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김영삼 평전:민주주의의 수호자'는 고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최초의 평전이다. 이 평전은 비록 그가 임기 말 제2의 국치라는 IMF환난을 막지 못하고 쓸쓸히 퇴임했지만, 민주주의의 회복을 갈망하는 현실에서 40대 기수로서 거침없이 격동의 현대사에서 대도무문을 걸어왔던 '정치인다운 정치지도자 김영삼'에 대한 방대한 통사적 기록이다. 아울러 이 책은 그와 거의 동시대를 살아왔던 한국 현대인물 평전의 대가 김삼웅의 역작이다.
1937년, 하숙집 책상 앞에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써 붙인 까까머리 중2 소년이 있었다. 그로부터 55년 후, 최연소 20대 국회의원, 최연소 30대 야당 원내총무, 최연소 40대 야당 총재로 대성하여, 50대 대통령 후보를 거쳐 마침내 60대에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이승만 부정부패 정권, 박정희 3선 개헌 반대투쟁과 폭압적 긴급조치, 전두환 신군부의 군사독재에 맞서 치열한 민주화 투쟁의 최전선에서 정치거목이 되었으며,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간다'며 3당합당을 감행했다.
그는 대통령의 권좌에 오르자 지체 없이 문민정부를 표방하며, 한국 현대사에서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금융실명제'실시, 군부의 사조직 '하나회' 척결, 평시작전통제권 회수, ‘역사바로세우기’로 총독부건물 해체, ‘공직자 재산 공개’ 등 파격적인 개혁드라이브를 펼쳐 군사정권 32년의 적폐를 어느 정도 해소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뚜렷한 족적과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비록 임기 말에 IMF환난을 초래하여 전 국민에게 고통을 주기도 했지만, 그는 여전히 ‘정치인다운 정치가’의 표상이며 역사의 현장을 온 몸으로 겪어온 한국 현대사 그 자체의 거산(巨山)이라고 할 수 있다.
김영삼은 정치인이다. 정치 이외에 달리 해 본 일이 없다. 20대부터 80평생을 정치인으로 살았다. 그리고 대통령까지 올랐다. 정치인으로 성공한 것이다.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5공 독재를 종식하는 데 그의 역할이 컸다. 계량화하기는 어렵지만 당대의 어느 정치인에 못지않았다. 그는 정치적 리더십과 스타십을 함께 갖춘 보기 드문 지도자였다.
이 책은 비단 김영삼이라는 한 정치인에 대한 평전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독자들에게 일제강점기에서 8.15해방과 이승만 정권, 한국전쟁과 4.19혁명, 5.16군사쿠데타와 1980년의 신군부 쿠데타를 거쳐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그리고 MB정부, 박근혜정부에 이르기까지의 숨 가쁜 한국 현대 정치사의 산맥을 거시적으로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게 해준다.
책 속으로그는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제시한 정열·책임감·사명감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정치인으로서는 완벽에 가까운 인물이다.(p.13)
민주국가에서 군사쿠데타는 반란행위이지만, 더욱이 일본군 장교 출신들의 쿠데타는 정치사 이전에 민족사적으로 비극이었다. 박정희는 18년 5개월 10일 동안의 집권기간에 군정 940일, 계엄령 3회, 위수령 4회, 대학휴교령 5차례, 비상사태 1회, 긴급조치 9회 등 폭압통치로 일관했다. 그의 집권기간은 이승만보다 6년이 길고, 김영삼·김대중·노무현 3대의 15년보다 3년 반이 더 많았다.(p.132)
제13대 총선에서 제2야당 총재로 밀려난 김영삼은 타도의 대상이었던 노태우· 김종필과 손을 잡았다. 이른바 3당 통합 또는 3당야합이었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갔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정치인의 가장 큰 덕목은 지조'라던 자신의 좌우명을 버린 것은 물론 '여소야대 정국'을 거대여당으로 만들고, 이로써 5공청산과 민주개혁을 지체시켰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로 인해 이후 부산·경남지역 민주세력이 보수화되면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비판은 현재진행형이다.(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