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등 북한주민이 남한 가족에게 '상속 받은 재산 가운데 내 몫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상속회복권은 민법과 같이 길어도 '10년 내'라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장기화되는 남북분단의 특수성을 고려해 북한주민의 권리보장을 위한 입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면서도 남한주민의 손해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19일 탈북한 이모(47)씨가 아버지의 형제들을 상대로 낸 상속재산회복 청구소송에서 각하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
남북주민의 가족관계와 상속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마련된 '남북가족특례법'은 남한주민으로부터 상속받지 못한 북한주민에게 민법에 따라 상속회복청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상속회복청구권을 '그 침해를 안 날로부터 3년', '상속권의 침해가 있은 날로부터 10년'을 지나면 소멸한다고 규정한 민법과 달리 그 제척기간을 두지 않아 논란이 됐다.
앞서 이씨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중 서울에서 실종됐지만 실제로는 북한에서 생활하다 브로커를 통해 한국 가족과 접촉한 게 들통나 고문 후유증으로 2006년 사망했다.
이씨는 이듬해 탈북해 2009년 한국에 들어온 뒤 할아버지가 1961년 숨지면서 고모와 삼촌에게 충남 연기군에 있는 선산을 상속해줬다는 걸 뒤늦게 알고 2011년 상속회복 소송을 냈다.
1심은 "분단이 장기화되면서 10년이 지난 경우가 허다할 것"이라며 "민법을 그대로 적용하게 되면 북한의 상속인으로서는 다소 가혹한 결과가 초래된다"고 봐 명백한 규정이 없는 특례법은 민법상 권리행사 기간을 배제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상속재산을 확정적으로 취득한 남한주민들에게 발생할 불이익 문제와 북한에 있는 재산처리와의 형평 문제 등을 감안해 특례를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을 뒤집었다.
대법관 전원이 심리한 결과는 5명의 대법관이 반대 의견을 냈지만 다수(8명)가 2심의 판단을 수긍한 것이었다.
특례를 인정할 경우 법률관계의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대법원은 "남북 분단의 장기화‧고착화로 인해 민간 차원의 남북교류가 단절된 현실에서 남한주민과 가족관계에서 배제된 북한주민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어디까지나 해당 규정에 관한 합리적인 법률해석의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민법에서 정한 상속회복청구의 제척기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특례를 인정할 경우에는 법률관계의 안정을 크게 해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반대 의견을 낸 소수 대법관들은 북한주민은 상속회복청구 자체가 불가능해 제척기간 동안 권리 행사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불이익을 줄 수는 없다고 밝혔다.
북한주민은 상속권 침해 10년이 지나도 '남한에 입국한 때부터 3년 내'에는 청구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이번 판결은 북한주민의 상속회복청구권 기간에 관한 최초 대법원 판단이다.
다수와 반대의견 모두 향후 입법을 통해 북한주민의 상속회복청구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데 공감했다. 입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촉구다.
다만, 제척기간이 연장되면 남한주민이 입게 될 예측하기 어려운 손해에 대한 고려도 있어야 한다는 게 대법원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