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故 백남기 농민. (사진=자료사진)
앞으로 집회·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물대포 사용이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와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경찰 물대포에 물을 공급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이 '여론 정치'라고 반발하는 데다, 물대포 필요성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려 실제 물 공급 중단이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와 서울시는 5일 경찰 물대포를 위한 물 공급 중단을 위한 실무회의를 진행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날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소화전에서 쓰는 물은 화재 진압을 위해 쓰는 것"이라면서 "시위 진압을 위해 물을 쓰게 하는 것은 용납하기 힘들다"고 발언한 데 따른 조치다.
서울시 관계자는 "경찰에 소방용수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법리해석을 하고 있다"면서 "실무적인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등은 오는 7일 2차 실무 회의를 열고, 구체적인 물 공급 중단 방안을 도출해낸다는 계획이다.
소방기본법에 따르면 소방용수시설은 정해진 산불이나 자연재해 외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경찰이 집회·시위 진압을 위해 소화전을 사용해도 된다는 조항은 없다.
하지만 경찰은 서울시 관할인 종로소방서에 소화전 사용협조 공문을 보내 '회신'을 받은 뒤 물을 사용해왔다. 경찰 자체 물차가 있지만 용량이 부족한 탓이다.
서울시가 소화전 사용을 금지하게 되면 경찰은 물대포 사용을 사실상 못하게 된다.
이 때문에 경찰은 서울시 측의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물대포는 세계 각국의 경찰이 집회·시위 현장 진압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면서 "물대포 자체를 무력화하겠다는 것은 정치적인 발상이지 현실과 동떨어진다"고 말했다.
경찰 내부에선 집회·시위 현장에서 경찰 병력과 시위 참석자들 간 이격거리를 확보하는 유일한 수단인 물대포 사용을 막으면 물리적 충돌로 인한 인명피해가 더 많아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집회·시위 현장에서 시위자들과 경찰 병력의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효과적인 수단은 물대포밖에 없다"면서 "물대포를 못 쓰면 불법 집회 진압할 때 물리적인 충돌은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물대포 사용 후 현장에서 인명 피해가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물대포를 도입한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현장에서 부상을 당한 경찰 수는 283명으로 도입 전인 지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614명에 비해 급감했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참가자 중 부상을 당한 통계를 집계한 것은 없지만 경찰과 비례해 감소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서울시 측이 물 공급 중단 조치를 마련하는 것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남대 탁종연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서울시가 경찰에 물을 공급해야 하는 의무는 없다"면서 "시의 자산인 물이 시민의 안전을 침해하는 데 사용된다면 금지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동국대 곽대경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 입장에선 물대포 이외에 집회·시위 현장에서 과격한 참가자를 막을 대안이 없다"면서 "골치 아프다고 원천 금지하는 것은 서울시의 성급한 판단"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