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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우리는 과학적 진실을 추구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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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천안함의 과학 블랙박스를 열다:분단체제 프레임 전쟁과 과학 논쟁'

 

'천안함의 과학 블랙박스를 열다'에는 저자가 천안함 논쟁에 관해 꼼꼼하게 모은 기록물이 담겨 있다. 이 기록물은 어느 특정 논리를 반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아카이빙된 것이 아니다. 저자는 아직도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는 이 사고의 후속 연구를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현재 시점에서 최대한 모을 수 있는 자료를 모아냈다. 또한 과학을 '논쟁의 역사'로 노정하는 저자는 특유의 균형감으로 한창 뜨거웠던 2010년 3월~5월의 논쟁을 냉철하게 정리했다.

심지어 14명의 사람들을 직접 인터뷰한 뒤 그 내용을 수록하기도 했는데 인터뷰 대상자 중에는 '천안함 논쟁'에 활발하게 참여했던 송태호 KAIST 기계공학과 교수와 그에 반대되는 주장을 펼쳤던 이승헌 버지니아대학교 물리학 교수, 또한 윤종성 전 합조단 과학수사분과장도 인터뷰 했다. 이처럼 저자는 인터뷰 대상자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도 균형감을 잃지 않았다. 이처럼 저자는 인터뷰 대상자를 선정하는 데 있어서도 균형감을 잃지 않았다.

저자가 모은 그 밖의 자료도 마찬가지이다. 정부가 발간한 민군 합동조사단 조사결과 보고서인 '천안함 피격 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를 포함해 정치성향을 망라한 주요 언론의 기사 103건, 미국 해군 자료 12건, 국방부 자료 27건, 국회 회의록 8건,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공판조서(증인조서)13건, 200여 건의 논문 및 문헌을 꼼꼼하게 정리한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누구나 잊혀져가는 이 사건의 전후맥락을 객관적으로 직시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저자는 직접 해군 제2함대의 천안함 전시물과 에너지 분광기(EDS) 실험실을 견학하기도 했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언론인 연수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신상철 명예훼손 피소 사건도 방청했다. 수많은 자료들을 정리하고, 직접 발로 뛰어 눈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의지로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그리고 아직 불씨가 살아 있는 '천안함 논쟁'에 있어 가치 있는 기록물이 탄생했다.

천안함, 연평도, 세월호…. 최근 몇 년 새 국민적 트라우마를 안긴 사건·사고이다. 사상자 규모와 사건 원인에 따라 논란의 크기는 제각각이었지만 7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천안함 침몰사고'에 대한 자유로운 의견표명은 여전히 쉽지 않다. 분단체제 국가의 경비정이 침몰한 사안의 심각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침몰원인을 밝히는 데 있어 '과학 전문지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쌍끌이 어선으로 찾아낸 어뢰추진체를 두고, 또 물 속 폭발에 있어 물리학 전문가 간 열역학 기본공식 대입 방식을 두고, 벌어지는 '과학 논쟁'을 보는 국민들은 전문가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믿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에 시달려야 했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있어 유용한 도구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과학 지식은 오히려 제2, 제3의 논쟁을 촉발시켰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사건에 대한 정부의 공식발표가 있은 지 6년여의 시간에 흘렀지만 여전히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해서는 '북한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닌가'라는 질문이 매섭게 폐부를 찔러온다. 책은 이 질문에 성급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이 논쟁에 있어 '과학이 행한 역할'에 집중한다. 또한 적지 않은 사람들의 미심쩍어 하는 부분에 대하여 좀 더 심도 있게 지켜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이렇게 진실을 인지하는 태도를 성찰하기에 앞서, 속도전으로 진행된 논쟁은 분단체제 속 이데올로기의 격랑으로 휩쓸려버리기 일쑤였다.

바닷속에서 건져진 어뢰추진체, 동강 난 배를 살피는 작업은 '증거 과학'을 다루는 과학자사회 및 전문가사회 안으로 국한되었고 공론장에서는 공허한 프레임 전쟁만 지속됐다. 함께 큰 충격을 받은 한국 사회 구성원은 이 논쟁의 공론장에 참여하기보다는 방청객으로 소환되곤 했으며 논쟁은 아직도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이 책을 통해 스스로 자문하고, 성찰할 수 있다. 우리는 진실로 '과학적 증거'를 찾고 싶었는가? 이 질문이 선행되지 않은 '천안함 논쟁'은 또다시 정쟁 속으로 빨려들고 말 것이다. '증거 과학'이 중심이 된 거대 사건일수록 과학이 들어갈 틈이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저자가 꼼꼼하게 모은 자료로 치밀하게 정리한 논쟁 역사의 기록이다. 또한 언젠가 실행될 진실 규명을 위한 후속 연구에 징검다리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는 소중한 '연구성과물'이다.

과학담당기자인 저자는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박사학위논문 '천안함 과학 논쟁의 성격과 구조'는 2015학년도 2학기 자연대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 저자는 학계를 넘어 더 다양한 층위에 있는 일반 독자를 향해 말을 거는 '단행본' 형식을 갖추기 위해 논문을 다듬었다. 선행연구를 주로 소개하는 1장을 줄이고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중복되는 듯한 내용은 과감하게 삭제했으며 다소 어렵게 느껴질만한 문장은 퇴고를 거듭했다.

◇ 책 속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선체파손을 충분히 표상하기 위해서는 연구자의 숙련도와 함께 많은 시간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데, 천안함 사건의 조사과정에서 그만큼의 충분한 시간은 주어지지 못했다. 충분하지 않은 시간은 '1번 어뢰'의 발견 이후부터 합조단 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까지 매우 짧은 일정의 촉박함에서 기인했으며, 이로 인해 천안함의 선체파손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인 용골 절단이 만족스럽게 표상되지 못한 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마무리해야 했다. -197쪽

예측과 믿음, 그리고 이를 확인해주는 증거의 발견은 충분한 조사와 검증 과정을 생략하거나 축소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발표 이후 나중에 새롭게 드러나는 현상에 대해 사후적으로 조사하고 해명해야 하는, '결정적 증거'의 지위로 보면 어울리지 않는 상황을 낳고 말았다. -265쪽

천안함 '과학 논쟁'은 증거의 해석을 둘러싸고 벌어졌으나 그것은 또한 합동조사단의 과학 실행이 적절했는지를 둘러싼 논란이기도 했다. 이런 반론에 대응하는 방식, 즉 한국사회에서 천안함 '과학 논쟁'이 전개되는 과정을 이해하고자 할 때 몇 가지 특징을 짚어낼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제기된 과학적 의문들이 대부분 일정한 형식과 합의를 갖춘다면 재조사나 재실험, 재분석을 통해서 검증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404쪽

과학적 진리, 진실은 종종 민주주의 체제와 함께 논의되는데, 이는 진리의 유일성, 실재성에 대한 인식이 깨지면서 사실과 진리는 청중, 해석공동체, 공론장에서 설득력을 얻거나 타당성을 인정받는 과정을 거치며 굳어지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는 진리가 구성되고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절차주의적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하버마스는 '상호이해를 지향하는 의사소통' 행위에서 사실에 대한 서술에는 비판 가능한 타당성 주장이 함께 실리며, 이때에 타당성은 '우리에게 입증된 타당성'으로 이해된다고 주장했다. -4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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