 있다.
만약 2월 임시 국회 안에 '언론장악 방지법'이 통과되면, 3개월 후 방문진은 새로운 이사진을 꾸려 새로운 사장을 선임해야 한다는 의미다. 언론시민사회는 해당 법 내용과, 그간 방문진이 보여 온 행태를 근거로 방문진의 '사장 선임 강행'을 반대하고 있다.
MBC를 국민의 품으로! 공동대책위원회와 언론단체 비상시국회의는 7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앞에서 '방문진의 MBC 사장 선임 강행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수정 기자)
MBC를 국민의 품으로! 공동대책위원회와 언론단체 비상시국회의는 7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앞에서 '방문진의 MBC 사장 선임 강행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방문진이 새 사장을 뽑아서는 안 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의 안진걸 공동상황실장은 "취재현장에서 가장 먼저 시민들에게 지탄받고 쫓겨난 게 MBC 기자들이다. 오죽하면 막내기자들이 자괴감이 드는 현실에 대한 글을 올려 많은 국민들을 안타깝게 했겠나. 그들의 육성 중 가장 인상적인 게 더 혼내달라고 하는 부분이었다. 절절한 애정과 언론인으로서의 공적 책무감이 느껴져서 많은 분들이 공감한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이어, "언론장악 금지법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방문진은 (논의 후에) 사장을 뽑아도 늦지 않았다. 고영주, 안광한, 김장겸은 모두 스스로 사퇴하고 방송 공공성, 객관성, 독립성을 망친 것에 대해 석고대죄해도 모자라다"며 "시민혁명의 시대에 첫 번째 칼날은 재벌, 언론, 검찰로 향하고 있다. 시민들이 다시 와서 이 문제에 대해 항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능희 본부장은 "MBC본부에게 방문진은 한이 맺힌 곳이다. 2012년 김재철 일당 MBC의 농단을 끝까지 막은 것이 방문진 이사들이고, 여전히 남아있는 이사들이 있다"며 "MBC를 망치고 국정농단 공범 역할하고 부역자 노릇을 해 온 안광한 경영진을 비호한 방문진이 또 다시 사장 선임을 한다는 것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 언론 부역자와 공범들을 청산하고 응징할 때가 온 것 같다. MBC본부는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언론시민사회의 이같은 반발에도 방문진은 MBC 신임 사장 선임 일정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일부터 13일까지 사장 후보를 공모하고, 오는 16일 이사회에서 후보 3배수 압축, 23일 이사회에서 최후의 1인을 선임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