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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 시집 '북촌' …그곳에 이사해 2년 생활 시로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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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 시인의 신작 시집 '북촌'은 열네 번째 시집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이 시집에 실린 70편의 시들은 오로지 ‘북촌의, 북촌을 위한, 북촌에 의한’ 것이다. 그녀는 두 해 전 가을 북촌으로 이사했다.

누우면 “발 닿고 머리 닿는/ 봉숭아 씨만 한 방”으로 이사한 첫 밤에 그녀는 새 노트를 펴고 ‘북촌’이라고 썼고, 그것이 이 시집의 시작이 되었다. 그날부터 계동의 골목을, 가회동의 소나무길을 걸으며, 북촌이 가진 역사와 문화와 삶을 가까이 보면서, 한 편 한 편 시를 써나갔다. 그곳의 삶 그 무엇 하나 그녀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 없었다. 북촌에 사는 내내 “온몸의 살과 뼈 피까지 옹골지게도 앓”으며 “누가 맘먹고 호미로 온몸을 조근조근 찢어 대는” 것처럼 아팠지만, 북촌을 써야 한다는 의욕으로 통증을 견디어 냈다. 그런 절실함으로 써낸 이 시집에는 “지상에서 가장 애틋한 언어”이자 “혀가 잘려도 해야 할 말”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녀의 한옥이 얼마나 작으냐 하면, 집은 앵두만 하고, 도토리만 하고, 할아버지 노방저고리 단추만 하고, 외할머니 은가락지만 하고, 대문은 명함 한 장만 하고, 밤톨만 하고, 닭벼슬만 하고, 입술연지만 하고, 마당은 앞니만 하고, 화투장만 하고, 강아지 혓바닥만 하고, 코스모스 두 잎 같고, 방은 봉숭아 씨만 하고, 구절초 한 잎 같고, 참새 눈알만 하고, 새 발자국만 하고, 탱자알만 하고, 열쇠 구멍보다 작다. 그녀는 이렇게 작은 집에서 “쌀 한 톨만 한 하루”를 보낸다. “딱 명함 한 장만 한 대문 위에” 내걸린 ‘공일당(空日當)’이라는 문패에서, 다 비우겠다는, 그래서 새로이 채우겠다는, 비움이 곧 채움이라는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더 낮게 더 낮게” “알몸 알마음으로 흐르”겠다는 다짐이다.

혼잣말로 “한지가 너덜너덜 찢어”지고, 눈물 콧물로 벽지가 흉하게 얼룩질 만큼 외로워 “홀로/ 파르르 떤다”. 혼자 사는 두려움에 한옥 섬돌 위에 남자 군용 신발 하나 놓아두었다가 “아침 문 열다가 내가 더 놀라/ 누구지?/ 더 오싹 외로움이 밀려”온다. “한옥 창 열고 먼 곳에/ 불 켜진 창 하나 본다// 저 창 안에 누가 사나?// 더 높은 곳에서 보면/ 나의 창도 아름다울까/ 지상에 가까스로 핀 별꽃처럼/ 아득하게 나도 그리움이 될까” 사무치는 그리움에 “몸을 돌돌 말아/ 뒹굴어 본다”. “물컹한 외로움을 억지로 꿀꺽하는 서러움”을 느끼며 “붉은 고추 널어놓은/ 옆집 한옥 마당에/ 나도 누워 뒹굴면/ 온몸 배어나는 설움 마를까” 생각한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간밤 내 대문 앞을 지나가는 사람의 한숨/ 빈 주머니를 툭툭 털다 간 사람들의 흔적/ 끝내 손을 놓은 연인들의 아쉬움”을 빗자루로 쓸어 낸다.

“가난하지만 온몸을 녹여 주는 목욕탕”이 사라지고, “철물점이 사라진다네 딱하게 보이는 이발소도 곧 사라진다네/ 약국도 사라지고 없네/ 위태로운 세탁소는 그저 고마운 것”일 만큼 “계동 골목까지 쳐들어오는 개발 붐”에 몸살을 앓고 있는 북촌에서, “구두 수선 아저씨 신문 배달 학생 참기름집 아줌마 철물절 아줌마”처럼 “낮을수록 사연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녀의 일상이 바뀌기 시작한다. 창으로 스미는 햇살 그림자, 푸릇한 새벽빛, 한옥의 순수한 나무 향, 처마 밑에 꽃피는 빗소리, 흐드러지게 부르는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골목골목에서 만나는 근대사의 유적과 인물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골목으로 들어서 골목으로 돌아돌아/ 다시 골목으로 이어지는” “골목골목이 소곤거리고 계단마다 반짝거리는 햇살”이 부서지는 북촌에서 그녀는 “열 평만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북촌이 다 내 것”이라는 충만함을 느낀다. 그녀는 북촌을 “고향 품” 같고 “엄마 품” 같다고, “내 생의 중심”이자 “내 혼의 종착지”이자 “내 생의 출발 지점”이라고 노래한다.

“느리게 느리게 북촌을 걸으며 되돌아서서/ 걸어온 내 생을” 바라보며, “지난 시간들을 어루만진다”. 그러다 “노후의 계단을/ 시큼하게 본다”. “강을 천 개나 건너”고 “넘치는 생의 해일이” 몇 번이고 그녀를 쓸어 넘어뜨린 고된 삶이었지만, “출렁 철렁/ 그 비릿한 것들/ 질퍽거리던 것들 다 어디 가” 버리고, 지금은 눈물마저 “빈 젖”처럼 “바짝 마른 멸치같이” 말라 버렸지만, “내 몸에/ 어린 발바닥 꼼지락거림이 아직 남아” 있음을 느낀다.

“극세공의 필치로 쓴 역사가 있고/ 핏줄을 뽑아 그린 화가의 그림이 있고/ 목숨으로 지킨 나라 사랑이 곳곳에 보일” “단 한마디 아름다움이란 말 놓칠 수 없는/ 북촌”은 “이 골목 저 골목이 모두 역사의 현장”이며, “북촌의 어느 땅이건 다 성지다”. “일제 시대가 흐르고/ 한국 전쟁이 흐르고 새마을 운동 산업화 시대가 흐르고/ 알파고 시대”가 흐르는, “지금도 스치면 불붙는” 뜨거운 피가 흐르는 곳이다. 가장 오래된 것과 가장 새로운 것이 섞여 있는 곳, 북촌. “고요를 만지다가 더 큰 고요로/ 나직하게 침묵의 길을 걸으면서”, “이 집 처마와/ 저 집 처마가/ 닭 벼슬 부딪치듯/ 사랑싸움을 하”는 사람 냄새 풍기는 북촌. “누구라도 아늑하게 마음을 담는”, “누구라도 의지하고 말 터놓고 싶은”, “내 몸보다 더 편안한 곳” 북촌을 노래한 이 시집에서 우리는 “어디라도 손 내밀면 누구라도 만날 수 있는/ 따뜻한 길이 열리는 시간”을 만난다.

북촌은 “구부러지고 휘어지고 절룩이고 삐뚤어지고 입 돌아간 병신들/ 못나고 무식하고 가난하고 마음조차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안아 주고 보듬어 주는 사랑의 피가 도는 곳”이자 “믿음의 꽃 역사의 나무가 출렁이는 기적의 땅”이다. “오늘도 배회하고 헤매고 그리운 것 찾다 지쳐 찾아오는 사람”을 “두 팔 벌려 우리를 기다리는 품이 넉넉한” 곳이 북촌이다. “깨진 마음의 정강이”를 “호오오오 호오오오 불어 주던” “외할머니 그 따뜻한 입김”처럼 “옛다 다 나았다 다시 호오오오 해 주면/ 아픔은 온 적 없이 사라지”는 그곳이 바로 북촌이다.

“나의 대표작은 오늘 밤에 쓰는 시”라고 말하는 그녀는 “온몸을 웃으며 행복해”하며 오늘 밤도 북촌을 시로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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