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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 늑장공시, 제도 헛점 탓?...."제도보다는 사람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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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공시항목을 늘리기 보다는 포괄주의체제로의 변화 촉진시켜야"

 

한미약품 공시사태와 관련해 기업공시제도에 헛점이 있어서 사태가 발생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금융당국이 기업공시제도의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기업공시제도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개선해야 한다면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 조명한다.

기업공시는 증권의 발행, 유통과 관련해 상장기업이 투자판단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다.

이번 한미약품의 공시는 한국거래소에서 운영하는 공시제도의 적용을 받는다..

거래소에서는 공시목적과 강제성 여부 등에 따라 수시공시와 자율공시, 조회공시 등을 운영 중이다.

수시공시는 상장기업이 주가 등에 큰 영향을 주는 주요경영사항에 대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공시다.

자율공시는 의무공시항목 외에 기업이 스스로 판단하여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항목을 공시하는 것이다.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수시공시에는 지난 5월부터 단계적 포괄주의가 도입돼 시행 중이다.

상장기업이 그 사유가 발생하면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하는 53개의 의무공시항목을 열거한 뒤 그 이외에도 기업이 판단해서 주가나 투자자의 투자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정보에 대해 공시해야 하도록 돼 있다.

금융당국과 거래소는 2018년에는 의무공시항목을 아예 없애고 개별기업별로 중요정보 여부를 결정해 공시하도록 하는 완전 포괄주의 공시체계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한미약품이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기술 수출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는 정보는 53개의 의무공시항목에는 없는 것이지만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공시에 해당된다.

지난해 7월 베링거인겔하임과 기술 수출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 공시로 나갔는데 이것은 거래소 공시규정 시행세칙(제8조)의 ‘기술도입, 이전, 제휴’에 해당돼 기업의 판단에 따라 안해도 되는 자율공시 대상이다.

하지만 이 공시가 이미 나간 상태에서 그 계약이 해지됐다는 정보는 공시규정 45조에 의한 ‘기공시의 변동사항’으로 주가에 영향을 미칠 중대한 정보이므로 반드시 공시를 해야 하는 의무공시 대상이 된다.

의무공시라고 해서 모두 공시사유가 발생한 당일에 공시하도록 돼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성에 따라 사유발생 다음날까지 공시하도록 규정돼 있는 것도 있다.

자율공시는 모두 사유발생 다음날까지 하도록 돼 있다.

이번 한미약품의 수출계약 해지건도 의무공시지만 다음날까지 하면 된다.

이 점에서 한미약품이 수출계약해지 공시를 다음날 장중에 한 것이 공시규정을 위반한 것이 아닌 것이다.

이번 사태 발생 이후 수출계약 해지가 의무공시 대상이 아니고 그래서 한미약품이 당일 공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일각의 지적은 사실과 다른 셈이다.

그러면 앞으로 수출계약 해지를 사유발생 당일 공시하도록 하면 이번과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까.

만약 그랬더라면 적어도 이번 한미약품 공시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미약품이 수출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것이 9월 29일 저녁 7시 6분이었고, 당일 공시를 하도록 돼 있다면 이 때는 공시시스템이 가동을 안하는 시간이어서 공시규정 시행세칙에 따라 ‘그 다음날의 장 개시 전 시간외시장 개시 10분전’인 30일 오전 7시 20분까지는 공시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공시가 이뤄졌다면 30일 장이 열렸을 때 투자자들이 수출계약해지 정보를 모르고 그 전의 호재성 정보를 따라 높은 가격에 한미약품 주식을 사는 사태는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번과는 달리 수출계약해지가 아침 일찍이나 장중에 통보됐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 경우 당일에 공시해야 한다면 공시시스템이 가동되는 오후 6시까지 공시해야 하는데 그 사이에 이번 의혹에서처럼 내부 정보가 유출된다면 마찬가지로 내부자거래에 의한 불공정거래가 발생하게 된다.

거래소 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공시 시한을 당일로 하느냐 그 다음날로 하느냐가 아니라 해당기업이 중요 정보가 공시 전에 외부로 누설되거나 유포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제도가 아니라 기업의 행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시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면 현재 금융당국과 거래소가 추진중인 포괄주의체제로의 변화를 촉진시키는 쪽으로 가야한다.

수시공시에서 현재 53개 의무공시항목을 열거한 뒤 그 밖의 중요정보도 상장기업이 공시하도록 하는 현행 공시시스템에서는 꼭 지켜야 하는 것이 53개 의무공시항목이다.

이 시스템에서는 이번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의무공시항목을 더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그 때마다 의무공시항목을 늘리게 되면 그것이 지금보다 두배, 세배 늘게 돼 그만큼 더 복잡해 지고 지키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공시제도를 열거주의에서 포괄주의로 전환하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포괄적 공시제도의 본래 취지에 따라 상장기업이 판단해서 투자에 미치는 영향이 큰 중요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고 53개 의무공시항목은 예시로 제시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공시 시한과 관련해서도 어떤 항목은 당일, 어떤 항목은 다음날로 정하면서 복잡하게 만든 것은 포괄적 공시제도 취지에 맞지 않는다..

사유가 발생하면 외국의 경우와 같이 기업이 판단해서 지체없이, 적시에(timely) 하도록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은 기업이 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회사 내부 정보 가운데 어떤 정보가 투자자에게 중요한 정보이고, 투자자 보호를 위해 어느 시점에 공시하는 것이 가장 좋은 지는 해당기업이 가장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방향으로의 개선은 기업을, 투자자보호를 위한 공시의 책임있는 주체로 성장시키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잘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공시에 대한 상장기업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투자자가 잘못된 공시로 손해를 봤을 때 소송 등을 통해 쉽게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도록 소송환경도 함께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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