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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빈공간, 미술의 바다로 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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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드 Void'전 10.12~2017.2.5

'Ob.scene'작품 중 '장면 11'

 

미술관의 빈 공간이 현대미술의 바다가 되어 출렁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관 공간들이 섬이라면 나머지 공간들은 바다라고 할 수 있다. 그 바다에서 놀기를 즐긴다면 전시관들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풍경으로 바뀌고, 출렁이는 파도와 물결 위가 놀이의 장소가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보이드 void="">전은 이런 즐거움을 선사한다. void는 빈 공간을 말한다. 전시 제목에서는 '빈 공간'의 의미를 전혀 파악할 수 없다. 제목만 봐서는 한국 관객은 무슨 전시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전시이다. 어찌 되었든 '빈 공간' 전시인 줄 알았으니 어떤 전시가 담겼는지 따라가보자.

1시간 8분에 걸쳐 '밝은 방'(18분)과 'Ob.scene'(50분)를 감상했다. 이 과정이 백발번뇌를 비워내기 위한 수도의 과정이라고나 할까. 명상적 구도의 시간이었다.

'밝은 방'은 장민승, 정재일 작가의 공동 작업에 의해 탄생했다. 지하 2층 6전시실로 들어가 계단으로 한층 더 내려가면 지하 3층에 거대한 공간이 또 나온다. 그 공간 모퉁이에 격자형의 또다른 작은 공간에 대형 스피커들이 설치되어 그것에서 음향이 울려퍼진다. 그 음향은 2개 층에 걸친 거대한 공간에서 공명을 하며 관객에게 전달된다. 높고 깊은 큰 산 속에서 뿔나팔 소리가 정적을 깨면서 울려퍼지고, 때로는 원시 부족들이 춤을 추며 질러대는 아우성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웅장하고 울림이 큰 이 소리들은 시원의 세계에 맞닿은 느낌이다. 조명은 희미해져서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다시 밝아지고 전체적으로 환해진다. 이 조명의 변화와 소리의 강약은 조화를 이루며 감각을 자극한다. 어느 순간 졸립기도 하다가 갑자기 크게 들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자연음의 목소리가 두갈래로 들려오는 것을 의식한다. 둥둥 반복되는 리듬의 음향이 들리니 첫 대목이 다시 시작됨을 알아차리고 원시, 야성, 주술의 세계에서 빠져온다.

'Ob.scene'(서현석, 김성희, 슬기와 민)으로 가보자. 이 작품은 20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Ob.scene은 무대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형식을 벗어난, 파격의 의미로 보면 되겠다. 각 장면은 전시관이 아닌 복도와 계단을 따라 20개 지점의 공간을 이동하며 꾸며진다. 오디오 북을 들으며 여정을 떠나보자.

"붉디 붉은 해는
매정하게도 가을 바람"

일본 하이쿠 시인 바쇼의 싯귀가 '장면 11' (맨 위 사진)의 통유리로 된 벽면에 새겨져 있다. 통유리 밖에는 담쟁이가 드리워져 있고, 위쪽으로는 푸르른 하늘이 펼쳐진다. 바쇼의 하이쿠 대신 나 자신도 하이쿠 한 수를 지어본다.

"맑디 맑은 가을햇살
더욱 진한 담쟁이 그림자"

'Ob.scene'작품 중 '장면 6'

 

'장면 15'는 복도 저 끝에 출입문 창문이 마주보인다. 그 사이 음성이 들려온다. "복도의 저쪽 끝에서는 거울이 우리를 염탐하고 있었다. 거울과 성교는 사람의 수를 증식시키기 때문에 가증스러운 것이라고 했던 말을 기억해냈다."(보르헤스, "틀뢴, 우크바크, 떼르띠우스" 중)

'장면 9'는 벽면을 마주한 채 천정을 바라본다. 절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형이상학적으로 나의 자살은 삶의 부조리에 대한 내 존재 전체를 건 거부였으며, 좀 더 구체적으로 소비에트 관료 체제의 심장을 향해 쏜 탄환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김성일/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가상인터뷰,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중) 이 공간처럼 사회적 실존이 숨막히는 상황이라면, 시인의 절규에 충분히 공감이 된다.

'장면 6'(바로 위 사진)은 기무사 옛건물 기둥의 흔적이 보이는 자리이다. "쇼베의 동굴 안 아무도 갈 수 없는 깊은 곳에는 소년의 발자국과 늑대의 발자국이 나란히 각인되어 있습니다. 둘은 나란히 걷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늑대가 소년을 잡아먹으러 뒤쫓았던 걸까요? 아니면 둘 사이에는 수천 년의 시간이 가로놓여 있는 걸까요? 우리는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베르너 헤어초크, <잊혀진 꿈의="" 동굴="">) 기무사터의 흔적은 마치 늑대의 발자국을 떠오르게 한다.

'Ob.scene' 작품은 도입부인 장면 1-3번만 느껴 봐도 다음 장면은 어떤 내용일까 기대하게 된다. '장면 5' 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를 다룬 '쇼아' 대사를 배치했다. "희생자들은 가스가 사장 많은 곳이 어딘지 알고 있었던 거죠. 가스 투사구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빈공간이었습니다."

마크 로스코의 예술 에세이 중 "한 줌의 침묵", 보들레르의 시 "항구" 등이 배치된 장면들은 직접 감상하기 바란다.

이번 전시에서 건축을 전공한 미디어 아티스트 김희천은 서울관을 핸드폰 거치대로 설정하여 스케일(Scale) 게임을 시도하는 영상 설치 작업 <요람에서>를 선보인다. 그리고 오픈하우스서울 축제를 기획해온 오픈하우스서울(임진영, 염상훈, 성주은, 김형진, 최진이) 팀은 서울관 주변의 보이드를 탐색하는 연구조사 프로젝트와 답사 프로그램 <보이드 폼,="" 보이드="" 커넥션="">을 선보인다. 건축가 최춘웅의 <실종된 x를="" 찾습니다="">는 서울관을 중심으로 한국 건축 속에 출현하는 보이드 공간들의 역사와 유형을 탐구하는 아카이브와 강연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이 다채롭게 진행된다.10월 26일(수)에는 ‘문화가 있는 날’ 행사의 일환으로 <보이드>전 참여 작가 라운드 토크가 서울관 멀티프로젝트홀에서 진행된다. 참여 작가 최춘웅이 연출하는 한국 현대 건축사를 은유하는 주제 낭독극 <건축극장 x="">가 10월 15일(토), 11월 5일(토), 12월 3일(토)에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전시실 7에서 진행된다. 오픈하우스서울의 <보이드 커넥션="" +="" 옥상달빛="" 페스티벌="">이 10월 26일(수)부터 10월 30일(일)까지 5일 동안 개최된다. 12월 7일(수)에는 <보이드>전 큐레이터 토크가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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