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겼다' 정영식이 18일(한국 시간) 리우데자네이루 파빌리온 경기장에서 펼쳐진 남자 탁구 단체 동메달 결정전 1단식에서 독일 바스티안 슈테거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뒤 포효하고 있다.(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하늘이 허락한 것은 첫판 대역전 드라마까지였다. 행운을 안겼지만 메달까지는 주지 않았다.
한국 탁구가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더불어 남자 탁구의 3회 연속 올림픽 단체전 메달도 무산됐다. 맏형 주세혁(36 · 삼성생명)과 이상수(26 · 삼성생명)에 막내 정영식(24 · 미래에셋대우)이 뭉쳤지만 아쉽게 1승이 모자랐다.
안재형 감독, 이철승 코치가 이끄는 남자 대표팀은 18일(한국 시각) 브라질 리우센트루 3관에서 열린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단체전 3, 4위 결정전에서 독일에 1-3 패배를 안았다. 목표했던 메달이 다른 선수들의 목에 걸렸다.
2008 베이징 동메달, 2012 런던 대회 은메달의 기운을 잇지 못했다. 단체전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베이징 대회 이후 첫 단체전 메달 무산이다.
특히 한국 탁구는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탁구가 올림픽에 합류한 1988년 서울 대회 유남규(남자 단식), 현정화-양영자(여자 복식), 2004년 아테네 대회 유승민(남자 단식)의 금메달 등 한국 탁구는 역대 올림픽에서 금 3개, 은 3개, 동 12개를 따냈다. 19번째 메달이 리우에서는 추가되지 못했다.
▲정영식, 벼랑에서 얻은 '행운의 에지볼'출발은 좋았다. 대표팀은 첫 주자 정영식이 극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기세를 올렸다. 세계 12위 정영식은 24위 바스티안 슈테거에 패배 직전까지 몰렸다가 기사회생하는 짜릿한 드라마를 연출했다. 이번 대회 단식 우승자인 세계 1위 마룽과 런던 대회 챔피언이자 4위 장지커(이상 중국)와 호각의 대결로 얻은 경험에 행운까지 따른 대역전극이었다.
특히 운명의 5세트가 압권이었다. 벼랑에 몰린 위기에서도 굴하지 않고 추격을 펼친 정영식에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어울렸다. 운이 따른 점수를 바탕으로 감격적은 승리를 일궈냈다.
1, 3세트를 따낸 정영식은 2, 4세트를 내주는 등 4세트까지 2-2(12-10 6-11 11-6 6-11) 힘겨운 경기를 펼쳤다. 특히 4세트 무려 26번과 27번이나 드라이브와 수비가 오가는 숨막히는 랠리 끝에 실점해 분위기를 완전히 내줬다. 슈테거는 하위 랭커지만 다양한 변칙 서브와 끈질긴 수비로 정영식을 괴롭혔다.
5세트에도 정영식은 작전 타임을 한번씩 주고받은 승부처에서 밀렸다. 6-7로 뒤져 먼저 작전 타임을 불러 역전에 성공했으나 슈테거도 작전 타임 뒤 재역전했다. 8-9로 뒤진 가운데 정영식은 통한의 드라이브 실책을 범하며 8-10, 벼랑에 몰렸다.
1점만 내주면 1경기를 내줄 위기. 그러나 정영식은 포기하지 않고 드라이브 랠리를 이겨내 1점 차까지 따라붙었다. "반드시 메달을 따내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던 의지의 스매싱이었다.
'감사합니다' 정영식이 18일(한국 시각) 리우데자네이루 파빌리온 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탁구 단체 동메달 결정전 1단식에서 극적으로 독일 바스티안 슈테거를 누른 뒤 바닥에 누워 환호하고 있다.(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러자 하늘이 도왔다. 9-10으로 뒤진 가운데 정영식은 슈테거와 숨가쁜 랠리를 펼쳤다. 팽팽한 승부에 힘이 들어갔는지 정영식의 공격이 살짝 길게 뻗었다. 나가면 그대로 경기가 끝나는 상황. 그러나 공은 탁구대 끝을 살짝 스치고 떨어졌다. 에지볼 득점이 인정돼 승부는 연장으로 갔다.
슈테거는 맥이 풀렸다. 그러나 정영식은 침착했다. 상대에게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들뜬 마음을 다스렸다. "마룽과 경기 때 흥분해서 졌다"며 눈물을 한바탕 쏟았던 정영식이었다. 이후 정영식은 11-11에서 잇따라 강력한 드라이브로 슈테거를 제압하며 대역전극에 마침표를 찍었다. 13-11 승리가 결정되자 정영식은 바닥에 누워 두 손을 뻗고 포효했다.
▲가장 중요한 복식에서 무너진 韓 탁구정영식이 기선을 제압한 것은 컸다. 계획대로 3복식 이전에 1승을 따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팽팽한 시소에서 가장 중요했던 복식에서 승부가 기울었다.
당초 이철승 코치는 현지 시각으로 전날 중국과 4강전 뒤 동메달 결정전에 대해 "첫 단식 두 경기에서 1승1패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승부처를 짚었다. 이 코치는 "가장 중요한 세 번째 복식 경기 이전 앞선 단식에서 1승1패만 하면 2승1패로 앞서갈 수 있다"면서 "그러면 4, 5단식은 무조건 두 팀의 상하위 랭커가 엇갈려 맞붙게 돼서 1승1패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대진이 중요했다. 이 코치는 "그래서 정영식을 앞에 넣을지, 뒤로 뺄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에이스 정영식은 이상수와 함께 복식에도 나서는 까닭에 단식은 1경기만 나설 수 있다. 한국 선수 중 가장 높은 랭킹인 에이스 정영식을 어떻게 쓰느냐가 변수였다.
대표팀은 과감하게 정영식을 1번 주자로 투입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맏형이자 '깎신' 주세혁(14위)이 2단식에서 상대 에이스이자 세계 6위 드미트리 오브차로프에 아쉽게 풀 세트 끝에 2-3으로 졌지만 계획대로 1승1패를 이뤘다.
정영식(왼쪽), 이상수가 18일(한국 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리우센트루 파빌리온3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탁구 남자 단체전 동메달 결정전에서 독일과 복식 경기를 내준 뒤 아쉬워하고 있다.(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복식에서 뼈아픈 역전패를 안았다. 정영식과 이상수(16위)가 짝을 이뤄 나섰지만 올림픽 5회 출전의 백전노장 티모 볼(13위)과 슈테거가 나선 독일에 덜미를 잡혔다.
먼저 첫 세트를 따낸 정영식-이상수는 이후 내리 두 세트를 뺏겼다. 4세트를 극적으로 따낸 둘은 마지막 5세트 5-8까지 뒤졌지만 볼의 잇딴 범실 등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이어 정영식이 날린 회심의 드라이브를 슈테거가 받지 못해 역전까지 이뤘다.
하지만 승부처 집중력에서 밀렸다. 9-8로 앞선 상황에서 동점을 허용했고, 이상수가 상대 공격을 받지 못하면서 패배 위기에 몰렸다. 이후 랠리 끝에 볼의 강력한 드라이브가 이상수의 라켓을 맞고 튀면서 승부가 결정됐다. 2승1패의 예상이 1승2패로 바뀐 순간이었다.
'노장의 마지막 투혼' 주세혁이18일(한국 시각) 브라질 바하 리우센트로 파빌리온에서 열린 남자탁구 단체전 동메달 결정전에서 특유의 커트로 수비하고 있다.(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승부의 추가 기울자 만회하기 어려웠다. 벼랑에 몰린 대표팀은 주세혁이 4단식 주자로 나섰다.
맏형 주세혁은 볼과 베테랑 대결에서 마지막 투혼을 펼쳤으나 0-3 패배를 안았다. 2004 아테네와 2012 런던 대회에 나선 노장의 마지막 올림픽 경기였다. 후배들에게 메달을 선물해 유종의 미를 장식하려던 맏형의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마지막 5단식 경기는 열리지 못했다. 3복식을 지면서 사실상 무산된 메달이었다. 리우의 하늘은 끝내 한국 탁구에 메달을 허락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