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설 '약속의 날', 서른 살 여성의 아름다운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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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지만 용기 있게 다시 디디보는 서른 살 펑란의 뜨거운 도움닫기의 기록

 

올해 서른여섯, 중국의 젊은 작가 신이우辛夷塢의 장편소설 '약속의 날應許之日'(2014)가 출간되었다. 중국의 젊은 세대 작가군을 대표하는 그녀는 청춘이 꿈꾸는 사랑과 지나온 기억들을 따뜻이 보듬어 안는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신이우의 소설이 중국 내에서 독자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공감을 받는 이유는 청춘을 ‘있는 그대로’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녀의 청춘 서사는 ‘현실성’과 ‘동시대성’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녀는 지나간 청춘을 미화하지도, 찬양하지도 않고 담담히 서술한다. 청춘을 회상하는 현재 시점에서도 현실은 과장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서사의 ‘현실성’은 지금 중국을 살아가는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공감의 끝에는 그렇게 청춘을 지나온 뒤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는 서사가 기다리고 있다.

나이 서른을 앞둔 펑란은 빠지지 않는 외모에, 잘나가는 회사도 다녀보았고 지금은 태국 음식점을 운영하며 명실상부 당당하고 독립적인 현대 여성의 삶을 몸소 실현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자던 남자친구가 문자메시지로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알려온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펑란의 레스토랑엔 알 수 없는 과거와 모종의 비밀에 둘러싸인 연하남 딩샤오예가 종업원으로 들어오고, 펑란은 대책 없이 그에게 빠져들면서 자신도 몰랐던 스스로의 모습과 맞닥뜨리기 시작한다.

펑란은 지금껏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여자였다. 연애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말다툼 끝에 험한 말이 나올라치면 ‘진정한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는 말로 사태를 매듭질 줄 아는 쿨한 여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딩샤오예 앞에선 제어가 되지 않는다. 특히 전 남자친구의 결혼식에서 한바탕 사건을 치른 뒤부터는 더욱 그렇다. 딩샤오예를 끌고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의 도움을 받아 전 남자친구를 옴팡지게 때려준 것! 술기운을 빌려 감행한 우발적인 복수이긴 했지만 펑란은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리는 해방감을 느꼈다. 그간 펑란이 쓰고 있던 ‘성숙한 어른’이라는 가면을 딩샤오예가 시원하게 벗겨주었던 것이다. 이 가면이 벗겨지자 펑란은 끌리는 대로 혹은 본능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본격적인 탐색과 적극적인 구애에 돌입한 펑란. 그를 향한 감정이 광활한 벌판을 떠도는 맹수가 갖고 있는 힘처럼 강렬하게 느껴진다. 한 입을 먹고 반해버린 카레 게 볶음을 물릴 때까지 먹고 다음부턴 먹지 않았던 경험을 살려 딩샤오예를 눈앞에 두고 오 분 동안 ‘굶주린 눈빛’으로 뚫어지게 쳐다보는가 하면 만원버스 안에서 먼저 입맞춤을 하는 등 다소 독특하고 서툰 방법으로 그에게 접근한다. 레스토랑의 여자 종업원을 ‘경쟁자’로 인식하고 그 사실에 치를 떠는 자신의 속물근성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종잡을 수 없이 튀어나오는 솔직하고 유치한 행동들이 낯선 동시에 좋다. 이렇게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원하는 사람이 마침내 나타났다는 사실이 반갑다.

펑란이 사랑했던 남자들 중 딩샤오예보다 못한 남자들이 있었던가? 어째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이렇게까지 할 수 없었던 걸까? 이제는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똑같이 사치스러운 선물을 해줘도 저우타오란은 부담스러워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뿐이지만, 딩샤오예는 당당하게 받으며 감정을 전혀 꾸며내지 않기 때문이다. 딩샤오예가 그렇게 ‘뻔뻔한’ 것은 가격표에 삼천 위안이 적힌 셔츠가 되었건 펑란의 가게가 되었건, 그 모든 것을 다만 한 여자의 가장 평범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펑란 방식의 사랑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었고, 그래서 펑란은 딩샤오예를 위해 이럴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본문 547~548쪽

펑란은 자신도 몰랐던 모습을 수면 위로 끌어낸 이 남자가 누구인지, 어떤 방법을 쓰고 있는지 곰곰 들여다본다. 상대를 기쁘게 해주려 사치스러운 선물을 주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뿐이지만, 딩샤오예는 감정을 전혀 꾸며내지 않았었다. 딩샤오예가 스스럼없이 값비싼 선물을 받았던 건, 그것을 한 여자의 가장 평범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펑란은 딩샤오예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설익은 사랑의 방식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다 느꼈고 기꺼이 그를 위해 자신을 내걸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진정한 적수는 하나뿐이다. 그건 바로 딩샤오예의 알 수 없는 ‘마음’이었다. 본문 362쪽

딩샤오예에게는 이런 펑란의 진심을 완벽히 껴안을 수 없는 사정이 있다. 딩샤오예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범죄 조직의 보스였던 아버지의 누명을 뒤집어쓴 도망자 신분이었다. ‘딩샤오예’라는 이름도 누군가의 신상을 가로챈 것일 뿐이었다. 딩샤오예는 자신의 신원이 발각되면 펑란이 상처를 입고 피해를 줄까 걱정하여 그녀를 멀리한다.

책 속으로

이별이란 넓고도 심오한 학문이라, 굳이 모든 것을 말로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병을 채 앓을 사이도 없이 죽어버리는 것 역시 사랑이 죽는 방식 중 하나이다. 10쪽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인 것이다. 14쪽

“자기 남자 챙기는 건 나무를 키우는 거랑 비슷하다고. 신경써서 물도 자주 주고 비료도 주고, 그래도 잘 못 자라면 가지치기도 하고 벌레도 잡아줘야 한다고……” 67쪽

내가 싱글이고 싶어서 싱글인 줄 알아? 내가 조건을 따지기를 했어? 난 그냥 나랑 잘 맞는 사람을 찾으려고 했던 것뿐이야. 근데 그 사람이 나랑 결혼하고 싶은지 아닌지는 그 사람 마음이잖아? 남의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내가 시간을 느리게 가게 만들어서 내 청춘을 좀 길게 늘일 수도 없는 거잖아? 내가 오늘 아쉬운 대로 아무나 찾아서 결혼을 했는데, 바로 다음날 나한테 딱 맞는 그 사람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 그래, 내가 현실적이지 못해서, 쓸데없이 사랑이나 찾고 앉아 있는 거겠지. 사랑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단 말야. 정말 조금이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너무한 거야? 96쪽

자기 자신이 가끔 가식을 떨고, 성격이 별로 좋지 않고, 과하게 체면을 차리고, 자기애도 좀 강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절대로 추악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펑란은 딩샤오예의 새까만 눈동자 속에서 추악한 자신을 보았다. 천박하고, 속물적이고, 위선적이고, 횡포했다. 무엇이 자신을 이렇게 추악하게 만든 걸까? 펑란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두려웠다. 질투일까? 122쪽

내가 악한 사람을 사랑하게 될 리가 없어. 이건 나처럼 어리석은 인간들한테 있는 자기 보호 본능이라고! 183쪽

사랑은 욕망에서 시작해 책임으로 귀속된다. 그러나 이 명제의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펑란에게 결혼이란 닫힌 문과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를 갈망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열쇠를 찾아야만 했다. 이 열쇠란 바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 그 자체였다. 약간의 떨림이라도 좋았다. 문을 연 후에는 쓸모없어지고 언젠가 잃어버릴지라도, 그 열쇠를 꼭 쥐고 있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결혼 후의 평범하고 세속적인 여정을 계속할 수 있을 테니까. 196쪽

펑란은 사람에게 아무리 속는다 해도 세상엔 좋은 사람이 있다는 걸 믿을 것이다. 또한 연애에 아무리 실패한다 해도 여전히 실낱같은 사랑의 가능성을 동경할 것이다. 그 사랑이 아무리 희귀한 것이라 해도. 사랑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건 자신의 운이 없는 탓이지,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닐 거라고 믿을 것이다. 200쪽

사람의 인생이란 변하게 마련이다. 얼굴 생김새와 이름까지도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유일하게 숨길 수 없는 것이 바로 말과 태도이다. 오랜 생활 습관을 통해 그 사람 몸에 찍혀버린 낙인과도 같기 때문이다. 224쪽

한결같다는 건 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그 사람에게만 충실하다는 뜻이다. 229~230쪽

“사랑이란 건 원래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랑 마음을 모아 같은 불꽃을 피우는 거잖아?” 291쪽

“어떤 꿈들은 함께 꾸어야만 행복한 거야.” 330쪽

두 사람이 돌고 돌았던 그 모든 길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둘 중 누군가가 단 한 걸음이라도 꼬였더라면 오늘을 맞이할 수 없었을 것이다. 5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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