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숨 작가의 의 아홉 번째 장편소설 '한 명'이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지난 30여 년간의 ‘위안부’ 문제를 이슈화하는 동시에 그간 한국문학이 잘 다루지 않았던 ‘위안부’ 문제를 본격적인 문학의 장으로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20만 명이 강제 동원되었고 그중 겨우 2만 명만이 살아 돌아온 위안부의 존재는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시작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238명의 위안부 피해자가 공식적으로 등록이 되었으며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은 반세기 동안 감춰져 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세상에 드러나게 한 촉매가 되었다. 그 뒤 전국의 위안부 생존자들이 침묵을 깨고 연달아 고백을 쏟아내면서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의 청산할 쟁점으로 부상되었다.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의 증언, 기억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2016년 현재, 그분들 중 40명만이 생존해 있을 뿐이다.
‘피해를 증언할 수 있는 할머니들이 아무도 남아 계시지 않는 시기가 올 것이므로 소설을 통해 그런 점에 경각심을 가지게 하고 싶고, 그것이 문학의 도리라 생각한다’며 집필 동기를 밝힌 작가는 300여 개에 이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실제 증언들을 재구성하여 다큐멘터리에 가까울 정도로 치밀한 서사를 완성시켰다. 리얼리티를 극대화시킨 소설은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했던 독자들에게 역사의 잔혹성과 내상을 고스란히 실감하게 만든다.
아울러 이 소설은 ‘일본군 위안부’라는 고통스러운 경험과 사건이 주는 충격과 함께 살아남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녀들의 ‘그 이후의 삶’까지도 조명한다. “인간으로서 기품과 위엄, 용기를 잃지 않은 피해자들을 볼 때마다 감탄하고는 한다”고 말하는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역사가 지워버린 과거를 복원해내며 다시는 반복되어서도, 잊혀서도 안 될 기억의 역사로 확고히 자리 잡게 한다.
시간이 흘러 생존한 위안부 피해자가 단 한 명뿐인 어느 날을 시점으로 한 이 소설 '한 명'은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밝히지 않고 살아온 어느 '한 명'의 위안부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80여 년 전 열세 살 소녀였던 그녀는 마을 강가에서 다슬기를 잡다 난데없이 나타난 사내들에게 잡혀 만주로 끌려간다. 그날 이후, 강제로 끌려온 다른 소녀들과 함께 일본군에 의해 육신을 난도당하는 성적 학대와 고문을 당한다.
생사를 넘나드는 참혹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그녀는 아픈 기억을 영원히 짊어진 채 고향으로 되돌아오지만 더 이상 그녀를 기다리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끔찍한 트라우마는 그녀에게 수치감과 모욕감만을 남겼고, 이미 죽은 자로서 긴 세월 자기 자신의 정체성마저도 잊은 채 숨죽이고 살아가게 한다. 자신의 과거가 사람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하며 형제들까지도 피해 홀로 힘겹게 살던 그녀는 조카의 부탁으로 재개발 예정 구역에 기거하며 이름도 없는 삶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티브이를 통해 공식적인 위안부 피해자가 한 명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그녀는 이제야말로 세상에 혼자 남는다는 두려움을 느끼며 지금껏 숨겨왔던 자신의 존재를 밝혀야겠다는 용단을 내린다. 마침내 닫혔던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은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그녀는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사경을 헤매는 마지막 위안부 생존자를 만나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가는 길 위에서 그녀는 삼인칭으로만 존재해온 '한 명'에서 마침내 "풍길"이라는 열세 살 때 지녔던 제 이름을 찾게 된다. 그녀가 마지막 생존자를 만나러 가는 길은 그동안 자신을 놓아주지 않던 과거와의 만남이자 그 시절로 돌아가 위안소에서 희생된 그 모든 ‘한 명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그녀가 비로소 이름을 지니게 되고 지금까지 존재해온 이유에 답하는 순간이자 진정한 새로운 좌표를 찾게 되는 순간이다.
해설 중에서 한 개인의 내적인 삶, 그것은 그의 전부다. 죽지 않는 한, 죽어서 내면이 사라져버리지 않는 한, 인간의 내면은 그 어떤 무자비한 역사도 훼손시킬 수 없다.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신체가 훼손되는 고통을 겪어도 그 고통이 각인된 인간의 내면은 남는다. 내면 때문에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 역사가 남긴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겠지만, 인간이 세계와 맞설 수 있는 힘 또한 개인의 고유 영역인 바로 그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기억은 오로지 개인만이 소유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지우고 부정하려는 역사 속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것으로 지니고 있었던 것 역시 기억이다. 그 보이지 않던 기억이 어느 순간 육신의 입을 빌려 말하기 시작한다. 여기 ‘한 명’이 있다고,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한 명’이 살아 있는 한, 위안부들의 역사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라고…….
― 박혜경(문학평론가)
작가의 말위안부는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물론, 한국 여성의 역사에 있어서도 가장 끔찍하고 황당한, 또한 치욕스러운 트라우마일 것이다.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은 그 자체로 트라우마’라고 프리모 레비는 말했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을 시작으로, 피해자들의 증언이 지금까지 어어져오고 있다. 그 증언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소설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 그 와중에 한국과 일본 양 정부는 ‘사실 인정과 진정한 사과’라는 절차를 무시하고, 피해자들을 저 멀찍이 구경꾼의 자리에 위치시킨 채 일방적인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10억 엔 정도의 지원금을 출연할 테니,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암묵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피해자 중 한 분인 훈 할머니 말씀처럼 “개나 고양이만도 못한” 시절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 기품과 위엄, 용기를 잃지 않은 피해자들을 볼 때마다 나는 감탄하고는 한다. 내 할머니이기도 한 피해자들이 행복하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부족한 소설을 세상에 내보낸다.
책 속으로“군인 백 명을 상대할 자가 누구인가?”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군인 백 명을 상대합니까.”
작지만 야무지던 석순 언니가 따지고 들자, 중대장이 병사들을 시켜 석순 언니를 앞으로 끌어냈다.
“반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겠다.”
군인들은 닭 껍질을 벗기듯 석순 언니의 몸에서 옷을 벗겼다. 석순 언니의 몸은 깡말라 사내아이의 몸 같았다. 겁에 질린 소녀들은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소녀들을 한 명 한 명 씹어먹을 듯 바라보는 중대장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그녀는 얼른 고개를 떨어뜨렸다. 막사 뒤에서 수십 개의 못을 동시에 박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녀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곧 끔찍한 일이 벌어지리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18쪽)
위안소에 있을 때 그녀는 몸뚱이가 하나인 것이 가장 원망스러웠다. 하나인 몸뚱이를 두고 스무 명이, 서른 명이 진딧물처럼 달려들었다.
하나인 그 몸뚱이도 그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자신의 것이 아니던 몸뚱이를 부려 그녀는 이제껏 살아왔다. (38쪽)
사람들은 그녀가 어디 가서 무슨 일을 당하고 왔는지 모른다.
어쩌다 보니 남의 집 식모로만 떠돌다 혼기를 놓친 줄로만 안다. 신세를 지는 것도 아닌데, 혼자 사는 그녀를 짐스러워하고 못마땅해하는 여동생들에게조차 그녀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남자라면 몸서리가 나서 싫다고. 소리 없는 총이 있으면 펑 쏴버리고 싶도록.
그녀는 누가 시집가라는 소리만 하면 두드려 패고 싶었다. (44-45쪽)
군인들이 다녀갈 때마다 그녀는 식칼로 아래를 포 뜨는 것 같았다. 군인이 열 명쯤 다녀가고 나면 포를 하도 떠 아래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아래는 무시로 바늘 들어갈 구멍도 없이 훌떡 뒤집어졌다.
소녀들은 자신들 몸에 다녀가는 군인들 명수로 일요일인지 알았다. 그곳에는 달력도 없어서 소녀들은 날짜도, 요일도 몰랐다. 모든 날들은, 모르는 날들이었다. 모르는 날들이 흘러가는 동안 소녀들은 폭삭 늙었다. (87쪽)
해방이 되고 소녀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더러는 일본 군인들을 따라가고, 더러는 중국에 남고, 더러는 국경을 넘다가 죽고. 하여간 죽는 게 여사였다.
누구누구가 살아서 돌아왔는지 궁금하면서도, 보고 싶어 죽겠어서 군자의 고향집까지 찾아갔으면서, 그녀는 혹시나 우연히 소녀들을 만날까봐 겁이 났다. 그래서 자신이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될까봐 전전긍긍했다. 길을 가다가도 누가 자신을 유심히 쳐다보는 것 같으면 얼른 골목으로 숨어버렸다. (99쪽)
누렇게 바랜 신문지 쪼가리 한 귀퉁이에는 강인한 인상의 여자 얼굴이 증명사진보다 조금 크게, 흑백으로 인쇄되어 있다.
그녀의 두 눈 초점이 여자의 얼굴에 모아진다. 김학순, 그 여자다. 수십 년 전 티브이 속에서 울던 여자.
김학순…… 그 여자가 어느 날 저녁에 티브이에 나와 막 울었다. 밥을 먹던 그녀도 밥알을 입에 문 채 울었다. 그 여자가 우는 것을 보니까 덩달아 그렇게 눈물이 났다.
그녀는 날짜도 잊히지 않는다. 1991년 8월 14일이었다. 늘 그렇듯 혼자 티브이를 보다가 자신과 똑같은 일을 당한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141쪽)
그녀도 따라서 고백하고 싶었다. 나도 피해자요, 하고. 그때마다 그녀는 가제손수건으로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았다.
‘나도 피해자다…… 나도 만주 하얼빈까지 끌려가 그 짓을 당했다…… 열세 살에 끌려가 그 짓을…… 애기였을 때 끌려가…….’
자매들을 만날 때마다 그 말이 목구멍을 타고 치밀어 올랐지만 꾹 삼켰다. (145쪽)
새삼스레 이 세상에 달랑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녀는 딸이 하나 있었으면 싶다.
부산에서 식모살이를 할 때 그녀를 쫓아다니던 총각이 있었다. 남자라면 몸서리가 쳐졌지만 자식을 낳을 수 있으면 그 남자와 살림이라는 걸 차려 남들처럼 살아보려고 산부인과에서 진찰을 받아보았다. 산부인과에서는 그녀에게 다른 소리는 하지 않고 자궁이 한쪽으로 돌아가서 애를 낳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자신이 만주라는 데를 다녀왔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어서 그녀는 총각 모르게 부산을 떠나왔다. (174쪽)
그녀는 늘 그렇듯 일어나자마자 티브이를 튼다. 다행히 한 명에 대한 소식은 없다. 한 명은 아직 살아 있다. 담요를 개키던 그녀는 깊은 숨을 토한다. 그이가 먼저 세상을 떠나든, 자신이 먼저 세상을 떠나든, 그 어딘가에 살아 있을지 모르는 어떤 이가 먼저 세상을 떠나든, 한 명도 살아 있지 않은 날이 머지 않았다는 걸 깨달아서다. (217쪽)
그녀는 한 명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여기 한 명이 더 있다는 걸 세상에 알려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증언이라는 걸 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왜 이러나 싶기도 하다. 여태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다가, 이리 숨겨놓고 저리 숨겨놓고 있다가. 이렇게 늙어가지고. 죽을 때가 돼가지고. (2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