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로몬] 여당 대표의 '단식'이 안타까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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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로몬은 쓸모있는 것만을 '즐겨찾기' 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신조어' 입니다. 풍부한 맥락과 깊이있는 뉴스를 공유할게요. '쓸모 없는 뉴스'는 가라! [편집자 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를 촉구하며 닷새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단식중입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김재수 장관 해임 건의안이 통과되자 이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곡기를 끊고 있습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데, 정 의장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대표는 "장난이나 쇼(SHOW)로 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기에, 자칫 단식이 길어질까 걱정입니다.

정치인의 단식은 뉴스에 보도되는 탓에 많은 사람들이 알게되지만, 사실 단식을 가장 많이 하면서도 알려지지 않는 사람은 역시 종교인입니다.

종교인들의 단식은 보통 참회의 뜻으로, 정치인들의 그것과는 다른 성격임에 분명합니다.

3일 단식, 1주일 단식도 있지만 '40일 단식'을 하는 종교인들도 많습니다.

'40일 단식'을 하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그만큼 목숨을 건 '참회'의 뜻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이 대표의 단식이 안타까운 이유는 단식이란 것 자체가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인데 준비가 많이 부족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나흘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지난달 29일, 정진석 원내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이 대표는 단식 4일차였던 지난달 29일 "몸은 좀 괜찮냐"는 주위의 질문에 뒷 목을 만지면서 "여기가 많이 땡겨. 어질어질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28일에 BJC토론회에 참석한 것을 언급하면서 "당도 떨어지고 해서 좀 힘들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어머니는 내가 매일 전화하면 엉엉 우신다. 그렇게 우셔"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단식에 들어갈 때는 미리 계획을 철저히 세우고 식사량 조절 등 식이요법을 한 뒤 들어가야 몸에 무리가 가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단식 1일차, 3일차, 1주일차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꼼꼼한 시뮬레이션이 필요합니다.

특히 단식이 끝났을 때, 음식에 대한 욕심을 자제할 수 있도록 주위에서 세심히 관리를 해줘야 합니다. 종교인들이 40일 금식 기도를 마치고 난 뒤, 음식에 대한 욕구를 자제하지 못해 탈이 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 이유입니다.

다시 정치인들의 단식으로 들어가볼까요?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유명한 단식은 198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주회복, 정치복원, 직선제 개헌 등을 요구하며 23일 동안 식음을 전폐한 것입니다.

그 결과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가택연금은 풀렸고, 민주화 운동 진영을 하나로 묶어냈습니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0년년 13일간의 단식을 통해 내각제 포기, 지방자치제 도입 등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야당을 이끌었던 두 전직 대통령의 단식은 명분도 있었고 실리도 있었습니다.

명분과 실리가 약한데다 이정현 대표의 단식은 헌정사상 첫 여당 대표의 단식이라는 점에서 안타깝습니다.

오죽하면 여당 대표가 단식을 했겠느냐는 동정론이 생길 수도 있지만 여론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김재수 장관 해임 건의안 통과를 보면서 여소야대 국회의 힘을 재확인한 뒤 괜한 '기(氣)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여당도 정권 재창출을 위해 지금부터 '세(勢) 결속'에 나선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는데, 이정현 대표의 단식중에 '국감 보이콧'은 풀어야한다는 당내 목소리가 터져나와 이마저도 모양새가 구겨졌습니다.

항간에 '박 적 박(朴敵朴)'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은 예전에 정치인 박근혜가 했던 말로 반박이 가능하다는 얘기였습니다.

'원칙과 신뢰'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대통령으로선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친박 실세여서 그랬을까요? 이정현 대표도 '이 적 이(李敵李)'를 재연했습니다.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이 대표는 지난 2014년 10월 31일 열린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선거제도가 정착된 나라들 중에서 단식투쟁을 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는 나라는 아마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이라고 말한 적 이 있습니다.

이 대표는 이어 "여기에서부터 바로 우리 국회의원의 특권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라며 단식투쟁도 의원의 핵심 특권으로 봤습니다.

자승자박인 셈이어서 안타깝습니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지난달 28일 BJC토론회에서 자신의 단식 이유에 대해 "이렇게 비상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상황이 지금 국회에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항변했습니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란 말과 뭐가 다른가요?

지난 2014년 서울 광화문광장 농성장에서 단식을 이어간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그리고 단식은 당 대표실에서 몰래 하는 것이 아니기에 안타깝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뜨거운 여름 광화문 천막 농성장에서 고통을 참아가며 했던 단식을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찌는 듯이 무더웠던 여름도 다 지나가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데 무엇이 두려웠을까요?

그러면서 사람들이 단식의 진정성을 의심할까봐 당 대표실 문은 조금 열어뒀다고 전해집니다. 정치를 이렇게도 '희화화'하는 단식이 대명천지에 어디 있었는 지 되묻고 싶을 정도입니다.

끝으로 청와대 비선실세 의혹, 사드 배치, 지진 대책, 故백남기 씨 부검영장 발부 등 해결해야 일들이 산적한데도 대표실 벽에 기대 누운 채 '나 몰라라'라 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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