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사진=윤창원 기자/노컷뉴스)
이른바 '송민순 회고록'을 두고 새누리당의 파상공세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전 대표가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나섰다. 문 전 대표에게 직접 사실관계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진실공방'에는 응하지 않되 '색깔론'을 들이대는 이념공세에 대해서는 역공을 펴며 정면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대응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여권의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의혹 공세에 섣부르게 정면대응하며 불필요하게 진실공방을 만들고, 대선 패배로까지 이어졌던 전례를 밟지 않겠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與, '문재인 진상규명위' 꾸리고 장기전 예고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7년 11월 18일,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의 제안과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의 동의로 북한의 의견을 구한 뒤 북한인권결의안 기권이 결정됐다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주장을 두고 새누리당은 18일 공세의 고삐를 바짝 조였다.
당시 상황을 '국기문란'으로 규정하고 '내통', '종복(從僕. 시키는 대로 종노릇함)', '시녀정권' 등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총공세에 돌입한 새누리당은 이날 '북한인권결의안 문재인 대북결재 요청사건 진상규명위원회'까지 꾸리고 문 전 대표에게 직접 해명을 거듭 요구했다.
새누리당은 특히 당시 대통령 연설기획비서관이었던 더민주 김경수 의원의 주장대로 인권결의안 기권을 결정한 뒤 북한에 통보했더라도 국가기밀 누설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의 이런 대응은 이번 논란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기에 앞선 일종의 '전열 재정비'로 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더민주·문재인 "사실관계 나올 만큼 나왔다"
더민주와 문재인 전 대표는 그러나 기권입장을 정한 뒤 북한에 통보했단 사실이 명확하게 규명된 만큼 문 전 대표의 직접 해명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문 전 대표는 18일 충북 괴산에서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사실관계는 지금 나올 만큼 나왔으니 더 말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며 자신에게 해명을 거듭 촉구하는 여권의 요구를 일축했다.
더민주 지도부 역시 지난 16일 김경수 의원의 해명으로 2007년 북한인권결의안 처리과정에 대한 논란이 해명된 만큼, 여권의 추가 해명 요구에는 응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의 정략적 의도가 명백한 정치공세에는 응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입장을 여러차례 밝혔다.
문 전 대표 측은 다만 김만복 전 원장과 당시 통일부 장관이었던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당시 통일부 정책보좌관이었던 더민주 홍익표 의원,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천호선 전 정의당 대표 등을 통해 당시 상황에 대한 세세한 오해를 바로 잡는 작업은 병행하고 있다.
천호선 전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2007년 11월 16일 기권이 결정됐지만 송민순 전 장관의 지속적인 결의안 찬성 주장으로 21일에 최종 발표된 것"이라고 송민순 전 장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결정되는 시점은 16일이냐 20일이냐에 따라 송 전 장관이 주장하는 '사전 문의'인지 문 전 대표 측이 반박하는 '사후 통보'인지를 가를 주요한 근거가 되는데 천 전 대변인이 이 시점을 16일로 못 박으면서 '기권입장을 북한에 사후 통보'했다는 문 전 대표 측의 주장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北과 내통' 등 색깔론엔 "내통은 與가"…역공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18일 국회에서 열린 당 긴급의원총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노컷뉴스)
더민주는 다만 새누리당의 이념공세에 대해서는 역공을 펴며 정면 대응에 나선 상태다.
문재인 전 대표는 18일 "군대도 제대로 갔다 오지 않은 사람들이 걸핏하면 종북타령"이라며 "극심한 경제위기와 민생파탄, 최순실과 우병우 등 권력실세들의 국정농단 비리,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문제 등을 가리고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색깔론(을 펴고 있는 것)"이라고 정면 반격했다.
추미애 대표도 이날 저녁 의원총회에서, 문 전 대표에게 '북한과 내통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를 향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온 박근혜 대통령에게 '내통'하고 왔냐고 물어봐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추 대표는 "SNS를 보면 국민들은 (2002년) 박근혜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접촉한 경로는 무엇이고, 4시간 동안 한 이야기는 무엇인지 묻고 있다"며 "박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김 위원장에 대해 '솔직하고 거침이 없다. 서로 마음을 열고 이끌어낸 약속을 모두 지키려고 가능한 한 노력하는 사람이다. (방북) 3박4일 동안 가슴 찡한 때나 한두 번이 아니었다' 했는데 이 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대통령님, 왜 내통하고 오셨습니까' 물어보라"고 꼬집었다.
우상호 원내대표도 "남북대화를 '내통'이라고 말하는 대결적 인식을 갖는 집권당 대표에게 한 가지 묻겠다. 남북대화가 상시적으로 진행되던 그 시기에 비해서 지금 한반도가 더 평화롭고 안전한가"라고 반문하며 반격에 나섰다.
199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이회창 후보 측이 북한에 총격을 요청하고, 2011년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돈 봉투를 주며 정상회담을 요청한 의혹 등을 제시하며 "내통 의혹은 새누리당 정권이 행한 일"이라며 역공도 펴고 있다.
◇"'제2의 NLL 대화록 사건'에 휘말리지 않겠다"더민주와 문재인 전 대표 측이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나선 것은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의 '노무현 전 대통령 NLL 포기발언' 공세에 휘말리면서 문재인 후보가 적잖이 타격을 입었었기 때문이다.
18대 대선을 앞둔 2012년 10월, 정문헌 전 새누리당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당시 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고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 전 대표는 "사실이라면 책임을 질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논란이 격화됐다. 결국 정 전 의원의 발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고 자신도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문 전 대표는 대선에서 패배했다.
문 전 대표의 대변인격인 김경수 의원은 "북한에 의견을 구한뒤 인권결의안에 대한 기권을 결정했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상황에서 여권이 이런 식으로 문제를 삼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입장"이라며 "필요한 부분은 정면 대응하겠지만 당시 의사결정 과정을 주도하지도 않은 문 전 대표가 당시 상황에 대한 해명을 일일이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