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郡守): 군의 행정을 맡아보는 으뜸 직위에 있는 사람.대한민국에는 현재 총 82명의 군수가 있습니다. 군수는 지역사회에서의 막강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민의 관심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업무추진비로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는지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군수는 업무추진비를 어떤 용도로 사용하고 있을까요? CBS 노컷뉴스는 지난 2개월 동안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2014년 7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전국에 있는 81명(경남 산청군 제외 : 산청군은 유일하게 정보공개를 거부했습니다.)의 업무추진비 세부 내용을 확보해, 분석했습니다.
◇ 17,911,838,446원
5만 5153건 사용, 총 179억 1183만 원. 지난 23개월 동안 81명(경남 산청군 허기도 군수는 업무추진비 상세내용 공개 거부)의 군수가 쓴 업무추진비의 총 사용 건수와 금액 합계입니다. 결제 1건당 평균 약 32만 원, 군수 1인당 평균 2억 2113만 원을 쓴 셈입니다.
전국에서 군수 업무추진비로 4억 원 이상 집행한 곳은 3곳. 업무추진비를 가장 많이 쓴 곳은 전남 고흥군(박병종 군수)으로 23개월 동안 약 4억 4082만 원을 사용했습니다. 전체 평균보다 2배 정도 많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강원 정선군(전정환 군수)이 약 4억 3331만 원, 전남 완도군(신우철 군수)이 약 4억 103만 원을 사용했습니다.
3억 원 ~ 4억 원을 사용한 군은 전남 강진군(강진원 군수), 전북 부안군(김종규 군수)을 포함해 15곳이 있었습니다. 2억 원 ~ 3억 원은 전북 완주군(박성일 군수), 전남 화순군(구충곤 군수)을 포함해 28곳, 1억 원 ~ 2억 원은 전북 임실군(심민 군수), 전남 구례군(서기동 군수)을 포함해 30 군데였습니다.
23개월 동안 군수 업무추진비 사용 금액이 1억 원 미만인 군도 5곳 있었는데요. 부산 기장군(오규석 군수)은 군수의 업무추진비로 81명의 군수 중 가장 적은 금액인 2862만 원을 사용했습니다. 이어 충남 금산군(박동철 군수) 6329만 원, 충북 보은군(정상혁 군수) 6463만 원, 경기 양평군(김선교 군수) 8708만 원, 인천 강화군(이상복 군수) 9344만 원 순으로 업무추진비 사용 금액이 적었습니다.
◇ 업무 추진비 = 접대 추진비
그런데 막상 자료를 받고보니 81곳의 군에서 공개한 군수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용은 부실하기만 했습니다. 군수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날짜, 사용, 장소, 인원, 목적 등을 완벽하게 공개한 군은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대다수 군에서는 자신들이 관리하기 편한 대로 내용을 써넣었고 상세 내용도 표시하지 않았는데요. 경남 산청군의 경우 담당자와 수차례 통화하며 상세 내용을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해당 군수와 상의 끝에 공개하지 않겠다고 답변했습니다.
따라서 경남 산청군을 제외한 81명의 군수, 5만 5153건의 업무추진비 상세 내역 중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주요 키워드를 통해서 그 실태를 파악해 보았습니다(일부 키워드는 금액 중복).
81명 군수들의 업무추진비 중 가장 많이 보였던 항목은 바로 '밥값'이었습니다. 군수들은 업무추진비에서 '급식' 또는 '식사'의 명목으로 최소 39억에 가까운 돈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다수 군에서 사용처, 인원, 목적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전국 농어촌 군수협의회 참여자 오찬」 564만 원
「OO군의회 정례회 협조자 간담 급식」 552만 원
「도시군청 합동토론회 만찬 급식」 467만 원...
또한 키워드 검색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바로 '특산품' 또는 '특산물' 구매였습니다. 거의 모든 군수가 지역 특산품이나 특산물을 구매해 방문객, 공무원, 기자 및 방송관계자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전체 금액과 비교하면 약 20%에 해당하는 수치였습니다.
특산품 접대에 1건당 적게는 1만원에서부터 많게는 900만 원이 넘는 금액이 쓰였는데요. 횟수, 액수, 용도만 따져 봐도 문제의 소지가 컸습니다.
「군정발전사업 추진 홍보용 지역특산물 구입」 957만 원
「전국 OOOOO 촬영 홍보용 농특산물 구입 제공」 510만 원
「군정현안사업 관계자 홍보용 지역특산품 구입」 473만 원…
그렇다면 특산품이나 특산물을 선물로 주고 식사를 접대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홍보’ 때문이었습니다. 81곳 모두 군 자체를 홍보하거나 군에서 추진하는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선물, 식사 등을 명목으로 업무추진비를 집행했는데요. ‘홍보’ 키워드로 사용된 금액은 24억 1736만 원, 전체의 13%에 해당하는 수치였습니다.
전라남도 완도군(신우철 군수)은 건별 내용을 상세하기 공개하지 않은 채 ‘홍보’와 관련된 내용에만 2억 3765만 원을 사용했습니다. 특히 전남 고흥군(박병종 군수)의 경우 지역 홍보 차원에서 「중앙 기자단 및 배급사 스텝 특산품 구입」 350만 원, 「영화 흥행성공 기원제 참석 영화팀 기념품」 210만 원, 「영화촬영 종료에 따른 배우 및 스텝 격려품」 200만 원 등 영화와 관련된 업무에 적지않은 비용을 집행했습니다.
「군정홍보용 기념품 제작 구입」 1100만 원
「군정발전사업 추진 홍보용」 957만 원
「시책 또는 지역홍보」 528만 원...
또한 81명의 군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항목이 바로 '경조사비' 지출이었습니다. 결혼이나 장례에 지출한 경조사비는 최소 3억 5092만 원 이상 될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그중에서도 소속직원 경조사비 지출로 대구 달성군(김문오 군수)은 1610만 원, 충남 예산군(황선봉 군수)은 1230만 원을 사용했습니다. 심지어 충남 태안군(한상기 군수)은 소속직원뿐만 아니라 업무 유관기관 직원, 군정 협조자, 언론사 기자 등에도 군수 업무추진비로 경조사비를 지출했습니다. 경조사비뿐만 아니라 경조사에 사용된 화분(축하 또는 조의)에도 상당한 금액이 지출됐는데요. 인천 옹진군(조윤길 군수)은 축하 난 또는 화분 구매에만 총 700만을 쓰기도 했습니다.
◇ 접대받기 좋아하는, 누구냐? 넌!
그렇다면 178억에 달하는 업무추진비가 주로 누구에게 사용됐을까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접대 대상자는 바로 기자, 방송사 관계자였습니다. 대부분 군에서 '언론' 또는 '방송 관계자'에게 식사, 특산품, 기념품 등의 항목으로 지출이 됐습니다. 총액은 약 5억 3589만 원이었습니다.
「언론 관계자 특산물 또는 기념품 제공」 1105만 원
「언론 관계자 제공 지역 홍보용 특산품 구입 제공」 428만 원
「언론인 방송인 제공 홍보 특산물 구입」 202만 원...
왜 이들이 문제가 될까요? 등 횟수나 액수가 지나치게 많았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군에서는 주재 기자에게 식비 또는 특산품 제공 명목으로 지속해서 업무추진비를 사용했습니다. 또한 방송사나 신문사에 인사 개념으로 수많은 접대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언론관계자 간담회」 88만 원
「DDD 신문사 방문 관련」 48만 원
「FFF 사장 접견에 따른 홍보용 농특산물」 27만 원...
여기에 인터뷰나 촬영이 진행되면 그 관계자에 또다시 업무추진비가 사용되었는데요. 한눈에 보아도 ‘홍보’와 ‘업무’란 명목으로 많은 금액이 집행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AAA 촬영 관련」 280만 원
「BBB 촬영진 급식 및 특산품」 168만 원
「XXX 현장인터뷰에 따른 방송관계자 격려품」 60만 원...
언론사 중에서도 전국네트워크를 가진 'KBS'와 'MBC' 키워드를 입력해 본 결과 키워드별로 각각 4621만 원과 1640만 원이 잡혔습니다. 신문사의 경우 '일보'나 '신문' 키워드를 입력했더니 1906만 원의 금액이 사용된 것으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업무추진비 사용 내용 중 방송사나 언론사의 명칭을 밝힌 사례가 드물어서 실제로 사용된 금액은 더욱 많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공무원도 업무추진비 접대의 혜택을 받았습니다. '홍보', '군 사업', '군 예산', 등으로 국회의원, 군 의원, 중앙부처 공무원, 기타 공무원 등에 다양한 접대가 있었는데요. 소속기관 공무원의 경우 경조사비뿐만 아니라 해외연수, 격려금, 식사 등의 명목으로 업무추진비가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들 공무원에게 투입된 금액만 하더라도 최소 10억 원 이상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공모사업 예산확보 및 소통행정 위한 전북도 방문에 따른 지역특산품 구입」 425만 원
「국가예산 확보관련 중앙부처 방문에 따른 지역특산품 구입」 320만 원
「공무원노조 연금결의대회 참가 격려금 지급」 220만 원
「국가예산 확보 추진을 위한 중앙부처 관계자 간담」 195만 원….
전북 부안군(김종규 군수)은 '국가예산확보' 명목으로 공무원 등에게 식사, 선물 등을 제공하며 총 2억 4593만 원을 집행했고 전남 완도군(신우철 군수)도 '소속 상근직원 격려' 건으로 총 6367만 원을 지출했습니다.
강원 화천군(최문순 군수)과 강원 정선군(전정환 군수)은 각각 「이임유관기관장 격려물품 구입」, 「XXX 부군수 이임 기념품 구입」으로 117만 원, 105만 원을 지출했습니다.
지난 23개월 동안 업무추진비를 가장 많이 쓴 곳은 전남 고흥군(박병종 군수)으로 4억 4082만 원을 지출했고 반대로 가장 적게 쓴 곳은 부산 기장군(오규석 군수)이 2862만 원을 썼다고 앞서 얘기했는데요. 약 15배가량 차이, 이유는 뭘까요?
업무추진비 사용이 많았던 전남 고흥군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고흥군청 관계자 : 고흥군은 상대적으로 지역이 낙후돼 있어서 이를 돌파하기 위해 최근 투자유치, 업무협약, 홍보 등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주산업과 관련된 사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업무추진비는 예산 범위 내에서 사용했고 투명하게 사용했습니다.
고흥군의 답변에 따르면 군수의 업무추진비를 예산 범위 내에서 문제없이 사용했다는 것이었는데요. 실제로 고흥군이 제출한 업무추진비 사용 내용은 다른 군에 비해 비교적 상세하게 표시돼 있었습니다. 다만 사용 장소, 사용 인원은 공개하지 않았지만요.
그렇다면 오히려 업무추진비를 적게 쓰고 있는 기장군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관련 내용을 물어보았는데요. 역시 정답이 있었습니다.
오규석 기장군수: 업무를 추진하고 지역 주민과 소통하는데 굳이 비싼 밥을 자주, 많이 먹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사용 목적이 불분명한 자리에서는 그냥 사비로 쓰는 게 마음이 편했습니다.
기장군 관계자에 따르면 오 군수는 식사도 대부분 구내식당을 이용할 정도로 업무추진비를 아꼈는데요. 기장군은 군수의 업무추진비 예산을 아껴 관내에 있는 고등학교에 무상급식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기장군의 사례만 보더라도 군수의 업무추진비는 군수의 의지로 충분히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요. 업무추진비로 수억 원을 쓰는 군수들이 보고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 이제는 브레이크가 필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회원들이 김영란법 무력화시키는 기준완화 시도 중단 촉구 기자회견 중 김영란법으로 부정부패 근절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 = 박종민기자
군수가 쓸 수 있는 업무추진비는 예산과 지역 등급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연간 2억 원~2억 5,000만 원 정도 됩니다. 군수의 연봉 역시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략 9,000만 원~1억 원 정도 됩니다. 여기에 추가로 예산편성 및 내용 증빙 없이 월급에 함께 지급되는 직책급업무추진비가 연 800만 원~900만 원 정도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사용한 업무추진비 내용은 개인정보를 제외하고 모두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민의 알 권리와 예산이 사적인 용도로 쓰이거나 낭비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데요. 지난 5월 청주지법에서도 이와 같은 취지로 이필용 음성군수가 사용한 업무추진비의 상세내용 공개를 결정한 바 있습니다.
CBS노컷뉴스는 지난 6월부터 총 82곳의 군에 정보공개청구 신청을 통해 업무추진비 자료를 신청했습니다. 이중 절반가량은 이미 홈페이지에 군수업무추진비를 공개해 놓았지만 세부 내역, 사용 장소, 사용 인원, 동행자 등을 대부분 밝히지 않아 군수가 어떻게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습니다. 담당 공무원과 수십 차례 통화 끝에 받은 자료 역시 대부분의 상세내역은 감춰져 있었습니다. 심지어 경남 산청군(허기도 군수)은 상세내용 공개가 원칙임에도 82개 군 중 유일하게 세부내역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전해왔습니다.
이처럼 군수의 업무추진비는 국민들의 관심이 덜 하다는 이유로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접대'와 '홍보' 명목으로 상세 내용도 철저히 가려져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직원의 경조사비나 모호한 접대는 군수 업무추진비가 아니고 월별로 월급처럼 지급되는 직책급업무추진비에서 지출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군수는 직책급업무추진비를 월급으로 생각하고 공적인 업무추진비를 주머니속의 '쌈짓돈' 마냥 마음껏 쓰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2016년 9월 28일부터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됩니다. 대한민국에 뿌리 깊게 잘못 자리 잡고 있는 '접대'와 '청탁' 문화를 개선하기 위함인데요. 군수 업무추진비 역시 투명하고 적재적소에 씌여져야합니다. 군수들이 앞으로 어떻게 업무추진비를 사용하는지 여러분도 꼭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군수들의 업무추진비와 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인터랙티브 기사 우측 상단에 '제보/문의'를 클릭해 주십시오.
[군수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사이트 보기]*자료 = 2014년 7월~2016년 5월까지 군수 업무추진비 사용 상세내용. 해당 군청 제공
*비고 = 경남 산청군 허기도 군수는 업무추진비 상세내역 공개를 거부해 통계에서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