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짜 챔피언이야' 15일(한국 시각) 브라질 바하 리우데자네이루의 카리오카 아레나 2에서 열린 '2016 리우 올림픽' 남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kg급 시상식에서 석연찮은 판정으로 금메달을 차지한 러시아에 로만 블라소프가 동메달을 차지한 김현우에게 미안한듯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4년 동안 그날만을 기다렸습니다. 역사적인 날 자랑스럽게 태극기를 휘날리며 71번째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품어왔던 꿈은 일본이 아닌 러시아의 압제에 산산이 흩어졌습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값진 메달을 따내 태극기를 펼쳤지만 그토록 고대하던 결승전 승리 세리머니는 아쉽게도 아니었습니다.
한국 레슬링 간판 김현우(28 · 삼성생명)는 15일(한국 시각) 브라질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2에서 열린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kg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크로아티아의 보조 스타르세비치에 6-4로 역전승했습니다. 지난 2012 런던 대회 66kg급 금메달까지 2회 연속 메달을 수확해낸 겁니다.
경기 후 김현우는 태극기를 매트 위에 깔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큰절을 했습니다. 자랑스러운 조국의 광복절에 바치는 영광스러운 세리머니였습니다.
그리고 흐느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어깨가 들썩였습니다. 지구 반대편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미안함, 4년 동안의 피땀 흘린 혹독한 훈련에 대한 서러움이 한순간에 북받쳐 올랐을 겁니다.
사실 김현우의 세리머니는 당연히 금메달 뒤에 나왔어야 할 순서였습니다. 그러나 세계레슬링계를 주무르는 러시아의 힘에 희생양이 돼야 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오심에 결승 진출의 기회가 날아간 겁니다.
김현우가 15일(한국 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2에서 열린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kg급에서 크로아티아 보조 스타세비치를 누르고 동메달을 따냈다. 김현우 선수 경기가 끝난 뒤 태극기 위해서 큰절을 한 뒤 흐느끼고 있다.(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16강전에서 김현우는 로만 블라소프(러시아)와 만났습니다. 우승후보끼리의 격돌. 그러나 편파 판정에 김현우는 위기에 몰렸습니다. 스탠딩 상황에서 점수를 따내고도 패시브(이른바 빠떼루)를 받아 4점을 허용했습니다. 패시브는 소극적인 경기를 한 선수에게 주는 벌칙인데 김현우는 적극 공세로 점수를 얻었음에도 받았습니다.
정말 억울한 것은 빼앗긴 점수였습니다. 3-6으로 뒤진 경기 종료 3초 전 김현우는 회심의 가로들기를 성공시켰습니다. 완전히 블라소프를 들어 메쳤습니다. 완벽한 4점짜리 기술로 대역전극을 이루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입니까? 심판은 겨우 2점만 인정했습니다. 안한봉 감독이 요청한 비디오 판독에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안 감독은 매트 위로 뛰어가 항의하다 박치호 코치와 함께 레드 카드까지 받아 이후 경기장에 앉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처했습니다.
안 감독은 매트 위에 무릎을 꿇은 채 오열했고, 김현우는 침통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빠져나가야 했습니다. 71년 전 광복이 되기까지 일제 강점기의 대한민국 국민들과 같은 심경이었을 겁니다. 그때는 나라를 뺏겼지만 지금 김현우는 점수를 뺏겼습니다.
세계레슬링계는 '아라사(俄羅斯)'가 쥐고 흔드는 시쳇말로 '아사리판'(무질서한 상태)입니다. (아라사는 러시아의 한자 음역어로 일제 강점기 등 예전에 사용했던 용어입니다. 아관파천(俄館播遷)의 아관도 러시아 공사관을 일컫는 말이죠.)
김현우가 14일(현지 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2에서 열린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kg급 16강전에서 러시아 로만 블라소프에게 편파판정으로 패, 안한봉 감독이 믿들 수 없는 듯 눈물을 흘리고 있다.(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현재 세계레슬링연맹(UWW)은 세르비아 출신 네나드 라로비치 회장과 러시아 출신 실무부회장 등이 실세입니다. 심판 40명 중 25명이 구 소련계라고 합니다. 박 코치는 "김현우 경기의 심판도 조지아 출신인데 이런 심판들이 예전 선수 시절에는 소련 국적이었다"면서 "심판이 경기 승패의 50% 이상을 결정짓는다"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블라소프를 금메달리스트로 만들기 위한 억지 작업이었습니다. 안 감독은 "전 세계 선수와 지도자, 심판 부위원장까지 와서 4점짜리 기술이었다고 하더라"면서 "그런데 심판위원장은 나중에 함께 비디오로 경기를 돌려보면서 '팔이 닿아 있었다'는 애매한 답을 내놓더라"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결국 블라소프는 각본대로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준결승에서도 상대 조르기에 기절을 했음에도 지지 않고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기절해서 얻은 기적이라고 할까요. 명백한 오심의 향연 속에 얻은 금메달이었습니다.
김현우는 그럼에도 불굴의 투혼을 보였습니다. 16강전 패배에 자칫 좌절할 수 있었지만 안 감독과 함께 부둥켜안고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 뒤 다시 일어섰습니다. 김현우는 "경기에서 져서 죄송하다"고 했고, 안 감독은 "내가 힘이 없어 더 미안하다"고 사제가 서로를 감쌌습니다. 안 감독은 "이렇게 해서 메달을 못 따면 정말 바보가 된다"면서 "끝까지 싸워 유종의 미를 거두자"고 김현우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결국 김현우는 패자부활전을 통해 동메달 결정전에 진출했고, 스타르세비치에 역전승을 거뒀습니다. 특히 1회전에서 상대 옆굴리기를 버텼던 오른 팔꿈치에 입은 부상에도 얻은 승리였습니다. 김현우는 2회전에서도 2-4로 뒤졌지만 허리 태클과 가로들기로 기어이 역전승을 일궈냈습니다.
'그 아픈 팔로...' 김현우가 15일(한국 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2에서 열린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kg급에서 크로아티아 보조 스타세비치를 누르고 동메달을 따냈다. 김현우 선수 경기가 득점에 성공하고 있다.(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동메달 확정 뒤 태극기 큰절 세리머니를 펼친 김현우는 오른 팔꿈치를 부여잡은 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들어섰습니다. 취재진에 대한 첫 마디가 "인터뷰 좀 빨리 해야겠어요. 얼음을 대야겠어요"였습니다. 참았던 고통이 경기와 세리머니 후 한꺼번에 몰려온 것이었습니다. 김현우는 "팔꿈치가 탈골됐다가 들어온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안 감독은 "아마 인대가 파열, 손상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어 "다른 선수 같으면 포기했을 테지만 현우라서 아픈 팔로 역전승을 이뤄냈다"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김현우는 "아팠지만 무조건 이기자 정신력으로 버티자는 생각이었다"고 아직도 고통스러운 얼굴이었습니다.
그러나 김현우는 쿨하게 결과를 받아들였습니다. 16강전 오심에 대해 "지나간 일이라 생각하고 싶지 않다"면서 "어차피 지나간 일"이라고 넘겼습니다. 또 블라소프의 금메달에 대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면서 "내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웠습니다.
하지만 못 다한 금메달 태극기 세리머니, 특히 광복절에 국민들께 하고 싶었던 큰절은 깊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김현우는 "내 경기 날짜가 광복절인 것을 알고 태극기 세리머니를 준비했다"면서 "광복절인데 금메달을 따서 태극기 휘날리는 꿈을 4년 동안 준비했는데 못한 게 너무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금메달 때 하고 싶었는데...' 15일(한국 시각) 브라질 바하 리우데자네이루의 카리오카 아레나 2에서 열린 '2016 리우 올림픽' 남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kg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김현우가 승리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한(恨)이 맺혔습니다. 김현우는 경기 후 태극기에 쏟은 눈물에 대해 "뭔가 한이, 4년 동안 준비한 것들이 생각나면서 너무 아쉬웠다"면서 "기대하고 있을 가족과 국민들께서 많이 응원해주셨는데 보답을 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의미를 밝혔습니다. 나라를 뺏긴 그 시절 우리 국민들의 한이 그랬을까요?
김현우는 비록 결승은 아니었지만 태극기 세리머니를 펼쳤습니다. 자랑스러운 대한의 건아는 "그래도 값진 동메달을 따내 기쁘게 생각한다"고 애써 위로했습니다. 이번에는 더욱 의미가 있는 4년 뒤 도쿄올림픽을 바라봅니다. 김현우는 "돌아가서 부족한 부분을 더 집중적으로 훈련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다짐이 김현우를 더욱 고귀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라사의 압제에도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선 김현우. 그가 펼친 태극기 큰절 세리머니는 71년 전 밟혀도 밟혀도 굴하지 않고 마침내 빛을 되찾은 한국 민족의 정신이 오롯이 담긴 귀한 장면이었습니다.
러시아에 금메달을 내줬을지언정 끝까지 공정하게 최선을 다하는 올림픽 정신까지 구현한 김현우는 진정한 챔피언이었습니다. 진정한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겼던 김현우의 고절한 세리머니였습니다.
'부여잡은 오른팔' 김현우가 15일(한국 시각)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75kg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승리한 뒤 오른 팔꿈치를 부여잡고 믹스트존에 들어선 모습(왼쪽). 얼음찜질을 해야 해 1분여만 진행된 인터뷰라 급하게 사진을 찍느라 초점이 나갔다. 오른쪽은 시상식 뒤 인터뷰 모습. 여전히 오른팔을 부여잡고 있다.(리우=노컷뉴스)
p.s-아라사, 아사리판에서 키운 더러운 금메달은 너희가 가져가라. 시궁창에서도 피어난 고결한 정신만큼은 우리가 가져간다.
너희는 약물에 찌들어서라도 금메달을 갈취하려는 민족이 아니었더냐. 금지약물도 국가적으로 장려하는 마당에 심판 판정에 있어서랴. 2년 전 심판 갖고 장난질을 쳤던 부덕의 소치는 여전하구나. 이번에도 서슴지 않는구나.
너희가 자랑하는 '미녀새'는 "리우의 챔피언은 영원한 2등"이라더라. 그 말이 일견 맞다. 블라소프는 영원한 2등이다. 아니 틀린 말이다. 영원한 16강전 패배자다.
아라사, 아사리판에서 눈 가리고 아웅하느냐. 세계는 누가 진짜 챔피언인지 안다. 시상식 뒤 미안한 표정을 지은 블라소프도 알지 않더냐.
그러다 또 레슬링 퇴출당한다. 아, 그러면 우리 선수들이 올림픽에 못 나오는데…. 작작 좀 해라, 러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