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이어지는 기록적 폭염. 사상 최악의 무더위를 기록했던 지난 1994년에 비견될 정도로 올 여름 찜통더위가 기세를 떨치고 있다.
급기야 냉방수요가 몰린 8일 오후 3시 최고전력수요는 8370만 킬로와트(kW)까지 치솟아, 지난 1월 21일에 기록한 역대 최대전력수요 기록(8297만kW)을 경신했다.
이날 오후 2시15분 순간 최고전력수요가 8421만㎾까지 치솟아, 전력 예비율이 5.98%까지 떨어지져, 전력수급 비상경보 직전까지 가는 상황도 발생했다.
없으면 모르되 집 안에 있는 에어컨을 틀지 않을 수 없는 더위 속, 누진제 때문에 치솟는 전기요금 걱정도 함께 커져만 간다. 주부 조모(32)씨는 “에어컨 틀면 전기요금 걱정이 많이 된다”면서도 “아이들이 방학이어서 안틀 수도 없다”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현행 전기요금은 가정용의 경우 6개 구간으로 나눠 최대 11배 이상 전력요금 단가가 차이가 나도록 설계돼 있다. 전력사용량이 많아지면 전기요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구조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7월~9월) 동안 정부는 한시적으로 누진제 구간을 6개에서 5개로 줄여 요금을 인하한 적이 있다. 저유가로 인한 발전단가 하락분을 한시적이나마 가계에 돌려준다는 명분을 앞세웠다.
산업부는 지난 5월까지만 해도 올 여름에 또 다시 한시적이나마 누진제 완화를 검토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정작 여름이 되자 관계자들은 입을 다물었고 결국 없던 일이 됐다.
현행 법 체계상 요금체계를 바꾸려면 먼저 한전이 전기요금 약관 개정안을 만들고, 이를 산업부와 기획재정부가 협의해 승인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그런데 전력요금 체계를 담당하고 있는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현행 누진제를 바꾸는 것은 물론, 한시적으로도 완화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5일 국회 산업통상위원회에 출석한 우태희 산업부 2차관은 “현재로서 정부가 전기요금체계 개편을 검토하는 바는 없다”며, “누진제는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7차 전력수급계획상 전력수요를 14.3% 줄여야 하는 큰 과제가 있어서, 불편하다는 말은 듣고 있지만 현재 체제는 당분간 유지하도록 하겠다”고 아예 못을 박았다.
물가담당 부처로 민생을 챙겨야 할 기재부도 “산업부에서 협의 요청이 없었다”며 책임 떠밀기에만 급급할 뿐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물가를 관리하는 입장에서 누진제를 완화해 요금을 인하하겠다는 안은 인상안보다는 긍정적으로 검토가 가능하다”면서도 “산업부에서 누진제를 완화할 경우 저소득층에 미칠 영향 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산업부 쪽으로 공을 넘겼다.
이런 가운데 저유가와 함께 급증한 전력 수요가 겹치면서 한전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막대한 영업이익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전기요금 폭탄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소송은 갈수록 밀려들고,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누진제 개편 요구가 들끓고 있지만, 정작 정부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 채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