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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이 다른 그녀, 오피녀의 불온한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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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소설 '스칼렛 오아라'

 

여기 한 '오피녀'가 있다. 오피스텔에서 성매매를 하는 여자를 줄여서 부르는 말인 저 노골적인 단어는 이제 뉴스나 인터넷 매체뿐만 아니라 소설 속에도 등장하게 되었다.

이승민 장편소설 '스칼렛 오아라'의 주인공인 오아라가 그렇다. 그녀는 신춘문예로 갓 등단한 이십대 후반의 가난한 무명작가로 미모와 필력을 겸비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청담파라곤에 살며 가로수길과 한남동이 라이프스타일의 중심이 되는, 그토록 좋아하는 명품을 마음껏 소비하며 연예인에 버금가는 샐러브리티가 되는 것. 오아라는 우울하거나 답답할 때마다 청담동 명품 편집숍인 마인더숍을 내 집처럼 들락거리며 샤넬과 디올의 드레스, 다미아니와 반클리프 아펠의 하이 주얼리, 해리 윈스턴의 시계, 크리스찬 루부탱의 구두와 지방시의 백을 감상하며 속삭인다.

"널 소유하지 못해도 허탈하지 않다. 난 지금 널 보며 성찰하고 있거든. 널 성찰의 대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작가가 됐거든." 그러나 현실은 짜증나도록 욱신거릴 뿐 항상 제자리걸음이다. 그리하여 오아라는 과외하는 학생의 아버지이자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 원장인 김중권을 유혹하기로 하고, 당장 돈을 벌기 위해 오피스걸이 되기로 결심한다.

어느덧 그녀의 주변에 있는 남자는 넷. 코스프레 페티쉬가 있는 남자 A, 마조히즘의 성적 취향을 가진 남자 B, 사모님들로부터 스폰을 받아 생활하는 동갑내기 노아, 이혼 후 오아라와의 소박한 생활을 꿈꾸는 KY성형외과 대표원장 김중권이다.

오아라는 낮에는 글을 쓰거나 구상을 하고, 밤에는 스칼렛이 되어 여러 명의 남자들을 상대하는 이중생활을 이어나간다. 정신과 육체는 갈수록 힘들어져 가지만 오아라는 참고 견딘다. 스칼렛이 열심히 돈을 벌어야 오아라가 밥을 먹고 글을 쓸 수 있으니까. 그러던 중 온갖 럭셔리 브랜드 광고가 다 들어간다는 <더 피플="">지로부터 화보성 인터뷰 제안을 받고, 명품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 작가로 발탁되는데……. 과연 오아라는 작가와 창녀라는 두 얼굴을 끝까지 숨길 수 있을까?

마가렛 미첼의 장편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모티브로 삼은 '스칼렛 오아라'는 각자의 착한 욕망 혹은 나쁜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드라마다. 사소하든 무겁든 욕망은 인간을 움직이게 만들고, 인간을 욕망하게 만드는 에너지는 언제나 현실로부터 온다. 부족하거나 부재하거나 불편하거나 불만이어서 생성되는 백인백색의 욕망은 두 가지로 나뉜다. 착하거나 또는 나쁘거나. '가난한 소설가는 디올백을 사랑하면 안 되나요?'라고 묻는 오아라의 말 속에는 과연 착한 욕망이 담긴 것일까, 나쁜 욕망이 담긴 것일까.

인간은 욕망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불온한 욕망일지라도 그것에 흔들리는 오아라의 모습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책 속으로

필사적으로 믿음의 대상을 찾으면 찾을수록 삶은 열심히 비아냥거리며 오아라를 희망의 경계선 밖으로 밀어내거나 무릎 꿇렸다. 마인더숍에서 봤던 벤틀리의 뒷모습, 훔치고 싶은 디올 백, 청담 파라곤의 웅장한 정문, 김중권의 BMW 가죽 시트, 겐조 옴므의 향기, 로열 코펜하겐 찻잔. 오아라는 자신에게 진정한 믿음과 희망을 심어주는 대상들을 머릿속으로 나열하다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속물……. 한데 속물이 뭐 어때서.
-33쪽

오아라는 생각했다. 뭔가 이대로는 안 된다고. 더 이상 이대로는 삶을 지속시킬 수 없다고. 무심코 주머니에 넣었던 오아라의 손에 사각의 빳빳한 종이가 딸려 나왔다. KY성형외과 대표원장 김중권. 오아라는 복화술 하는 사람처럼 명함에 적힌 글자를 소리 없이 따라 읽었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삶이 이래서는.
-36쪽

기꺼이, 행복하게, 나를 가두라. 그리고 나의 것이 되어라. 나를 너의 것으로 만들라. 더 격렬히, 아낌없이. 오아라는 주술사처럼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76쪽

가난한 작가가 오피스걸이 된다는 설정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흥미로울 듯했다. 다만 이것이 세상을 향한 커밍아웃이 되지 않을까 일말의 염려가 앞섰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곧 작품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니 그것은 독이 든 성잔이 될 것이다. 독배는 받고, 마시지만 않으면 될 일이다. 그것이 독배란 것만 경계한다면.
-207쪽

오랜 샤워를 마친 후 공들여 메이크업을 하고 돌체앤가바나 원피스로 갈아입은 그녀는 디올라마 백을 꺼내 들고 발렌시아가 선글라스를 착용한 후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집을 나섰다. 택시를 잡아탄 오아라는 서울 시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호텔에서 내렸다. 엘리베이터로 가는 동안 몇몇의 남자들이 선글라스를 낀 채 로비를 가로지르는 오아라를 흘끗거리며 지나갔다. 10층으로 올라간 오아라는 복도 끝 1021호를 찾아 문 앞에 섰다.
-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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