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역사 국정교과서 공개를 강행하면서도 '적용 범위'를 놓고는 여지를 남기면서, 청와대에 '반기'를 든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는 국정교과서를 내년 3월부터 전국 중고교에 일괄 배포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지만, 교육부는 여론 추이를 본 뒤 적용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사뭇 다른 수준의 입장을 나타내면서다.
교육부는 일단 28일 현장검토본 공개는 교육계와 역사학계 및 시민들의 강력한 철회 요구에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준식 장관은 25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국정화 철회 의사를 묻는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28일 현장검토본을 공개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면서도 "공개 이후 현장에 적용할 방안을 강구해보겠다"거나 "(철회 여부는) 공개 이후에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기존 입장에서 한발짝 후퇴한 모습을 보였다.
4%의 지지율이 보여주듯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국정 동력이 사라지면서, 교육부 내부에선 김병준 총리 후보 지명 이후로 다양한 후퇴 방안이 조심스럽게 검토돼왔다.
여론 반대가 계속될 경우 일단 내년엔 시범학교에 우선 적용하거나, 또는 대통령령을 개정해 현재의 검·인정 교과서와 혼용하는 방안까지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후자의 경우는 사실상 국정교과서의 '퇴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주초까지만 해도 이러한 가능성들에 대해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혀온 교육부는 이날 낸 입장자료에선 "결정된 바 없다"고 표현을 바꿨다. '검토중'임을 공식 확인한 것으로 풀이됐다.
2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 이준식 교육부장관 퇴진! 범시민 서명 전달 기자회견’ 에 참석한 변성호 전교조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황진환기자
청와대는 그러나 내년 3월부터 일괄 적용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교육부로부터 대안이나 재검토 방침을 건의받은 바가 없다"며 당혹감을 드러냈다.
이에 따라 '핵심 사정라인' 김현웅 법무부장관과 최재경 민정수석의 사표로 표출된 '청정(靑政) 균열' 조짐이 여론 반발에도 국정교과서와 누리과정 예산 떠넘기기 등 핵심 정책을 수행해온 교육부로까지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준식 장관이 현장검토본 공개 이후 사의를 표명하는 게 아니냐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지만, 현재로선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사회부총리를 겸해온 이 장관마저 '탈청'(脫靑) 또는 '탈박'(脫朴)을 공식화할 경우 다른 부처로까지 연쇄 도미노 현상이 빚어질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교육부 전직 고위관료는 "이 장관은 지금까지 한번도 자기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면서도 "하지만 국정지지율이 최악인 지금은 명분과 동력을 잃은 국정교과서 총대를 메는 걸 놓고 고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