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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식 장군 -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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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 실록소설

 

만주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 장군의 삶이 박도 작가의 실록 소설 <허형식 장군="">으로 조명되었다.

경북 구미 출신의 박도 작가는 55세이던 1999년 여름 중국대륙 항일유적지 답사 길에 하얼빈 동북열사기념관에서 고향 출신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군장 겸 총참모장 허형식 장군을 접하게 된다. 그는 역사에 묻힌 허형식 장군의 행적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고자 자료수집과 역사공부에 진력했다. 집필을 마음 먹은지 16년 만에 책을 펴내게 되었다.

허형식 장군은 1909년 경북 선산군 구미면 임은동에서 태어난 바, 그 전해 경성감옥(서대문교도소) 개설 첫 교수형으로 순국한 13도 창의군 군사장 왕산(旺山) 허위(許蔿)의 집안 조카였다. 허위의 순국으로 임은동 허씨들은 일제 등쌀에 견딜 수 없어 1915년 봄, 만주로 집단 망명하여 길림성 통화현 다황거우, 진두허, 유하현 삼원포, 요녕성 개원현 이가태자 등지를 유리표박하다가 흑룡강성 빈현 가판점으로 이주했다. 허형식은 거기서 더욱 투철한 항일전사가 되고자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 당원으로 입당하여 최용건(崔庸健)의 지도를 받았다.

1930년 5월 1일 허형식은 하얼빈 일본총영사관 습격을 주도, 심양감옥에 수감되어 그곳에서 조상지(趙尙志)와 평생 동지 김책(金策)을 만났다. 이들은 삼국지 도원결의(桃園結義)처럼 혈맹을 한 뒤 각자 항일전선 최일선 전사로 용맹을 크게 떨쳤다. 1939년 허형식 장군은 31세 젊은 나이로 조상지 군장의 뒤를 이어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군장 겸 총참모장에 오른 후 중국공산당의 지시에도 끝내 소련으로 월경치 않고 고집스럽게 소부대 활동으로 북만의 인민과 전구를 지키다가 1942년 8월 3일 이른 새벽 경안현 청봉령 소릉하 계곡에서 만주군 토벌대에게 장렬히 전사했다.

작가 박도는 이 책의 머리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해방 후 우리 백성들은 줄곧 오만 잡스러움과 가짜들의 추악한 행태로 매우 지치고, 정의와 양심에 허기져 있다. 나는 이번 작품에서 조선의 무명옷처럼 순결한 한 항일 파르티잔의 올곧은 생애를 오롯이 그려 보았다. 이 작품이 지치고 허기진 백성들에게 한 줄기 빛으로, 한 모금 생명수로 앞날에 대한 ‘희망’을 주고 삶의 활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 흔히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하지만 패자의 기록, 역사에 묻힌 한 인물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는 일은 작가의 몫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나의 이 작품이 일제강점기 때 한 항일 파르티잔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징검다리 역할이라도 한다면 지은이로서 더없는 영광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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