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 채용비리는 은밀한 '노·사 담합'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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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비리로 얼룩진 한국지엠…무엇이 문제인가 ②]

검찰 수사를 계기로 ‘채용비리’와 ‘납품비리’ 등 각종 비리로 얼룩진 한국지엠 노사의 부끄러운 민낯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조합원들과 시민사회는 "검찰 수사를 뼈를 깎는 쇄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CBS 노컷뉴스는 '비리로 얼룩진 한국지엠…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모두 3차례에 걸쳐 연속 보도를 준비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한국지엠 정규직, 이번엔 얼마에 파나요?"
② 한국지엠 채용비리는 은밀한 '노·사 담합'의 산물
(계속)
한국지엠 부평공장 전경

 

"고질적인 채용비리가 검찰 수사로 뒤늦게 수면 위로 올라온 겁니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쉬쉬하고 있던 일들이 드디어 터진 것이죠. 올 것이 온 것뿐입니다."

최근 한국지엠 인천 부평공장에서 만난 한 직원의 말이다.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정규직 채용장사'에 대한 비판이 한국지엠 안팎에서 거세다.

◇ 노무관리의 핵심 도구로 활용된 '발탁채용'

제임스 김 사장이 지난 5월 직원들을 상대로 개최한 경영설명회에서는 '취업비리를 밝혀낼 의지가 있느냐'는 공개 질의까지 나왔다.

13일 한국지엠 부평비정규직지회에 따르면, 이처럼 정규직 채용과정에 검은 뒷돈이 오간다는 소문이 돈 것은 2008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다면, 한국지엠은 '돈'과 '인맥'으로 얼룩진 발탁채용의 문제점을 몰랐을까.

은수미 전 의원은 이에 대해 "한국지엠이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발탁채용을 오히려 노무관리의 핵심 도구로 적극 활용해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생산직에서 정년퇴직자나 희망퇴직자들이 생길 경우, 1차 사내하청업체 비정규직 직원을 노조 등의 추천에 따라 한국지엠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발탁채용을 담당하는 부서는 노사 부문이다.

이 부서를 총괄하는 부사장이 노조와 임금협상과 단체협상을 책임진다.

이에 따라 사측이 노무관리 차원에서 발탁채용 권한을 '당근'으로 노조에게 넘기고 대신 각종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해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발탁채용은 1차 사내하청업체에 소속된 비정규직 노동자를 통제하는 데에도 유용한 수단이 된다는 지적이다.

발탁채용이라는 사다리를 타고 정규직 편입을 꿈꾸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박한 처지에서는 노조 가입이나 불법파견 소송 참여 등 스스로 권리를 찾으려는 활동에 적극 나서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 비정규직 '통제 수단'이자, 자기 식구 챙기는 '밥그릇'

발탁채용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내하청업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지엠 노조와 부평비정규직지회가 최근 공동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714명을 상대로 불법파견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7.2%가 '발탁채용이나 고용유지에 불이익이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와 함께 발탁채용은 한국지엠 노무·인사담당 부서와 비정규직을 공급하는 1차 사내하청업체를 이어주는 '검은 고리'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국지엠 부평공장의 1차 사내하청업체는 현재 세종물류, 대호CAW, 유경테크노, 인코웰, MGS, 멘토스파트너, 엘림 등이다.

이들 업체 가운데 상당수는 전직 임직원이 대표를 맡고 있거나 혈연관계 등으로 한국지엠과 깊숙이 얽혀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지검 특수부(김형근 부장검사)는 비정규직들이 정규직 취업 대가로 노조 간부나 사내 브로커에게 제공한 금품이 회사 윗선이나 사내하청업체 관계자에게 흘러들어 갔는지도 집중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한국지엠 부평비정규직 신현창 지회장은 "발탁채용은 한국지엠이 정규직 노조를 관리하는 도구이자 비정규직을 통제하는 수단이며 자기 식구를 챙기는 밥그릇"이라고 규정했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채용비리와 관련해 "현대차와 기아차 등 다른 사업장에서도 있었던 일"이라며 "아직 검찰 수사 중이어서 어떤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노조, 자신들의 세력 확장 도구로 발탁채용 활용"

비록 한국지엠 사측이 발탁채용을 노무관리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했다 하더라도 정규직 채용과정을 '돈'과 '인맥'으로 얼룩지게 한 노조가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노조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많은 현장 노동조직들이 발탁채용을 자신들의 세력 확장 도구로 활용해 온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국지엠노조 안에는 현재 전진하는노동자회(전노회, 회원 600명)와 자주민주투쟁위원회(자민투, 400명), 민주현장(300명), 희망세상(300명), 민주세력통합추진위원회(민추위, 100명) 등 10여개의 현장 조직들이 활동 중이다.

24대 현 노조집행부는 민추위 계열이다. 또 앞선 노조집행부를 살펴보면, 23대 전노회, 22대 민추위, 21대 자민투, 20대 전노회, 19대 함성(이후 민주현장과 희망세상으로 분리), 18대 자민투 등이었다.

이처럼 이들 조직은 2년마다 돌아오는 지부장 선거 때마다 치열한 각축을 벌여왔다.

현장 조직들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거운동원'인 회원을 지속적으로 늘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이유로 일부 현장조직들은 집행부를 차지하고 있을 때 자신들의 자녀나 친인척, 지인 등을 먼저 정규직으로 발탁했다는 설명이다.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발탁채용 기준 중 가장 우선하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인맥'이라고 답한 비율이 72.0%로 가장 높게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조직된 노동자들의 도덕성과 정의감 절실한 시기"

이와 함께 최악의 고용절벽 속에서 '내 아이만큼은 정규직으로 먼저 입사시키겠다'는 한국지엠 내부에 팽배한 가족 이기주의도 채용비리의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듯이 일부 노조 간부와 대의원들이 사내브로커 역할을 하며 개인적으로 치부한 혐의를 받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까지는 20대 23대 노조 간부들만이 납품비리와 채용비리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이 인사는 "한국지엠 채용비리의 본질은 발탁채용을 통해 노조 통제수단을 확보하려는 사측과 이를 자기세력 확장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현장 조직들의 은밀한 담합"이라고 평가했다.

은수미 전 의원은 "대기업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자신의 의무를 회피하고 부당한 내부거래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할 때일수록 조직된 노동자들의 도덕성과 정의감은 훨씬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미래를 위해서는 내 자식만이 아니라 우리 이웃, 정규직만이 아니라 사내하청 비정규직, 1차 사내하청 비정규직만이 아니라 2, 3차 비정규직들을 위해 우리 모두 더 큰 용기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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