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가까스로 인명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구축하면서 친박 핵심 의원들에 대한 '징계의 칼자루'를 쥐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비대위 체제에서도 '출당'을 골자로 하는 인적청산은 사실상 어렵고, 서청원 의원 등 친박 핵심은 '끝까지 버티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인명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 개혁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당분간 새누리당의 내홍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이를 바라보는 보수진영의 입장도 엇갈리고 있다.
◇인명진, 비대위 구축…친박 출당 가능할까?
새누리당은 9일 상임전국위원회를 열어 비대위원들을 선출했다. 모두 인명진 비대위원장이 내정한 인사로 박완수 의원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당연직인 정우택 원내대표와 이현재 정책위의장까지 모두 4명이다.
이번 비대위 인선으로 인 비대위원장으로서는 자진탈당 요구에 격렬하게 반발 중인 친박 핵심 의원들에 대한 징계권을 손에 쥐게 됐다. 비대위가 구성한 윤리위원회는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의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 비대위원장이 목표로 삼고 있는 '친박 출당'은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리위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인 '제명'은 의원총회에서 3분의 2의 찬성을 필요로 한다.
인 비대위원장은 새누리당 의원 99명 가운데 68명이 거취를 백지위임했다고 자신했지만, 친박계의 영향력이 여전히 남아있는 새누리당에서 이들이 모두 찬성표를 던지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제명의 다음단계인 탈당 권유 역시 마찬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탈당 권유를 받은 의원이 10일 내에 탈당계를 제출하지 않으면 제명 절차에 돌입하는데, 이 역시 의원총회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새누리당 이진곤 전 윤리위원장은 이날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인명진 비대위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조치는 '당원권 정지'일 것"이라고 밝혔다.
새누리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5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탈당 권유 다음 단계로 거론되는 당원권 정지는 일정 기간 당원으로서의 모든 역할을 할 수 없게 묶어두는 조치다. 중징계지만 인 비대위원장이 구상해 온 인적청산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비대위를 꾸렸지만 '확실한 청산 카드'가 없는 인 비대위원장은 일단 장고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곧바로 징계 절차에 착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당내 신중론도 이 같은 기류와 맞닿아 있다.
비대위 관계자는 이날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당장 10일 비대위 회의에서 (징계를 위한) 윤리위 구성 안건은 올라와 있지 않다"며 "그 분들(친박 핵심)이 스스로 결단해주기를 바라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정우택 원내대표 역시 비대위 구성 직후 기자들과 만나 "윤리위 구성은 현재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스스로 (친박) 본인들이 처리할 걸로 기대한다"고 했다.
'인명진 비대위'는 당분간 여론전을 통해 '친박 자진탈당' 압박 분위기를 띄우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주를 '국민에 대한 반성주간'으로 삼고, 10일 의원총회와 11일 원내외 대토론회를 통해 '무엇을 잘못했고,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것도 '압박 전술'과 궤를 같이 한다.
이후에도 상황 변화가 없으면 인 비대위원장은 달궈진 '친박 책임론' 속에서 제명절차까지 강행할 가능성도 있다.
◇친박 핵심 서청원 '법적 대응'도 걸림돌인 비대위원장의 강공을 거센 비판으로 맞받던 서청원 의원은 '비대위 구성'의 적법성을 거론하고 나섰다.
앞서 지난 6일 열렸던 새누리당 상임전국위원회는 24명이 참석해 '정족수 부족'으로 불발된 바 있다. 서 의원 측이 전국위원들을 상대로 불참을 회유한 영향이 컸다. 하지만 이번 상임전국위는 참석자가 23명이었지만 개의해 비대위 구성에 성공했다.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4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박 핵심 의원들의 탈당을 요구하는 인명진 비대위원장을 '거짓말쟁이 성직자' 등으로 강력 비난하며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불참위원 6명이 '면직처리' 되면서 앞선 회의보다 적은 수로도 개의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건데, 새누리당은 인 비대위원장이 임면권이 있기에 면직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서 의원은 "불법적 방법으로 비대위를 구성했다"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그는 "오늘 상임전국위 변칙통과는 정당사에 없던 폭거"라며 "오늘 선출된 비상위원들은 인 비대위원장과 함께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비대위 구성을 둘러싼 법적 시비도 향후 '인적청산'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서 의원은 또 인 비대위원장에 대해 탈당강요죄와 명예훼손죄 등으로 형사고소까지 한 상태다. 법적 문제가 개입되면서 양측의 공방이 길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새누리 '진흙탕 싸움', 신당에 위기?한편 이들의 '진흙탕 싸움'은 새누리당 탈당파로 구성된 바른정당의 자리매김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바른정당은 최근 정강정책 초안과 당명까지 발표하며 새누리당과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지만, 지지율은 근소한 차이를 보이며 엎치락 뒤치락하는 모양새다. 막장으로 치닫는 새누리당 내홍 때문에 신당으로서는 여권 내 이슈 선점이 어렵다는 분석이다.
새누리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이 3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이인제 전 최고위원, 정갑윤 의원, 김관용 경북지사와 면담을 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인 위원장의 친박계 핵심 의원 인적청산 요구에 당내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아울러 인명진표 개혁작업의 성패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 탈당 움직임도 주춤해 신당의 '외연 확장'에도 정체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바른정당 관계자는 "(탈당을 고려하던 의원들이) 본인들이 몸을 빼는 게 굉장히 좀 환경이 안 좋아진 건 사실이잖느냐"고 밝혔다.
하지만 오히려 기회라는 시각도 교차한다. 현재의 새누리당 내홍을 사실상 '해체 과정'이라고 보고, 시간이 지나면 바른정당이 결국 제 1보수신당으로 남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친박 청산을 주장했던 바른정당 지도부가 최근 오히려 인 비대위원장을 겨냥하는 것도 이 같은 시각과 무관하지 않다는 설명도 있다. 바른정당 정병국 창당준비위원장은 "인 비대위원장과 관련해 서청원 의원과 함께 국회의장직 밀약설이 나돈다"며 "국민이 바라는 것은 새누리당의 해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