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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욕망 사이를 방황하는 어느 인간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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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치버 장편소설, '이 얼마나 천국 같은가'

 

존 치버의 생애 마지막 장편 <이 얼마나="" 천국="" 같은가="">. 평생을 지독한 자기분열과 고통 속에서 고군분투했던 치버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이런 게 아닐까. 인생이란 얼마나 불가해한 것인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우연들이 우리의 인생과 인류의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그 사이에서 인간은 얼마나 무력하고 외로운지.

패스트푸드 체인점도 없고 오래된 저택들이 보수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는 마을, 재니스. 이 마을에는 비즐리 연못이 있다. 언젠가 바로 이곳, 비즐리 연못의 수질 문제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된 사건이 있었다.
레뮤얼 시어스는 뉴욕 시내의 이스트 78번가에 사는 노인이다. 그는 ‘낭만이 있던 시절’을 기억하는 세대였고 전쟁을 경험한 세대이기도 했다. 또한 아무리 추워도 오버코트를 포기하지 않는 세대와 계급에 속했다. 그는 겨울마다 비즐리 연못에서 스케이트 타기를 즐겼다. 스케이트를 타며 18세기나 19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이 그린 풍경화를 떠올렸고, 그 옛날 스케이트를 타고 사냥을 했던 원시인을 떠올렸다. 여느 외로운 도시민과 마찬가지로 집이라 해봤자 ‘텅 빈 방과 텅 빈 침대’가 전부인 그였지만, 스케이트를 타며 비로소 진정한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시어스는 그곳이 타락한 세상에 남은 유일한 천국이자 때 묻지 않은 순수의 성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천국이 사라진다. 비즐리 연못이 쓰레기 매립지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곧장 변호사를 선임한다. 도대체 이곳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시어스의 천국, 비즐리 연못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

시어스는 은행에서 우연히 르네라는 여자를 알게 된다. 그는 이미 나이도 많고 두 번의 이혼 경력까지 있었지만 여전히 열렬한 사랑을 꿈꾸는 남자였다. 부동산 광고지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부동산 중개인인 듯했고 나이는 서른다섯이나 마흔 살쯤 되어보였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이상 사랑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던 그에게 르네의 외모는 가장 활기차고 밝은 기억들을 떠오르게 했다.
영화에서 남녀가 열렬히 키스하는 장면이 나오면 그는 혹시 자신이 내일이나 모레쯤 그 세계를 떠나야 하는 것인가 하고 고민했다. 거리에서 연인들이 깊은 애정을 품고 포옹하거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기쁘게 걷는 모습을 볼 때면, 아주 순간적인 일이기는 해도, 자신의 나이가 생각났다. 그가 그녀의 모습에 넋을 잃은 데에는 이런 것들이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_본문 21쪽

어떻게든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낼 구실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는 집을 구하고 있다며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며칠 뒤 르네의 안내에 따라 함께 아파트를 보러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시어스의 마음에 드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거기다 어느 아파트에서는 침실 문이 열리지 않아 르네가 애를 먹었다. 그 문은 끝까지 열리지 않았고, 르네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시어스는 당황했지만 르네를 꼭 안아준다. 이 닫힌 문처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녀를 실망시키고 좌절하게 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위로를 보내며.
시어스가 르네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이었다. 르네의 태도가 갑자기 차갑게 변해버렸다. 평소에도 “당신은 여자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말을 자주 했던 그녀였지만 시어스로서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변화를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었다. 그녀는 결국 매정하게 떠나버린다.
그는 언젠가 출장으로 다녀온 적이 있는 발칸 반도를 떠올린다. 난방이 되지 않는 호텔방과 낡고 악취 나는 계단, 그리고 더러운 제복 차림의 웨이트리스. 시어스는 독재정부의 횡포 아래 외부와의 모든 소통이 단절된 곳, 상대를 이해할 것 같은 표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곳으로 자신이 무기력하게 옮겨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버림받았다는 느낌, 의지할 곳이 아무데도 없다는 느낌이 그를 휘덮는다.

시어스는 생각이 개방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 밑에서 자랐다. 따라서 그렇게 쓸쓸한 산악도시가 그의 의식 속에 자리잡은 이유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는 모든 종류의 적의가 진정 낯선 사람이었는데도, 그 순간에는 적의가 자신의 고향처럼 느껴졌다. _본문 65쪽

그렇게 르네가 떠나고, 시어스는 또 우연찮게 그녀의 아파트 엘리베이터맨과 사랑을 나누게 된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에게서 천국을 느꼈던 그였기에, 그리고 그런 연인들을 쉴새없이 만나왔던 그였기에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의외의 충동을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결코 존립할 수 없는 양가적 욕망이 공존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그 사이에서 길을 잃었음을 깨달은 시어스는 은밀히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기에 이른다.

주인공 시어스의 모습은 작가 존 치버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치버 역시 양성애자였고, 평생 그런 성향을 감추며 살았다. 그는 세상에 떳떳하지 못한 자신의 욕망에 괴로워하고 자책하면서도 다른 남자들을 만났다. 또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술을 끊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술 마시기를 멈출 수 없었다. 그는 이성애와 동성애, 더 나은 글을 쓰려는 욕망과 알코올중독 사이를 끊임없이 방황하면서도 오히려 그 사이의 고통과 갈등을 직시하고 이를 글로 승화한 작가였다.
시어스도, 치버도 모두 자신의 양가적 욕망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욕망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고 떨쳐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에게 그들의 욕망이 불가해한 어떤 것이었듯이, 이 작품속의 사건들도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비즐리 연못의 천국이 파괴되고 복원되는 과정 전체가 모두 우연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 어느 것 하나 인간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없다. 천국을 복원하려고 고군분투했던 시어스의 노력이 우스워질 만큼 뜻밖의 사건들이 그 과정에 개입하고 서로 긴밀한 영향을 미친다. 각각의 사건들은 시작과 끝, 원인과 결과도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채 앞일을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양상으로 나아간다. 마치 우리의 인생이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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