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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국가안보정책'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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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숨길 수 있는 권리'

 

신간 <숨길 수="" 있는="" 권리="">에서 저자 대니얼 J. 솔로브는 '안보 대 사생활' 구도의 논쟁을 분석한다. 이 구도의 논쟁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논리는 '숨길 게 없으면 된다'라는 주장이다. 죄가 없고 떳떳하다면 사적인 정보나 대화가 조금 노출된다고 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인데, 이 주장은 사생활을 '숨기고 싶은 비밀'로 잘못 가정하고 있다. 저자는 '안보 대 사생활' 논쟁이 이런 잘못된 전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유의미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사생활은 하나의 본질로 환원될 수 없는 복잡한 개념이다. 사생활은 비밀이 드러났을 때에도 침해될 수 있지만, (비밀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당신을 엿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침해될 수 있다. 그런 일을 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당신이 입은 피해인 것이다. 외부로부터 침해받지 않을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모든 행동이 사생활의 범주에 들어가야 한다.

유의미한 논의를 위해서라면 사생활을 정의내리는 것보다는 그 가치를 평가해보는 것이 실용적이다. 철학자 존 듀이는 어떤 권리의 가치를 평가할 때, 그 권리가 공동체의 후생에 기여하는 바에 의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인의 권리는 사회에 반(反)하여 얻어내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편익이 있기 때문에 사회 스스로 개인에게 사적인 여지와 공간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사생활은 사회적 가치를 가지며, 사생활의 권리는 사회로부터 보장받아야 한다. 어느 한 개인의 권리와 더 큰 사회적 선(善)을 비교하는 구도로 사생활이 평가받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국가안보 사안에서는 '어느 한 개인의 권리'보다는 '수많은 개개인의 권리들'이 침해받을 가능성이 높으며,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사회적 가치에 속하기 때문이다.

안보와 사생활,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안보냐, 개인의 사생활이냐'라는 구도에서는 일반적으로 안보 논리가 우세할 수밖에 없다. 사생활 약간을 지키겠다고 국가의 운명을 시험할 국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생활을 희생시킨다고 꼭 더 안전해지는 것도 아니며 모든 안보정책이 사생활 침해를 유발하는 것도 아니다. 둘 중 하나를 '양자택일'해야 한다는 논리는 국가안보와 사생활을 양립하지 못하는 두 개의 가치로 본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두 가치는 공존할 수 있고, 공존할 방안을 찾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다. 치안과 안보가 국가의 의무이듯이, 국민들이 자유롭게 생활할 권리를 누리게 하는 것도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숨길 수="" 있는="" 권리=""> 전반에 걸쳐 사생활 보호가 결코 국가안보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국가안보정책을 만들고 시행함에 있어 적절한 규율과 규제를 마련해서, 정부의 정보수집활동이 막대한 권한을 갖는 것을 견제하자는 것일 뿐이다.

안보정책은 공포를 경감시키려 노력해야겠지만, 이는 분별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저자 대니얼 J. 솔로브는 안보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기본 원칙들이 논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 그 안보조치는 효과적으로 작동하는가?
2. 사생활이나 시민적 자유에 문제를 야기하는가?
3. 어떤 종류의 감독이나 규제가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 또는 완화할 수 있는가?
4. 사생활과 안보가 상충해 타협이 필요하다면,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안보조치는 어느 정도까지 제약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제약이 그 안보조치의 효과성을 얼마나 저해할 것인가? 그런 규제는 그 정도의 비용을 감수할 만큼 가치가 있는가?

저자에 따르면 "민주사회는 정부가 자신을 믿으라고 요구하는 사회가 아니다". 민주사회는 탄탄한 규칙과 절차가 마련되어 있어서 정부가 어느 선을 벗어나지 않게 만드는 사회이다. 국가가 만일 내 정보를 조회하고 수집하고 활용하더라도, 그것이 '합리적인 안보상의 이유'와 '합리적인 적법절차'에 의했을 것이라는 신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내 정보가 부당하게 이용되지 않고, 일정 기간 이후에는 파기되며, 정보수집 내역은 반드시 나에게 고지될 것이라는 믿음도 필요하다. 이런 믿음은 정부와 정부정책의 투명성으로부터 나온다.

책 속으로

어떤 사람이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제조에 대한 책을 여러 권 구매했다고 치자. 이 사실을 알게 된 당국은 그가 마약을 제조하려는 것이라고 의심한다. 하지만 그의 도서 구매 기록이 전체 이야기를 다 담고 있지는 않다. 이 사람은 필로폰 제조자가 등장하는 소설을 쓰고 있었다. 그는 필로폰 제조법에 대한 책을 구매하는 것이 당국자에게 의심스럽게 비칠지 모른다는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고, 그의 구매 기록은 구매 이유까지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무언가를 구매할 때마다 정부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염려해야 하는 것인가? 요주의 인물 목록에 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려해야 하는 것인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고 있지 않지만 그는 당국이 자신의 기록을 보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다. 잘못된 추론을 내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범법 행위를 찾아내고자 불을 켜고 들여다보는 당국의 눈에 자신의 행동이 어떻게 비칠지 매번 걱정하며 살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 47쪽

포스너와 버뮬은 “당면한 위협과 그에 필요한 대응이 모두 새로운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통상적인 사법절차와 느리게 진화하는 법적 규칙들은 적절치 않거나 방해가 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통상적인 사법절차’와 ‘법적 규칙’은 법치와 적법절차의 기본이다. 이것이야말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의 근간인 것이다. 포스너와 버뮬처럼 안보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안보 강화에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에만 초점을 둔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안보와 자유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그에 따라 최대치의 안보가 달성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는 권위주의체제가 아닌 민주사회에서 살고자 할 때 감수해야 할 비용이다.
/ 61-62쪽

대법원은 사생활이 완전한 비밀의 형태를 띠는 것이라고 해석하는데,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당신이 정보를 누군가와 공유하는 순간 그 정보가 사생활로 간주되지 않는다. 깊이 신뢰하는 사람에게 털어놓은 정보도 마찬가지이다. 누구에겐가 당신의 정보를 일단 노출하면, 경찰이 그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든, 그것은 사생활이 아니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사생활=비밀’의 개념은 합리적이지 않다. 우리가 무언가를 절대적으로 비밀로 여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 비밀을 털어놓을 때, 우리는 그 내용이 퍼지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내밀한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나를 배신하고 그 이야기를 퍼뜨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열린 장소에 있을 때도 내 말이 기록되거나 내 행동이 미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 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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