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총파업 총력투쟁 결의대회’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황진환기자
정부와 노동계가 '강대강'으로 부딪히며 출구가 보이지 않던 성과연봉제 파업 사태가 정부 주장에 힘이 빠지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서울시가 파업 사흘만에 노사 합의를 이끌어낸 데 이어 중노위마저 정부의 불법 파업 논리에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 '서울시는 달랐다' 파업 첫 합의… 정부 파업 조정 리더십에는 상처그동안 정부는 이번 파업 사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유지해왔다.
최정호 국토부 제2차관은 지난 29일 오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철도노조는 정당성 없는 불법 파업을 3일째 계속하고 있다"며 "정당성과 명분 없는 불법 파업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할 것"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바로 같은 날 정부로서는 의외의 '악재(惡材)'가 잇따라 터져 나오면서 파업 사태의 주도권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우선 서울시 지방공기업 노사가 성과연봉제 관련 집단교섭에서 이번 파업 사태에서 첫 합의를 이뤄냈다
특히 합의안에는 핵심 쟁점인 성과연봉제를 노사 합의로 도입 여부를 결정하고, '성과퇴출제' 우려를 불렀던 성과와 고용 연계 제도는 도입하지 않기로 하는 등 노조 측의 주장이 대폭 수용됐다.
정부로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리더십에 밀리는 장면을 만들어 체면을 구겼을 뿐 아니라, '선(先) 성과연봉제 도입 후(後) 부작용 해결'이라는 기존 방침도 힘을 잃게 됐다.
◇ 정부 '불법 파업' 주장에 중노위 '아닌데요'… 자가당착 빠진 정부정부가 주장하던 불법 파업 논리 역시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중노위 조정 결과에 따라 노조가 파업 대신 법원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며 불법 파업이라고 강조해왔지만, 정작 중노위가 이를 정면 반박했기 때문이다.
노동부 고영선 차관은 지난 27일 기자회견에서 철도노조 파업을 놓고 "(이번 파업은) 이익분쟁이 아니라 권리분쟁이다. 따라서 법원에 가서 판단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중노위가) 판단을 내렸다"며 "노조는 사측과 논의하지 않고 파업에 들어갔기 때문에, 파업의 정당한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파업 사태에서 불법 파업 여부를 가를 핵심은 공공·금융 부문 노조의 파업이 이익분쟁이냐, 권리분쟁이냐 여부에 달려있다.
노조는 성과연봉제가 임금체계 개편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익분쟁'이며, 이에 따라 중노위를 통해 조정정지 결정을 받은 뒤 쟁의권을 확보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정부가 주장하는 '권리분쟁'은 민사소송이나 행정구제의 대상이어서 노조 쟁의가 아닌 법정 소송으로 해결할 문제다. 따라서 이번 파업도 불법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정작 중노위 측은 국정감사에서 정부 주장과 달리 권리 분쟁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지난 29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석인 중노위원장 직무를 대행하고 있는 이재흥 중앙노동위원회 사무처장은 정의당 이정미 의원의 관련 질의에 대해 "(철도노조 파업도) 정당한 조정 대상이었고 마찬가지로 조정을 종료했다"고 답했다.
만약 정부 주장대로 이번 사태가 권리분쟁이라면 애초에 중노위는 조정 종료 대신 행정지도를 해야 한다. 중노위가 조정신청을 받아들인 것 자체가 이익분쟁으로 해석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정부는 엉뚱하게도 이미 이익분쟁으로 해석한 결과인 중노위의 조정안에서 권리분쟁의 근거를 찾는 모순을 벌인 셈이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조정안에 '개정한 보수규정의 효력 유무에 대해서는 사법적 판단에 따른다'는 문구가 있다"고 해명했지만, 중노위 관계자는 "이번 파업이 절차상 문제가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 파업 핵심 철도노조 기관사 파업 유지… '정부도 별 도리 없을 것' 자신이런 가운데 노조는 파업 인원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어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개천절 연휴를 넘겨 다음 주까지도 흔들림 없이 파업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다.
특히 이번 파업의 핵심 동력인 철도노조 기관사들의 경우 90% 이상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만큼, 일부 사업장 노조가 먼저 교섭에 성공하더라도 성과연봉제 확대를 막아낼 때까지 총파업을 유지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대부분의 파업이 노조가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의 싸움으로, 특히 철도노조 파업은 사태가 오래 갈수록 정부에게 불리하다. '산업의 젖줄'인 철도를 세울 수 없지만, 대체인력의 숙련도가 낮기 때문에 열차를 장기간 정상 운행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노조가 이번 개천절 연휴 무렵에 파업 대오를 풀고 나온다면 정부로서는 큰 부담을 덜어낼 수 있지만, 만약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대체인력의 피로가 극에 달하면서 노조가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한 철도노조 관계자는 "코레일이 최근 노조 간부 100명을 직위해제했지만, 파업 시작부터 충분히 각오했던 수준"이라며 "합법 파업을 펼치는 노조를 상대로는 노조 본부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간부를 구속하는 등 기존 탄압 수법을 펼칠 수도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