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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열혈청년, 대구10월인민항쟁 선봉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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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이일재, 최후의 코뮤니스트'

 

"진정한 휴머니스트는 국가, 민족, 애국, 조국 같은 단어에 현혹되지 않습니다. 사회주의자에게는 조국도 민족도 없습니다. 오로지 인간, 그리고 인류가 있을 뿐입니다. 지난 세기에 왜 세계의 지성들이 남의 나라 스페인 내란에 뛰어들어 목숨을 바쳤습니까?" - 본문에서

이일재(1923~2012). 낯선 이름이고, 기억되지 않은 이름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90평생 가운데 20여 년을 감옥에서 사회와 격리되어 지낸 사람이고, 대한민국의 역사에는 이일재와 같은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우거나 묻어버리고 싶어 한 정권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이일재의 삶은 요약하면 간단하다. 대구 지역을 기반으로 민족해방운동과 노동운동에 평생을 헌신한 사람이다.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에 태어나 사회과학 서적을 찾아 읽으며 자생적으로 공산주의에 눈 떴고, 해방 이후 조선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했으며, 이승만 정권 때 빨치산으로 항쟁을 벌였고, 박정희 정권 때 이른바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이라는 조작된 사건으로 20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1988년에야 ‘광복절 특사’로 햇빛을 보았다. 그리고 대구 지역에서 민주노총 지도위원으로 현장 활동가들을 지원하고 노동자들과 여생을 함께했다.

그러나 이런 몇 줄의 건조한 이력만으로 그가 흘린 피와 땀의 가치를 설명할 수는 없다. 90년이라는 짧지 않은 삶,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절체절명의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지만,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그의 삶의 가장 큰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휴머니즘이었다. 그리고 그가 평생을 걸고 지켜낸 가치는 오롯이 우리 현대사의 발전 과정과 맥을 함께한다.

해방 다음해인 1946년 대구10월인민항쟁의 주역으로 항쟁을 이끌고, 한국 노동운동의 숨은 대부로, 노동자의 영원한 벗으로 살아간 이일재의 일생은 한마디로 자본주의 모순과의 투쟁으로 압축된다. 다른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일제 강점기에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내면서 직접 체험한 제국주의의 치떨리는 만행은 그를 투사의 길로 이끌었을 것이다. 조금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적극적인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강직한 선비적 기풍과 항일운동 내력을 지닌 가풍도 작용했겠지만, 이일재의 선택은 ‘자발적 공산주의자’였고, 17살 나이에 노동 현장에 들어감으로써 이후 90평생을 몸바치게 될 사회운동을 시작한다.

해방과 신탁통치의 격랑 속에서 ‘먹을 것을 달라’는 절박한 생존형 구호를 내걸고 불붙었던 1946년 대구10월인민항쟁 당시, 20대의 열혈청년이었던 이일재는 최선봉에 선다. 하지만 “영토의 절반에 사회주의 정권이 세워진 나머지 땅에서 사회주의를 지향해야 했던, 극단적인 반동에 직면할 수밖에 없던 이들의 비극이었다. 남한의 공산당 또는 남로당은 그 어떤 정책을 펴더라도, 얼마나 민중의 지지를 받는가와 상관없이 몰락하고 소멸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본문 124쪽).”라는 작가의 말을 빌면 ‘조선의 좌익’의 길을 선택한 이일재의 이후 행보는 필연적으로 ‘몰락하고 소멸할 수밖에 없는’ 이들과 궤를 함께한다. 그는 운명을 회피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대가는 혹독했다. 대구항쟁 이후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앞둔 이승만 정권의 대대적인 좌익 검거, 그리고 빨치산이 되어 산속에서 보낸 처절한 나날들, 체포와 수감생활, 그리고 이후 20년이라는 시간을 앗아가버린 조작 사건인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그러나 감옥에서 본 잡초인 쇠비름, 짓밟아도 잘라내도 기어이 다시 자라나는 그 쇠비름처럼 살아가겠다는 의지는 미련스럽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평생토록 변하지 않았다. 그는 진짜 사회주의자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것은 훗날 이일재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도 알 수 있다.

“나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현명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걸 주장하다가 죽음을 당하는 것보다는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인정해서 일단 살아난 다음에 왜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게 맞느냐는 거를 과학적으로 입증해내는 겁니다. 그건 결코 목숨을 구걸하기 위한 비굴만은 아닙니다. 자기 개인의 체면과 명분을 지키려고 목숨까지 버리는 우국지사보다는 민중의 이익을 위해 자신에게 쏟아지는 수치와 모멸까지 감수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사회주의자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작가는 “마지막 공산주의자일 수는 없지만 가장 늦도록 생존했던 조선공산당원임은 분명한” 한 인간의 삶이 우리에게 기억되어야 할 이유를 이렇게 쓴다. “생애 마지막까지 온 평생을 이 사회의 모순을 고치기 위해 바쳤기” 때문이라고.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책장 사이사이마다 배어나오는 듯한, 그가 흘린 피와 땀의 처절한 흔적을 덤덤히 읽어내려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말은 할 수 있지만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 행동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영광, 그것은 역사가 기억해주는 것이다. 이일재는 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자격이 충분하다. 그리고 언젠가 한국 사회와 한국의 노동운동 상황이 제2, 제3의 이일재를 필요로 하지 않을 그날이 올 때까지, 그의 이름은 아마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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